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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난(蘭)보다 향기로운 까닭
이명천
(중앙대학교 교수)


누가 승진하거나 자리를 이동하면 화분을 보내 축하의 뜻을 전한다.

대개는 난(蘭)을 보낸다. 나 같은 대학 선생들은 스승의 날에 꽃다발 받을 일은

가끔 있으나 화분을 선물로 받을 기회는 흔치 않다.

학교에서는 승진이라는 개념도 모호할 뿐더러 그나마 몇 개 있는 보직도 대다수

선생에게는 기피 대상이기 때문이다.

고백컨대, 한 5년 전 신문방송대학원 교학부장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나도 난초 화분

몇 개를 선물로 받았다. 조금 유치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일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반갑고 신기하던지…. 솔직히 속으로는 흥분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갑고 신기한 것은 잠시였고 이게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에 십만 원 남짓 하는 화분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화분을 보내준 분들께 감사 전화를 하면서 부탁드렸다. 고맙긴 하지만 앞으로 또 축하해줄 일이

생기면 그때는 난(蘭)대신에 ‘쌀’을 보내달라고….


지난 3월에 학교 홍보실장 일을 맡게 되자 5년 전의 부탁이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리본이 달린 20kg짜리, 10kg짜리 쌀 포대가 하나 둘씩 배달되기 시작하는데,

수위 아저씨들은 본관 건물에 쌀 포대가 줄이어 배달되기는 83년 학교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신기해 했다. 쌀 배달 오는 아저씨들도 즐겁고 희한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쌀 가게 문 열고 영업을 시작한 이래로 쌀 포대에다 리본 매달아 보기는 처음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쌀 포대를 정말로 반기는 이들은 양화대교 부근의 지체장애인 보호 시설에 살고 있는

그집 식구들이었다.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과 생존에 대한 집착이 강한 그들에게 쌀은 생명의

수호신과도 같다는 수녀님들의 설명이 나에게는 대단한 격려였다.

지금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쌀 이야기가 모 신문에 실리고 난 며칠 후

한꺼번에 다섯 포대의 쌀이 배달되었는데,

그 쌀을 보낸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월간 샘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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