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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적 환상·오라스 |  | |
| 코르네유, 대담한 극을 말하다
몰리에르, 라신과 더불어 프랑스 고전주의 희곡작가의 대표적 작가로 알려져 있는 피에르 코르네유. 그는 당시 연극의 시간과 장소의 일치, 행동을 통제하는 세 가지 법칙인 삼일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극적 효과를 노렸던 다양한 시도를 해 ‘프랑스 고전주의 희곡의 개척자’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살아서 극작계의 대부로 칭송받았던 그였지만 1636년 처음 발표한 희곡 「르 시드」 외에는 거의 당대 관객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또한 코르네유는 극의 전개 방식에서 탐정 소설적 기법을 사용하는 등 기법과 기교에서 대담함과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한 작가였기에 종종 원치 않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연극적 환상·오라스」는 멜로드라마적인 요소에 연극적 환상성을 부여한 희비극 〈연극적 환상〉과 혈족을 모두 죽여야만 하는 오라스의 고뇌를 보여주는 비극 〈오라스〉를 함께 담고 있다. 작품의 말미에는 통상적으로 들어가는 작품 해설 대신 역자 김덕희와 코르네유의 가상 인터뷰를 싣고 있다.
〈연극적 환상〉은 전통적으로 비극 혹은 희극으로 나뉘는 경계를 따르지 않고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고 있는 특이한 작품이다. 연애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전통적인 극작의 규칙을 벗어난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클랭도르의 아버지가 집 나간 아들을 찾기 위해 마법사 알캉드르를 찾아가는 프롤로그격인 1막에서부터 약간은 놀라게 된다. 2막에서부터 4막까지는 알캉드르의 마법을 통해 연인 클랭도르와 이자벨, 이자벨을 사모하는 두 남자 프리다망, 아드라스트의 꼬인 연애 이야기가 보여진다. 3막은 아드라스트가 살해되면서 처형의 위험에 놓이게 되는 클랭도르를 그리며, 5막에서 클랭도르와 이자벨은 무대로 몸을 피해 연극 배우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불륜을 저지르고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이 공연의 내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마치 그들이 계속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묘한 설정으로 끝난다.
코르네유는 규칙을 중시하는 당시 이론가들이 제시하는 모델을 따르지 않았던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일부 거부하고 자기만의 방법론과 극작법을 연구하여 「극시에 관한 세 편의 담론」이라는 책을 쓴다. 그는 긴장감 있는 대사로 주인공을 딜레마에 빠지게 하여 극의 흥미를 유지하는 방법과 비극적 갈등을 숙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그는 신고전주의 비극의 첫 발을 디디게 된다.
이러한 코르네유 극작법의 토대가 되는 작품이 바로 〈오라스〉이다. 이웃한 알바롱가와 로마의 싸움에서 빚어지는 두 가문의 대립을 통해 오라스라는 인물의 불행을 다루고 있다. 오라스는 아내의 형제와 누이를 죽여야만 하는 절대적인 희생을 감행하면서 비참한 영웅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코르네유의 주인공들은 불행과 역경 속에서 도망가지 않고 온몸으로 직접 부딪힌다. 때문에 인물들은 극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살아내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로 그려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배우가 극을 연기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게끔 만들어 보인다. 남자 주인공의 경우 흔히 ‘영웅주의’의 결정판이자 희생자라고 불릴만하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의 경우, 남자의 욕망과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부유하면서 비극적인 역할을 맡게 되지만 가장 현명하고 꿋꿋하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큰 재미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팔딱거리는 신선함으로 오감을 자극하고 신세계를 열어 보이는 작품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감당못할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17세기 프랑스 고전 희극이라니. 대사 하나 하나에 세계의 진리를 표현하고 인생을 은유하는 듯 무겁게 가라앉은 작품에 무슨 매력이 있을까 싶었다. 결정적으로 희극이든 비극이 됐건 온 작품으로 뿜어내는 그 비통함 때문에 읽는 것 또한 상당한 부담이었다. 허나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그런 과장됨이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 결국 우리가 연극에서 보는 것은 환상일 뿐이며 동시에 현실이지 않겠는가.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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