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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는 변하고 만다 |  | |
| 역사가는 왜 존재하는가?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며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짐작컨대 카의 이 말은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아닌가 싶다. 즉 역사는 해석이며, 역사가는 자신의 가치관과 소신에 따라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해석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사건이나 인물들에 관한 사관(史官)의 평들로 가득 차 있다. ‘객관주의’ 역사를 주장한 랑케는 이를 반대할지 모르지만 역사가도 한 시대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때 랑케보다는 카의 생각이 더 타당한 건 아닐까?
강만길 교수는 이런 점에서 역사가의 의무에 충실한 대표적 원로학자다. 이 책 「역사는 변하고 만다」는 정년을 맞이한 한 역사가의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면서 ‘만년의 일기’ 그리고 ‘시대의 해석’ 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최근 특검, 대북송금 등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그의 해석을 읽어보자.
“협상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긴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며 어느 한쪽의 주도에 의해 통일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전쟁통일 흡수통일과 다르다. 그것을 알게 되면 북쪽이 저절로 무너져서 흡수통일 되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은 안 하게 될 것이며, 하루라도 빨리 북쪽과의 통일을 위한 협상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이 같은 협상통일의 첫걸음을 내딛는 일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식 통일방안을 찾아 나선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p. 221)”
책의 제목처럼 ‘역사는 변하고 만다’는 것이 저자가 역사학을 50년 동안 공부해서 얻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결론이다. 세상에 아무것도 믿을 게 없다 해도, 역사가 변한다는 사실만은 믿어도 좋다는 진리를 터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진리를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대표적인 부류가 이른바 수구 ‘냉전’ 세력이다.
“북쪽을 적으로 간주하면서 전쟁이나 흡수가 아닌 평화통일을 내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같이 말이 안 되는 소리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납득될 리 없다. 그런데도 역사는 변하고 만다는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반백년 전 6. 25 전쟁 때와 같은 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p. 137)”
원래 조선후기 상공업사가 전공이었던 저자가 근현대사로 방향 전환을 한 이유는 유신헌법 때문이었다. “유신독재를 보면서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런 체제 아래서 더 이상 조선왕조 이야기나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이 어렵게 돌아가는데 역사학 한다면서 옛날 얘기나 하고 있어서 뭐가 되겠냐 하는 생각이었죠.”(<월간 말> 97년 7월, 인터뷰 중) 이후 강 교수는 민족분단주의, 독재정권의 반역사성, 분단주의의 극복, 통일의 방향 등 근현대사의 뜨거운 감자들을 정면으로 파헤쳐 왔다.
‘역사는 해석’이라는 명제와 저자 자신이 말한 것처럼, 역사가의 의무가 역사진행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잘못 갈 경우 이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역사가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시론 형태의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특히 남북문제의 기원이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통찰은 차분히 읽어볼 만하다. (박수호 psh4039@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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