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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하우스 |  | |
| 인간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끝없는 도전!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진화(evolution)´란 말에는 진보의 의미가 담겨 있다. ´진화´는 생물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오히려 역사 사회 정치경제학 등에서 더 활발히 원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진화란 어휘는 확고한 진보의 상징으로서, 학문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그 의미와 위상을 확고히 굳힌 상태다.
그러나 하버드대학의 한 저명한 교수가 이와 같은 현실에 반기를 들고 도전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다윈의 유력한 후계자 중 한 명이었다. 바로 저 유명한 ˝스티븐 제이 굴드˝이다! 인간의 편견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해온 굴드는 대중적 과학 저술가로 활동하다 근 1년 전에 타계했다.
그는 자연의 역사에서 진보를 의미하는 진화란 어휘가 완전히 곡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이 어떠한 편견과 오만에 사로잡혀 있는지 생생히 고발하고 있다. 먼저 그는 단세포 생물-삼엽충-어류-파충류-포유류-인간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사다리´가 인간 등장의 극적 연출을 목적으로 조작된 대표적 왜곡 사례라 단정한다.
실제 진화의 참모습은 무수히 가지를 뻗은 나무의 형상이며, 인간의 등장은 아주 작은 가지에 돋아난 새순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굴드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인간은 전혀 지배자의 혹은 주인공의 권리를 요구할만한 존재가 못되며, 만약 진화역사의 주인공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박테리아라는 놀라운 주장을 한다.
어떤 생물종이라 할지라도 수와 양적인 면에서 박테리아를 능가하는 것은 없다. 나무는 육지를 뒤덮고 있지만, 박테리아는 지구전체를 1.5미터의 두께로 촘촘히 덮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박테리아는 극지방의 얼음 밑에서도, 수백도의 온수가 뿜어져 나오는 극단의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진화´란 용어가 자연의 역사에서 곡해된 것인지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다는 오만에 빠져 자연의 역사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보해 왔다고 확신했다. 때문에 자연의 역사에 대한 다윈의 이론에는 그의 의도에 관계없이 ˝진화론˝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박테리아처럼 단순한 존재는 진화의 역사에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그 무엇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굴드는 자연의 진화야말로 복잡한 방향에서 단순한 방향으로 움직일 지언정, 그 반대의 증후를 보인 적이 없다고 논증한다. 인간처럼 복잡한 종이 탄생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왼쪽벽´이 존재하는 자연의 속성상 다양성에 기초한 우연의 결과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종은 ´오른쪽 꼬리´에 위치한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이러한 논리를 펼치기 위해 굴드가 예로 든 것은 완벽한 시스템과 방대한 자료를 구축해온 미국프로야구인 메이저리그이다. 야구가 인생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나돌아 왔지만, 통계적 학문으로 명확히 논증한 사람은 바로 굴드가 최초의 인물이 아닐까 한다.
굴드는 4할 타자가 실종된 이유를 영웅의 실종이 아닌, 야구의 전반적 수준이 향상된 결과라고 진단하였다. 굴드의 분석은 전체 야구시스템의 통계에 의한 것으로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일깨워 준다. 삶 자체가 서로 먹고 먹히는 게임과 유사하듯이, 그의 야구관은 우리 인간세계의 다른 시스템에도 충분히 적용될 것으로 생각된다.
진화생물학을 다룬 책에서 굴드가 난데없이 야구이야기를 꺼낸 것은, 막간에 낀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것은 진화시스템의 전체적 메커니즘을 바라보도록, 거시적 안목을 일깨워주려는 의도에서이다.
진화시스템을 거시적 안목에서 바라볼 때라야만, 진화는 어떤 방향성도 없는 산물임을 깨달을 수 있다. 더구나 진화가 진보나 복잡성을 향해 전진한다는 신화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임을 깨달을 수 있다. 굴드는 최근 논문들을 일일이 설명해가며, 진화야말로 오히려 단순한 방향으로 흘러왔을 망정, 진보를 향한 방향성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강조한다.
진화에 진보란 의미를 끼워넣은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비판한 굴드는 생물학의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와 창작예술 공연예술 등 다방면에 걸친 전체시스템을 고찰한 후, 오른쪽 벽 즉 인간의 한계에 대한 심오한 진단과 비판을 토해 놓는다. 물론 여기에서도 인간의 오만과 편견은 여전히 그의 주요 공격 대상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이 지구주위를 회전한다는 오랜 인간의 편견이 지금에 와서 비웃음을 사듯, 인간은 더이상 지구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굴드의 숭고한 외침이 아직도 생생히 들려오는 듯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은 생리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존재이며 지적인 문화를 창조하지 않았느냐´고 미심쩍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 「풀 하우스」를 권하고 싶다.
by www.libr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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