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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웅들이여 말하라 |  | |
| 싸우고, 찾고, 발견하고, 굴복하지 않았네
1911년 12월 오후 3시. 로알 아문센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방으로 드넓은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느닷없이 썰매 운전자로부터 ‘정지!’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추정해본 결과 남극점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것으로 원정은 끝났다 (…) 동상으로 얼어 터진 다섯 개의 손이 깃대를 잡아 하늘 높이 들어 올려 남극점에 꽂았다. ‘이 남극점에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의 깃발을 꽂으며, 이제부터 이 고원은 하콘 7세 고원이라 부른다.’이 순간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것으로서 지구에서 가장 하얀 땅, 남극대륙은 결국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영웅들이여 말하라」는 가장 미지의 세계인 남극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얼음의 90퍼센트가 모여 있는 남극은 펭귄과 바다표범, 바다새 종류가 살고 있을 뿐 지금까지도 인간이 접근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날씨, 살이 베어나갈 듯한 혹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빙하,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크레바스는 이 곳을 정복하고자 다가간 사람들을 도도하게 밀쳐냈다. 제임스 쿡이 석탄선을 타고 남극의 고위도 지역을 일주했던 1722년부터 1922년 어니스트 H. 섀클턴의 탐험에 이르기까지 남극을 방문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항해 횟수도 모두 합쳐서 100여 차례를 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남극탐험사에서는 1895년 벨기에 해군 장교 아드리앙 제를라슈가 탐험대를 조직, 남극해에서 처음 월동에 성공한 시기부터 1922년까지를 ‘영웅시대’라고 따로 명명한다. 이 책에서 중심을 두고 있는 것 역시 이들 영웅들의 탐험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명명법을 따르자면, 남극에서 열 다섯 달을 보낸 제를라슈의 항해에 일등 항해사로 참여한 아문센을 비롯하여, 디스커버리호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친 로버트 F. 스콧, 어니스트 H. 섀클턴까지가 ‘영웅’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건 영웅적인 그것이라기 보다는 호기심과 탐험정신, 그리고 인내력이 극에 달한 인간의 단면이다.
그중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점 정복을 향한 경쟁은 남극탐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광과 비극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1910년 6월 1일, 테라 노바호를 타고 영국을 출발하여 오스트레일리아에 정박한 스콧은 북극탐험을 위해 떠났던 노르웨이의 아문센으로부터 방향을 돌려 남극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전보를 받는다. 스콧으로서는 강력한 도전자가 생긴 셈이었다. 그러나 12월 14일, 최초로 남극점에 꽂힌 것은 노르웨이 국기였고, 국기가 꽂힌 그 순간에도 스콧 일행은 사력을 다해 빙벽을 넘고 있었다. 스콧 일행이 마침내 남극점에 도달하기 하루 전인 1월 17일, 스콧의 일기는 이미 빼앗긴 승리와 영광을 예견하고 있었다.
“남극점. 그렇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바라던 상황이 아니다. 잔인한 날이다. … 신이시여! 우리가 겪은 고통을 보상해 줄 최상의 대사가 아니라면, 이곳은 잔인하고 두려운 곳일 뿐입니다. … 이제 기지로 돌아가기 위한 절망적인 싸움만이 남았다. 나는 우리가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p.316)
낙담하여 돌아가는 길은 더욱 가혹했다. 대원들은 동상과 피로에 시달렸고 마침내 한달 후에는 썰매를 끌던 대원 한 사람이 동상으로 죽었고, 며칠 뒤 역시 동상으로 고생하던 대원 오츠는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 천막 밖으로 나가더니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산보를 하러 나가는데,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였다. 스콧을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사나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람에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그들은 1912년 3월 말, 모두 숨을 거두었다.
그후 스콧은 남극탐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전설적인 비운의 영웅으로 기록되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스콧보다 한 발 먼저 남극점에 도달해 영광을 차지한 아문젠은 북극점에서 실종되었고 아무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1928년 6월 무렵의 일이었다.
제임스 쿡에서 아문센, 스콧을 거쳐 어니스트 H. 섀클턴까지, 탐험대를 이끈 리더들이 절대로 잊지 않았던 것이 있다. 그것은 굳은 믿음과, 침착성,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겠다는 강한 도전정신이었다. 물론 기록에 따르면 어떤 탐험가는 이기적이고 편협하여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남극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그 의지는 빙산보다도 크레바스보다도 청정하고 웅숭깊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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