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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속을 통과한 사랑
[ 한수자· 한우리복지관]

우리 둘째 할머니에게서 100번쯤은 들은 어쩌면 더 들었을 수도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둘째 할머니는 자녀도 없이 조카인 우리 아버지 집에 오셔서 집안 일도 거들고 어린 저도 돌봐 주시면서

지내곤 하셨습니다. 둘째 할머니는 둘째 할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인데 둘째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결혼한

둘째 할머니와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내다가 공부한다고 서울 올라가서 소위 신여성이랑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업에 실패하고 큰 병을 얻기 전까지는 서울부인과 지내다가 6.25전쟁이 나면서 고향인 시골

로 쫓겨나다시피 하여 내려와서 젊은 시절 버렸던 둘째 할머니의 병수발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둘째 할머

니는 병든 남편이지만 대환영하셨고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를 간호하느라 남들 다 떠난 피난도 못가고 총알이 우박 쏟아지듯 하는 전쟁터를 정면 통과하여

한약방을 하던 친정 집에 가서 약을 구해다가 할아버지에게 먹이며 정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할

아버지를 위하여 총알 속을 통과했던 사랑의 영웅담을 어린 저에게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고 또 하셨

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버림받았던 시절의 아픔보다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순간만을 기억하는

듯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어쩌다가 고향에 내려 온 할아버지의 그림자라

도 밟고 싶어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를……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할머니의 용감하고 어리석은 사랑에 대

해 비웃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름답다고 기억할 뿐입니다. ▣

[월간신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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