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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티새 |  | |
| 가슴에 담아놓는 포근하고 말랑말랑한 세계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을 소녀의 감수성과 대중문학, 만화적 상상력 등으로 평가하는 것. 잘린 말이긴 하지만 맞기도 하다. 그러나 어찌된 게 그걸 수긍하면서 전혀 미워 보이거나 모자라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말했다. 바나나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발표되었다면 이게 과연 순문학 대접을 받았을까 하고. 물론 좀 심했지만 뭐라고 토를 달기도 애매했다. 「티티새」를 들고 옹호해볼까. 사실 나로 말하면 늘 바나나의 소설에 적응하지 못했던 쪽에 서 있었다. 그렇지만 「티티새」를 읽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심정이 되는 걸 어쩔 수 없다.
“츠구미는 정말이지, 밉살스런 여자 애였다.” 역시 바나나다운 시작이다. 츠구미는 신경질적이고 제멋대로인 여자애다. 그런 그녀는 츠구미는 몹시 병약하다. 그녀의 사촌이자 이 소설의 화자인 마리아는 그녀 이모네 집, 즉 츠구미네 여관에 엄마와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소설집 「키친」 이후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장편소설인 「티티새」는 츠구미와 마리아, 두 열 아홉 소녀들의 여름을 그리고 있는 성장기이다.
어떤 소설가는 문장을 갈고 닦기 위해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나 손으로 베껴 적었다고 하고 또 누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특색있는 문장만을 골라 적어 놓은 자신만의 노트를 꽤 두텁게 만들어 놓았다. 바나나에겐 따뜻함이 있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포근하다는 단어가 구체적인 향기로 내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글쓰기는 문체로부터 시작된다’고 한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바나나의 인물과 플롯에서 느끼는 전체적인 포근함은 그녀의 말랑말랑한 문장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문장이 우리에게 호소하는 건 어떤 영상이든지 쉽게 펼쳐지게끔 배려하고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바나나가 그리는 풍경 속으로 빠져든다. 바나나는 실제로 독자들이 머리 속으로 영상을 그릴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티티새」를 읽으며 이거 영화 시나리오나 드라마로 각색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걸 보고 싶다는 맘이 더 큰 것이었지만. 실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키친」과 「암리타」가 영화화 된 것도 이런 이유가 클 것이다.
그녀의 문장은 간결하고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바나나의 소설에서는 절대 요설을 찾아낼 수 없으리라. 또 유치하더라도 천박함은 결코 없는 게 다른 하나의 특이점이다. 가령 ‘쓸쓸했다’와 같은 평이한 표현은 소설가들의 안이함, 진부함으로 취급되기 쉽지만 바나나가 그리는 ‘쓸쓸함’은 너무 진실하게 들려서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용서가 된다.
바나나의 소설에는 특히 상처받은 영혼들의 커뮤니케이션과 부드럽고 조용한 죽음이 자주 나타난다. 「티티새」의 츠구미 또한 증오와 열정 모두를 잃어버린 채 사경을 헤매는 상징적인 죽음을 통해 새 삶을 시작한다. 바나나가 그리는 상처와 죽음은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준다. 10년 이상을 가족과 함께 해변가를 찾아 고즈넉한 바캉스를 보내는 가정에서 자란 그녀. 「티티새」의 탄생도 그런 배경으로 쓰여졌다고 말한다. 온건한 생각을 하고 남들이 다 바라는 행복을 원하는 그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성장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이는 온통 자기를 매몰하는 꿈을 꾸지만 평온했던 이는 자유롭게 열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상상의 수첩을 편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어 내가 이렇게 감상적인 기분에 빠져들어도 괜찮은 걸까. 세상이 이렇게 예쁠 수도 있는 걸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왠지 그저 행복하고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인생의 쓴 맛을 몰라, 아직 세상을 덜 깨우쳤군 하고 콧방귀를 뀌고, 어둡고 심각한 얘기를 하는 작가들에게 더 깊은 맛이, 인생의 정수가 있다고 속으로 두둔하는 것. 이건 정말 악습일지도 모른다.
바나나의 소설은 한 편이라도 읽고나면 다 찾아 읽어야지 하는 맘이 생기게 만든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이걸 두고 감수성이라고 할텐데, 어떤 감수성이든 사람들은 그런 서정적인 에너지에 젖어드는 것을 의외로 좋아한다. 바나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소설에서 마음에 드는, 뇌리에 강하게 남는 문장을 수집한다. 아니 자연스레 남아있다고 해야하겠다. 어려운 테마가 아니라 만화책에서 읽은 단 한마디가 내 인생에 밝은 등불을 비춰주고 나를 가장 절절히 설명해주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꼭 기억해둔다. 가슴에 담아두고 자꾸 꺼내본다. 「티티새」의 바닷가에서도 그렇게 꺼내볼 것은 넘쳐난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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