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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타는 십리밖 물 냄새를 맡는다 |  | |
| 풍경은 그 정신의 자화상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풍경´과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밑줄긋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줄 친 문장을 앉아서 일어나서 그리고 누워서도 읽는다. 책의 여백은 곧 나의 사색으로 채워진다. 책 안에 들어있는 작가의 ´풍경´과 책 밖에 놓여있는 나의 ´풍경´이 일치하는 순간이다. 독서가 남긴 편린은 이렇게 해서 오랜 흔적을 남기게 된다.
허만하는 ´풍경(視)´의 시인이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풍경이란 저마다의 정신의 자화상 같은 것이다˝는 전언은, 아스라한 기억의,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것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메시지이다. 그래서 어쩌면 추억이란 ´스펙트럼의 짜깁기´이며, 인생이란 ´감각 통계´(sense data)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이것은 가벼운 것들에 대한 동정,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 일시적인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나아가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1957년 시단에 등단해 1969년 『해조(海藻)』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한 후 허만하는 30년의 침묵을 깨고 지난 해 한 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스톤헤지의 유적처럼 발굴´된 이 노시인의 두 번째 시집『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솔, 1999)가 문단에 가져다 준 충격은 대단했다. 문학의 진정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속도전의 시대에, 이 시집이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삶의 존재론적 물음과 생명의 시원적 추적이라는 화두가 과연 가능하기나 한 시대인가. 그러나 시집으로서는 드물게 몇 달 안에 5쇄를 찍으며 이 시인은 두 개의 문학상(한국시인협회상·박용래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존재의 무거움을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는 생명체라는 것을 의미하는 사실이다.
『낙타는 십리 밖 물냄새를 맡는다』는 시인의 앞선 시집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산문집이다. 이 책에서는 동양과 서양, 지역과 세계, 토속과 이국, 전통과 현대가 화해롭게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릴케에게서 김춘수를, 유치환에게서 메를로 퐁티를, 세잔느에게서 이인성을, 통일신라의 기와 무늬에서 브람스의 음악을 떠올린다. 그는 그가 만난 풍경과 사물에서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것은 고고학으로 환원되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은 ´복원(復元)의 꿈´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인은 분명 코스모폴리탄이지만 세계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않고 변방에만 머문다. 획일화되고 평준화된 ´수평´의 논리가 강요되는 지금, 그는 내면 아래로 깊이 내려가는 벼랑같은 ´수직´의 시학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수직성이란 퐁티의 말처럼 ˝평면에 굴복하지 않고 일어서는 실존˝이다. 그래서 ´비´, ´폭포´, ´나무´의 이미지는 시인의 초상이자 못다 이룬 시적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심연의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려 본 사람은 안다. ˝삶의 주관적 체험이 가장 보편적인 이유는 인간의 본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밀 시오랑)이라는 사실을. 허만하의 ´풍경´은 잊혀져 가지만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존재에의 향수´인 것이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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