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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 |
| 美醜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존재, 인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기괴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며, 그 속에서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어리석음을 파헤친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서머셋 모옴의 소설과 닮아 있다. 그러나 모옴의 소설이 좀더 깊고 어두운 냉소를 담고 있다면, 로맹 가리가 그리는 어두운 인간들에게는 예술과 아름다움의 색채가 깃들어 있다.
아름다움과 추악함의 경계에서 모호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 그는 그렇게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인간의 아름다움과 희망과 행복에의 가능성이라는 끈을 보여주고 있다.
로맹 가리의 소설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죽음이 따라다닌다. 그것은 그가 들려주는 인간 이야기의 깊숙한 곳에 신에 대한 갈망이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배경이 사육제임에 주목해 보자. ‘사육제’란 기독교가 이교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축제이다. 사순절(예수 부활절 전 40일간 육식을 끊고 기도와 속죄의 정진생활을 하는 기간)에 들어가기 전에 술과 고기를 충분히 먹으며 즐기는 축제인 것이다. 즉,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위배되는 자기 억제 의식을 치르기 직전에 과도하게 자신의 욕망을 소진하는 날들인 것이다. 예수의 죽음을 생각하며 고기를 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죽어가는 예수의 육체와 인간의 입 속에서 저작되는 짐승의 고기가 서로 연상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는 삶의 유지란 곧 누군가의 죽음을 필연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남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생을 유지할 수가 없고, 살아가려면 그곳엔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이 함께 한다. 이러한 비천함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갈망하게 한다. 혹은 이러한 삶을 끝장냄으로써 인간 이상의 경지로 상승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순’을 인간성의 일부로 갖고 태어나며, 바로 그것에 의해 상처 받는다. 로맹 가리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처는 결코 외부로부터 비롯된 상처가 아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서서히 자기 스스로를 파괴해 간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외에도 예술에의 열망을 억제하며 사는 백작과 예술을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며 남편의 예술의지를 꺾으려 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그린 ‘류트’, 휴머니즘이라는 자신의 신념에 완벽히 기만당하면서도 끝내 신념 속에서 불행한 생을 마감하는 인간을 그린 ‘휴머니스트’, 몰락한 노조의 영웅을 죽여 시멘트 속에 묻음으로써 노조의 몰락을 막으려 안간힘 쓰는 인간들을 그린 ‘몰락’ 등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하나같이 강렬하고도 비극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한 인간들을 결코 함부로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인물들을 그릴 때 그들의 행동 동기에 대해서 끝내 모호함을 남겨두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 가지 설명은 있어야 하고 언제나 있을 테지만 모른들 무슨 상관이랴. 과학은 우주를 설명하고, 심리학은 살아 있는 존재를 설명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방어하고, 되어가는 대로 몸을 맡기지 않고, 마지막 남은 환상의 조각들을 빼앗기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p20)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로맹 가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을 반드시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누구든 로맹 가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단정짓기 보다 약간의 모호함을 남겨두었으면 좋겠다. 한 가지 설명은 있어야 하고 언제나 있을 테지만 모른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재경 viki@libr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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