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내 영화의 주인공 |  | |
| 죽음 아니면 일상으로 귀환하는 일탈일기
일탈!
태양은 뜨겁고 말끝마다 ´-적’을 붙이기 좋아해 ´소적새’라고 불리우는 교장선생님의 연설은 계속된다. 운동장에는 행여 줄이 비뚤어지지는 않았나 살피는 학생주임 선생님의 눈초리가 사납다. 문득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세 개의 가방. 그리고 잽싸게 달려나가는 세 명의 아이들, 폴짝, 폴짝, 폴짝 차례로 담을 넘고, 횡단보도를 지나 달리고 또 달리는 아이들.
김상숙, 표송미, 심재희. 이렇게 세 명의 고등학생이 어느날 학교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마치 잘 짜여진 영화 시나리오와도 같다. 그들의 일탈은 로드무비의 한 장면 내지는 일련의 스냅사진들처럼 실감나고, 선명하며, 인상적이다. 게다가 합성섬유로 만든 가발을 쓰고 새파란 아이섀도, 립스틱을 바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세 녀석들의 행각은 일견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들의 일탈은 단지 우스운, 젊은 날의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 명의 문제 학생들의 경쾌한 탈주극으로도 정리될 수 있는 이 소설에서 자꾸만 한없이 무거운 슬픔이 곱씹히는 건 무슨 까닭일까? 전교 1등만 하는 새침떼기 상숙이 알고 보니 불치 병을 앓고 있었고, 얼마 남지 않은 생에 대한 억울함 내지 원망으로 일탈을 감행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패러세일링에 몸을 맞기는 것으로 그녀가 마지막 생애를 불태웠기 때문에? 물론 ‘화가 나서 그래, 미치도록 화가 나서..’라고 읊조리던 상숙이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일탈 소동의 한가운데 슬픈 정조를 일깨우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슬프고 더욱 애달픈 것은 그들의 일탈이 단지 고장난 나침반처럼 정처없이 부유하고 만다는 데에 있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전교생들로부터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을 만큼 용감무쌍하긴 하였으나, 뚜렷한 대안도, 지향점도 없이 감행된 일탈은 오히려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만큼이나 이들 삶의 비애를 드리우는 것이다.
교복과 규율, 짜여진 시간표가 사람을 지배하는 교육제도에 갇힌 이들의 생활이 지닌 막막한 비극성은 책장이 넘어갈수록 우리 자신의 일상으로 가까워져 스스로의 삶에 대한 반추를 야기한다. 너와 나, 우리는 모두 일탈을 꿈꾸지만, 과연 그 일탈에서 성공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일탈을 책임지고, 의연하며 도도하게 맞설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풀 죽은 부메랑처럼 일상 속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이현희 imago@libro.co.kr/리브로)
by http://www.libro.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