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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우리 부자야?. |  | |
| ...다른 애들은 아빠들이 와서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찍고 그랬는데… 울 아빤 뭐야.”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딸아이의 입이 댓발만큼 나와 있었다.
그날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었다. 사실이지 나는 딸의 입학식에는 무슨 일이 있어
도 꼭 참석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교대시간을 바꿔 달라고 청
하기가 눈치 보여 전전긍긍하다가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얻은 딸아인데…. 미안한 마음에 나는 연신 딸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아내와 나는 결혼한 지 칠 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좋다는 산부인과는
다 다녀 보았지만 허사였다. 아이를 달라고 우리 부부가 그렇게 아침 저녁으로 기도했건만 하나님은 별다
른 응답이 없으신 듯했다. 그 즈음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조심스럽게 입양을 권하셨다. 처음
에 난 펄쩍 뛰었다. 하지만 아내는 의외로 담담했다. 어머니께서도 초기엔 완강히 거부하셨지만 후에는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는 다 뜻이 있을 거라며 순순히 받아들이셨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우리
딸, 에스더. 사십이 넘은 나를 아빠로 만들어 준 아이였다. 딸 만큼이나 나도 입학식을 고대했었는데….
뒤늦은 저녁상을 물리고 딸 아이와 근처 문방구에라도 가서 작은 선물이나마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겉
옷을 걸치려는데 갑자기 매형과 누나가 들이닥쳤다.
“아이구~ 우리 에스더, 입학 축하한다.”
“고모, 고모부~”
딸아이는 저렇게 좋아하건만 나는 매형 얼굴을 보니 예전의 일이 떠올라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아이엠에프 때문에 갑자기 가게가 남의 손에 넘어가려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나는
매형에게 보증을 부탁했었다.
“형님, 그리 큰 돈이 아니니까 너무 염려 마시구요. 만약 잘못되면 지금 있는 방이라도 빼서 형님한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게요.”
“저기… 처남. 모처럼 부탁하는건데 미안하네. 자네 누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결혼 전에 우린 서로 약
속했거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보증은 서지 말자고… 내가 다른 걸로 도울 방법은 없을까?”
큰 돈도 아닌데 믿었던 형님께 거절당하자 정말이지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믿었던 곳에서 돈이
나오지 않자 난 가게를 다시 시작할 꿈은 엄두도 못냈고,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의 경비로 취직했던 것이
다. 그 이후로 나는 형님과 누나 볼 일이 거의 없어졌고, 명절 때에도 가벼운 눈인사 정도만 하고 형님 내
외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런데 서로 불편한 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형님 내외는 에스더의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한다며 밤 늦게
찾아온 것이다.
“자네, 이거 받게나.”
형님이 나에게 건네준 것은 통장이었다. 그것도 에스더 이름으로 된 통장.
“아… 별거 아닌데 이거 참 쑥스럽구만. 팔 년 전 에스더가 처음 우리 가족이 되었을 때부터 아이 이름으
로 든 걸세. 내가 뭐 도울 게 있어야지.”
통장을 펼쳐보니 근 팔 년 가까이 매달 꼬박 오만 원씩 넣은 것으로 적혀 있었고 지금은 사백만 원이 훨
씬 넘어서 있었다.
“원래는 에스더가 중학교 들어가면 얼추 목돈이 만들어 질 거 같아서 그때 주려고 했는데… 주위 이야기
를 들어보니 요새는 초등학생이 돈이 더 든다고들 하잖나. 그래서… 얼마 안 되지만 장학금이라고 생각하
고 받아 주게.”
사실은 형님도 지난 해에 공장에서 조기 퇴직을 당했고, 큰 애 대학입학에 누님 당뇨병 약값에… 돈 들어
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을 텐데….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놀던 에스더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내 무릎에 놓여져 있던 통장을 집어 들
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짚으며 통장 첫 장에 쓰여져 있는 자기 이름을 더듬더듬 읽어 내려
갔다.
“저 엉. 에에~ 스 더.… 아빠 이거 내거야? 우와… 아빠 이거 돈이야? 그럼 나 부자야?”
에스더는 제대로 숫자를 읽어내지도 못하면서, 자기 이름으로 무언가 생겼다는 것에 신나는지 통장을 높
이 쳐들고 방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나 부자다. 아빠? 나 부자지? 그치?”
“그래…에스더도 부자고, … 아… 빠도 부자야….”
■ 정일성 / 서울 관악구 신림동/월간 낮은울타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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