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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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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흙 묻은 그릇을 함께 씻어 주는 사람 |  | |
| 내가 원효로 4가 한강가에 살 때였다. 비만 오면 부엌 아궁이로 물이 흘러나오고, 장마가 와서 홍수가 났
다고 하면 이층으로 된 우리 집 일층은 물에 잠기곤 했다. 집이라고 해야 시멘트 블록으로 쌓아올린 허름
한 급조 창고 비슷한 것이어서 벽은 갈라져 있었고 아무리 애를 써서 도배를 해봐야 비만 오면 얼룩이 지
고 틈새가 찢어져 있었다.
어느 해 비가 몹시 내려 한강이 황토 색깔로 변하고 길거리에 물이 넘쳐 났다. 며칠째 내린 부슬부슬 내리
던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저녁 무렵이 되자 비는 더 거세게 내렸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일
층에 있던 물건들을 이층으로 옮기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날이 어두워오자 사람들이 몰려와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이층에 쌓아 놓았던 보따리를 들고 길 건너편에 살고 있었던 부모님 집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도 거들었다. 한 밤중이 될 때까지 피난가듯이 살림을 등에
지고 손에 들고 옮겨야 했다. 대학에 다니던 동생들도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형의 살림살이를 옮겨주었
다. 한 밤중이 되자 물은 더 불어나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까지 물이 차올라왔다. 더 이상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집 건너편 길가에서 서성거리며 우리 집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날이 밝아오자 빗줄기가 약해졌고 이렇게 들어찬 물은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쪼이자 집으로 들어갔다. 진흙으로 도배를 한 것 같았다. 벽은 까만 흙으로 덮혀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학교에 갔다가 돌아온 후에는 이 벽에 붙은 검
은 진흙을 닦아내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 검은 진흙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는 부엌에서 식기
들을 씻었다. 밤이 깊도록 집안을 씻어내었지만 수마의 흔적은 그대로였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 우
리 집 앞에 와 보니 동네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재를 당한 우리를 위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에
띈 것은 부엌에 한 아주머니가 얼굴에 흙을 묻힌 채 그릇을 씻고 있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층
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사람들과 함께 청소를 했다. 다음날 학교에 갔다 오니깐 어제 보았던
젊은 아주머니가 또 부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웃으며 접시에 허연 빵을 담아 주
었다. 이층에 올라가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밀가루로 반죽해서 쪄낸 빵을 먹으며 아내가 품삯을 주고 산 아
주머니이려니 생각하였다.
젊은 아주머니는 닷새나 되게 우리 부엌에서 일을 하였다. 그리고 내가 집에 오면 빵이나 과일을 내놓곤
했다. 그러다가 일이 끝났다. 얼마 후 아내에게 아주머니가 아주 친절하더라는 말을 하였다. 그제야 아내
는 “길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인데 돈도 받지 않고 도와주러 왔었어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아주머니도 아파트에 살기 전에 물이 들어오는 집에 세를 들어 살았는데 무척 고생을 했
대요”하였다.
나는 속으로 ‘그 아주머니가 고생을 해서 우리를 도와 주었구나’하고 고맙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서 가
을이 깊어진 어느 날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마치 잔치 날처럼 동네 아주머니들로 가득하였다. 깜짝 놀라
얼른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내가 곧 따라 올라와 “전번에 비가 왔을 때 우리를 도와준 이들을 위해 음식
을 마련했어요”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동네사람들과 한 식구가 되었다.
어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밤이었다. 지난 여름 우리를 도왔던 젊은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왔다. 남편과
싸우고 갈 곳이 없어서 우리 집에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밤에 아파트로 가서 젊은 여인의 남편을 만
나 아주머니가 우리 집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는가를 말하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아내와 서
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라고 그녀의 남편에게 말을 했다. 그러자 남편은 쑥스러운지 “웃
으며 투닥거렸지요”하고 우리 집으로 와서 화해를 하고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우리와 그 젊은
아주머니의 부부는 형제처럼 친해졌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따뜻한 마음의 교류 하나만 있
어도 세상은 살아갈만한 즐거움이 있게 된다. 슬픔에 겨울 때 누구의 어깨에 잠시 머리를 기댈 수 있는 그
런 세상은 바로 이 마음의 소동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기도제목에 남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마음이 사는
보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박동규/월간 신앙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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