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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위 나의 인생 |  | |
| 척박한 땅의 씨앗이 우듬지 나무가 되기까지
많은 사람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식물도 놀랄만큼 역동적이고 공격적이다. 트위스팅 덩굴 식물은 백 미터에 가까운 나무꼭대기 위까지 뻗어 나간다. 무화과나무는 숙주 나무를 포위한 다음 그들을 질식시켜 버린다. 자이언트 가시나무는 잎과 잎 꼭지 모두 수천개의 가시로 덮여 있어 사람의 피부를 찢어 놓을 뿐 아니라 상처낸 피부 위에다 화학적 독소까지 뿜어낸다.
이런 식물을 갉아먹고 사는 곤충들 역시 만만치 않다. 가시와 독소로 무장했음에도 자이언트 가시나무에는 여전히 많은 수의 초식 곤충들이 서식한다. 또 초식 곤충에 의해 훼손돼 이미 구멍이 난 모든 종의 잎들은 더 이상의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 갉아먹힌 부위에 독소를 분비하고 곤충들은 독소 섭취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멍이 난 잎들을 피한다. 우림은 공격과 방어, 한 수 위의 공격과 또 한 수 위의 방어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경이로운 격전장이다.
「나무 위 나의 인생」은 이런 우림에서도 그 맨 꼭대기인 우듬지에 매혹되어 그것의 연구에 몰두했던 한 여성 생물학자의 이야기다. 마거릿 D. 로우먼은 자신이 궁금하게 여겼던 흥미로운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던져 호기심을 자극한 후, 많은 연구 경험을 통해 확인한 답들을 제시한다. 이 책이 자연과학에 별 관심을 느끼지 않는 이들까지 매혹시키는 것은 저자가 질문과 답에 이르는 과정을 구체적인 현장의 경험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어떤 획기적인 연구의 결과들이 이어져 과학이 발달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들은 이 책을 통해 그 연구의 결과를 낳기 위한 현장 생물학자들의 고충이 어느 정도인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더불어 연구 수단의 개량이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낳는다는 것 또한 수긍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듬지 연구의 경우는 높은 나무 꼭대기에 접근하는 일이 우선이다. 얼마나 쉽게 우듬지에 접근하느냐의 여부는 우듬지 연구의 성과와 비례한다. 숲 우듬지 접근 수단은 로프를 비롯해, 우듬지 통로, 크레인, 열기구에 이르기까지 크게 발전했고 그에 따라 우듬지 연구 역시 많은 성과를 거두게 됐다.
나무에 접근하기 위해 어려움을 겪는 것 외에도 생물학자들은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된다. 탐사 도중 뱀에 물리거나 다양한 질병에 감염될 수 있으며, 주로 오지에서 제대로 먹거나 씻지도 못하는 생활을 각오해야 한다. 교수나 선배는 물론, 동료 중에도 여자가 없어서 대개 홍일점으로 탐사대에 참가했던 저자는 아프리카 탐사 도중 목욕할 때마다 겪었던 스태프들의 엿보기를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면서도 육아와 연구를 병행해야 했던 대목에 이르러서는 “나를 지원해 주고 내게 지혜를 나누어 줄 여성 조언자 한둘쯤이 있었으면” 하고 안타깝게 회상한다. 임신한 채로 까마득히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고, 거머리와 구더기가 판을 치는 현장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저자는 생태학이라는 발판에서 발을 떼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것은 묘하게도 우듬지 그늘 속의 억압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우듬지 나무로 자라기 위해 인내하는 새싹의 모습과 겹친다.
“음지에서도 어린 나무로 자라 틈새를 노리는 종을 내음성 혹은 음지내성이라 부른다. 우리가 표시를 해두었던 내음성 어린 나무들은 이제 35살이 되었는데도 겨우 5인치밖에 자라지 않았다. 그늘진 숲바닥에서 살아남아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기다리는’ 그들의 능력은, 내가 생각하기엔 식물 세계의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다. (p.148)”
한 그루의 우거진 나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저자는 그것을 ‘지상 최대의 제비뽑기’로 표현한다.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장애물을 넘고 길을 개척해야 하는 하나의 새싹, 그 중에서도 척박하고 힘든 환경에 떨어져 자라나는 새싹의 운명은 그대로 여성 삶의 은유로 다가온다. 어마어마한 수의 새싹들이 한 개체로서 자신을 유지해 나가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처럼 많은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려다가 좌절하고 포기한다. 따라서 불굴의 의지로 과학적 열정을 꽃피운 한 여성 생물학자의 삶은 식물 세계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현상과 다를 바 없는 경외와 숙연한 감동을 전해준다. (윤정윤 phylli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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