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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 |  | |
| 삶에 대한 반항, 스스로 죽거나 아니면 죽여버리거나
사랑, 여름, ** 씨, 미치다… 운운하는 매우 낯선 제목을 가진 이 책에는 제목 못지 않게 낯선 설정이 그득하다. 낯선 것은 곧 흥미로운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올해 간신히 서른을 넘긴 작가 한차현은 낯설고 기이한 설정(이 책에 해설을 붙인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이 낯섬을 가리켜 ‘인공적인 설정’이라고 못박는다)과 제법 그럴싸한 말재주와 치기어린 상상력으로 한 권의 책을 온전히 채워냈다. 그렇담 무엇이 그리도 낯설며, ‘인공적’인 것일까?
총 일곱편의 단편 중 가장 눈에 뜨이며 얘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표제작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와 ‘악령’. 특히 이들 두 작품은 맹랑하고 ‘인공적인’ 설정 뿐 아니라 주인공 스스로 죽기(‘사랑이라니…’) 혹은 타인을 죽이기(‘악령’)라는 점에서 보기 좋게 짝을 이룬다.
먼저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를 보자. ‘여름’이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것은 ‘** 씨’라는 접미사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50년대 태생인 40대 남자 여름 씨와 화자 ‘하인’의 만남은 고졸 학력의 청년 하인이 여름 씨의 집에서 일종의 파출부 생활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말할 때마다 아랫배를 지그시 어루만지는 습성 아닌 습성을 지닌 여름 씨는 충격 그 자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아랫배에는 인공수정과 인공 태반을 통해 벌써 6개월째 아기가 자라고 있었던 것! 도대체 왜? 의아해 하는 하인에게 여름 씨는 ‘세상에 진 빚을 값기 위해서’라고 퉁명스레 답한다.
“실은 내가 말야. 세상에 엄청나게 빚을 졌거든… 작대기 하나 없는 맨손으로 막다른 골목 끝에 몰려 놓으면 누구건 기적 같은 탈출이나 반격을 꿈꾸는 법이거든. 그런데 제미 씨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곤 아무 것도 없더라 이거야.” (p.67)
다시 말해 여름 씨의 임신은 강요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기 위해, 기적 같은 반격을 시도하기 위해, 세상에 대한 빚을 값기 위해서라는 세 가지 이유로 정리될 수 있다. 이중 마지막 항목, ‘세상에 진 빚을 값기 위해서’를 실천하기 위해 여름 씨는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신장, 간, 대장, 췌장, 심장, 폐, 각막, 골수, 뼈, 인대, 연골, 심장판막, 구강조직, 피부, 피하지방’ 등 자신의 신체 각 부분을 남김없이 기증하고는 죽는다.
한편 단편 ‘악령’ 은 스스로 누군가를 죽였다고 주장하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태양이 내리쬐는 매일 오후, 임대아파트 단지에는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 일정한 모양새를 하고, 일정한 동작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한 소녀와 그 소녀를 지켜보는 사내가 있다. 사내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같은 동작의 무한한 반복성, 그로부터 발생되는 지긋지긋한 강렬함’. 반복된 일상을 견딜 수 없는 사내는 결국 그 반복과 그로 인한 분노의 모든 원인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 그 아이를 살해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내는 결코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 그는 단지 자신의 망상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향한 분노와 그 분풀이로서의 살해장면을 체험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체험 역시 ‘반복’이라는 점에는 어느 정도의 슬픔이 깃들여 있다.
이쯤에서 이들 두 작품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어렴풋이 가닥을 보인다. 즉 ‘기적이나 변화가 없는 삶에 대한 반항’ 이 그것. 소설 속에서 이 같은 반항은 어떤 이는 자신이 소유한 신체의 각 부분을 다 떼어주고 남녀의 고유한 성 역할을 전도함으로써, 혹은 참을 수 없는 일상의 반복성을 ‘살해’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이들 두 작품 외에도 한차현의 소설 속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을 더듬거나 그것을 전복시키거나 그것으로 일상에서의 반항과 파격을 꾀하는 작품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그러니 그 반항이 정도를 넘어 과격해질 때 그의 소설은 ‘인공적인 설정’(방민호)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인공적인 설정’은 하나의 장치일 뿐 궁극적으로는 살해충동과 같은 누구나 한번쯤 품어보았을 인간의 본능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다는 점을 눈치챌 때, 독자들은 이 젊은 작가에게 후한 점수를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현희 imago@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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