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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은 거예요 |  | |
| 찰칵, 내 얼굴이 활짝 피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오뚜기’들의 함성으로 여름 캠프는 일찌감치 달아오르고 있었다.
2박3일(7.25~27) 일정으로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 ‘2001 오뚜기 여름 캠프’. 장애를 딛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147명의 뇌성마비인과 자원봉사자, 운영요원이 한데 어우러져
축제의 한마당이 펼쳐진 것이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연방 셔터를 눌러대는 김이남(40세) 씨의 웃음소리가 불어난 계곡
물소리만큼이나 호탕하다. 물 미끄럼을 타고, 뗏목에 올라 환호성을 지르는 해맑은 아이들…
진흙놀이를 하다 결국엔 온몸에 진흙 팩을 하고도 신이 나서 깔깔거리는 표정들을 잡아내느라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것도 잊었다.
“부끄럽지만 가슴 설레는 일, 아이들에게 사진 촬영이란 그런 거죠. 단체 사진이라도 자기 얼굴엔
금방 눈이 가게 마련이에요. 근데 보기에 흉하면 그 마음이 오죽하겠어요.”
김씨에게 있어 복지회 행사 촬영은 항상 생활의 최우선 순위이다.
필름 한 통 값 받는 일 없는 무료 봉사지만 행사장엔 언제나 그가 있다. 오뚜기 여름 캠프,
뇌성마비인 보치아 경기 대회, 쉼터 요양원, 국립재활원의 행사를 일일이 쫓아다닌 게 어느덧 11년.
출장 횟수만 해도 100번이 넘고 시간으로 따지자면 1만 1천여 시간을 훌쩍 넘어선다.
“남들은 봉사라고 말하지만 제가 즐겁지 않으면 이런 일 못해요. 왜 동물들이 처음 눈 떠서 보이는 걸
엄마로 생각한다잖아요. 저도 그래요. 먹고 살기에 급급하던 11년 전, 처음 봉사라고 시작한 게
뇌성마비 복지회의 행사 사진을 찍어주는 거였어요. 작은 인연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뿐이죠.”
김씨가 사진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고등학교 시절. 친한 선배의 집이 사진관이라 자주 놀러
다니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이 웬만한 수준에까지 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철원에서
미곡상을 운영하던 김씨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면서 갑작스레 가세가 기울었다.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기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군에 자원해서 입대했다.
1981년 제대하자마자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시작한 서울 생활. 많이 힘들었다.
월세 2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먹고 자며 이를 악물다보니 몸은 몸대로 상하고, 직장 또한 안정된 내일을
기약할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그때 시작한 게 사진관 일이었어요. 큰 돈은 못 벌어도 열심히 하면 생활은 안정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막상 사진관을 차리고 보니 손님이 통 없어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어요. 그러던 중 하루는 뇌성마비 복지회에서 일하는 교사가 행사 때 찍은 사진을 맡기러 왔어요.
그날은 제게 있어 참 잊지 못할 날입니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한결 같이 일그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초점까지 맞지 않아 더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을 뽑아주고 돈만 받으면 그만이겠지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김씨는 그 교사에게 행사 사진을 자신이 찍어주겠다고 제의했다. 출장비는 받지 않고 필름 값과 현상
값만 받을 요량이었는데 막상 돈을 받고 보니 심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건 아니다. 내가 그래도
저들보다는 나은데…. 뇌성마비 장애아에게까지 장사를 해야 하나.’
그 길로 그의 사진 봉사가 시작되었다. 복지 단체에서 고마운 마음에 따로 사진 값을 챙겨주어도
그 돈을 다시 후원금으로 낼망정 행사 촬영과 관련해서는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간혹 장애아의 부모들이 회갑연이나 결혼식 사진 등을 의뢰할 때도 있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이런 일에 돈이 결부되기 시작하면 자칫 자신의 첫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뇌성마비 복지회에서 전해온 감사패나, 올봄에 오운문화재단 ‘살맛나는 세상’에서 시상한
선행상을 받았을 때도 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참석은 했지만 못내 쑥스럽기만 했던 김이남 씨다.
“장애아들은 항상 긴장을 하고 살아서 웃은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나타나는 날에는 자신이 환하게 웃는 사진을 받을 수 있죠.
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은 거예요. 그분은…
우리 뇌성마비인들에게는 마술사나 다름없어요.”
한국뇌성마비 복지회에서 일하는 최명숙 씨는 10년 가까이 김씨와 복지회 행사를 함께 해온 인연을
맺고 있다. 자신의 의지대로 어찌할 수 없는 몸, 그래서 겁나고, 하기 싫은 것 중의 하나가 사진 찍는
일인데 김씨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면 애들은 여름 나무의 매미처럼 착 달라붙는다.
그러니 차림새야 지극히 평범해도 분명 ‘사진의 마술사’랄 수밖에….
김이남 씨는 매달 1, 2회 꼴로 열리는 복지회 행사를 빠짐없이 촬영한다.
한 달에 소요되는 필름만 100여 통, 사진은 1만여 장이나 된다.
굳이 돈으로 따지자면 연간 400만 원은 족히 된다.
어려운 시절에 만난 아내(박순화·38세)는 여름 휴가철마다 살짝 빠져버리는 가장이 얄미워
내년에는 어떻게든 따라붙자고 외아들 중곤이와 입을 맞추면서도 남편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남편이 복지회 봉사 활동을 그만두면 살림은 조금 나아질지 모르죠. 하지만 돈보다 더 소중한 게
뭐란 걸 남편한테서 많이 배워요. 유아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어느새 또
그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남편의 카메라가 안 따라다닌 곳이 없거든요.
그 많은 아이의 추억을 값으로 매긴다면 얼마나 될까요. 제 남편 부자 맞죠?”
요즘 들어 김이남 씨는 자꾸만 욕심이 늘어간다. 아이들 사진을 좀더 예쁘게 전해주고 싶어 대형
액자에 근사하게 끼워 슬쩍 밀어넣고 온 게 60여 개나 된다. 독학으로 컴퓨터를 공부해 올해부터는
사진 CD도 만들어주고 사진을 예쁘게 수정하는 작업도 손에 익어간다.
오후 들어 세차게 퍼붓던 장맛비도 멎고 해질녘 하늘이 말끔하다. 캠프파이어를 못할까봐 걱정하던
아이들은 저녁밥을 먹기 바쁘게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밤 8시. 캠프촌 앞마당에 모인 뇌성마비인,
자원봉사 대원, 진행 요원을 합해 295명의 소망을 담은 거대한 불꽃이 피어오른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사람들. 그 뜨거운 축제의 한 가운데는 낯익은 풍경처럼
카메라를 둘러멘 김이남 씨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샘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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