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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내기 블루스 |  | |
| 사람만이 희망이다
1998년 문학동네에 ‘경찰서여, 안녕’을 발표하고, 2000년에는 희곡 ‘해로가’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 김종광. 그는 글을 다루는 재주가 많은 글쟁이임이 틀림없지만 문단을 뒤엎을 만큼 전위적인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갓 서른을 넘긴, 그의 단편들은 모심기를 마치고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햇벼 같다. 소설 한 편 한 편마다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난다. 두 번째 소설집 「모내기 블루스」는 우리 문단에 뿌리내린 작가의 역량을 확인케 한다.
「모내기 블루스」는 2000년부터 2002까지 각 계간지와 e-book 등에 실었던 단편들을 모은 작품집. 좀 더 정돈되었다는 것 외에 「경찰서여, 안녕」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맛깔스런 입담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다시 한 번 그 감동을 만끽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표제작 ‘모내기 블루스’는 도시처녀 서해의 좌충우돌 농촌 체험기. 유머러스한 필치와 가벼운 이야기들이 입가에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우리의 관심사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어쩌면 한번도 관심을 둔 적 없는) 농촌의 현실을 가식 없이 말해주고 있다. 1990년대 작가들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밀한 묘사와 심각한 사유 대신 크로키 형식으로 그려낸 유쾌한 캐리커쳐 같은 느낌이 든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가끔 욕지거리를 함부로 뱉고, 술을 퍼 마시거나 여자와의 잠자리를 쉽게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세상에 저항하지 않고 그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내는 순박함을 보이고 있다.도시의 인물들은 모두 박봉에 시달리거나, 6개월 이상 체불된 임금이 있는가 하면, 종종 구직중이다. 이는 IMF이후 불황을 맞은 우리 경제의 한 가운데에 사회의 신입생으로 설 수밖에 없었던 작가세대의 현실을 재현해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편들이 소시민들의 우울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삶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끝은 늘 울음 대신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이라는 삶의 끈을 잡고 있지만 각각의 단편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신 판도라의 상자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희망을 숨겨둔 것 같다. 유난히 많은 소설 속 등장인물은 모두 ‘더 이상 절망할 것 없음’이란 희망을 가진 판도라의 상자가 아닐까. 이 소설집이 말하는 희망은 세상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이다. (고지혜 gomgom@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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