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쉬잇, 나의 세컨드는 |  | |
| 나는 이 세상의 영원한 ‘세컨드’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말에 너무 많이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주인, 최고, 최선, 노력, 주체 등 하나같이 미래지향적인 이 말들이 사실 얼마나 많은 의무와 책임, 그리고 자기 채찍을 감추고 있는가를 떠올려본다면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이들이 몇이나 될까? 아, 지금껏 길들여진, 강요된 그것들로부터 슬슬 뒷걸음질치고 싶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경미의 새 시집 「쉬잇, 나의 세컨드는」은 이렇게 뒷걸음질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구원투수´. 고맙게도 이 시집은 그 어떤 주인의식도, 의무도 강요하는 법이 없다. 그저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라고 강조할 뿐이다.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나는야 세컨드 1>중에서
´세컨드´라는 말이 주는 은밀한 상상력에 주의하시라. 시인이 말하는 세컨드는 절대로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님을.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첫째가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꼴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변방, 부적합, 홍길동 같은 서자와도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이 말 ´세컨드´와 자기를 나란히 놓고 나면 우리에겐 그 누구도 누군가에게 절대자가 될 수는 없다는 깨달음이 찾아든다. 그리고 깨달음이 잦아들 즈음, 삶의 어느 부분으로부터 비로소 놓여났다는 모종의 여유를 느끼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러나 ´세컨드´도 아무나 거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법. 시인은 ´삶이 본처인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등을 세컨드의 법칙으로 전제하고 있다. 요컨대, 이왕 모든 세상사, 모든 이들의 ´두 번째´가 되기를 자처한 이상 한없이 열망하거나 간절해지지 말하는 뜻일 게다. 스스로를 ´세컨드´자리에 위치시키는 다소 불온한 겸손함은 차지하고, 여러 시편들에서 이 시인의 상상력은 처절하면서도 불순하다.
흡혈귀가 더 / 나아요 목숨 다해 입맞춰주잖아요
남자가 / 있어야 해 결혼은 관둬도 몸에는
마음 떠난 / 사람과 나누는 몸이 제일 처절해요 신음 대신 눈물이 나요
하! 진정한 사랑이나 찾는 여자는 / 개도 안 물어간다구요!
-<밤의 대화> 중에서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사랑 사이의 간극을 반어적으로 던져주고 있는 이 시. 언뜻 읽혀지는 것은 경쾌한 리듬감과 냉소이지만, 그 이면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은 자기 연민과 친구가 된 짙은 우울이다. 응당 두 번째 혹은 꼴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홀가분 한만큼 우울한 일인가보다. (이현희 imago@libro.co.kr/ 리브로)
by http://www.libro.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