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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보따리
작년 여름 시아버님 생신이라서 밤늦게 시골에 가는 중이었다.
비가 무척 많이 내리고 있는 국도로 한참 달리고 있는데 웬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를 이고 어두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태워다 드리자고 했지만 나는 내키지 않았다. 시간도 늦었고 할머니가
비에 젖었으니 시트가 젖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남편은 괜찮다는 할머니를 막무가내로 태웠다. 할머니는 내게
무척 미안해했고 장에 갔다가 막차를 놓쳐서 십리가 넘는 길을 걸어
오셨다고 했다.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
다음날, 아버님 생신 상을 차려드리고 오후 늦게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
이었다, 어제 그 길에 그 할머니가 뙤약볕 아래 서 계시는 게 아닌가.
할머니는 우리를 보자 너무나 반가워하시며 어제 너무 고마웠다고
큰 보따리 하나를 차에 실으라고 손짓을 하셨다. 그리고는 우리를 못
만날까 봐 아침부터 그곳에서 우리 차를 기다리셨다며 함박 웃으셨다.
대전에 돌아와 그곳에서 풀어보니 그 속에는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가꾼
호박, 고추, 상추 같은 채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께 너무
죄송스러웠다. 비에 젖을 시트만 생각했지 그 작은 베품에 그렇게 고마워
하시는 따뜻한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 저녁 우리 식구는 도란도란 모여 앉아,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채소가
시들까 봐 걱정하시며 하루 종일 우리 차를 기다리셨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맛있는 된장찌개에 호박과 고추를 넣어서 먹었다.
소중한 걸 느끼게 해 주신 할머니가 너무 고맙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빈다.
‘기아자동차’ 2003년 2월호/ tkdqja777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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