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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를기다리며 |  | |
| 아무 생각없이 읽어나가다보니 끝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스토리 속에 담겨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나에게 필요할 듯 싶다. 글에 적혀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니 말이다. 등장 인물들의 모습, 대사 하나하나를 처리하는 그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소름이 끼친다. 이 작품은 그런 것이다. 단순한 스토리 속에 잠들어있는 심오함을 엿보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기다리는 ‘고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어떠한 부수적인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고도를 기다린다. 때론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이야기들을 건내면서 그들은 어두워지는 그 순간까지도 막무가내로 고도를 기다린다. 나무에 목을 매는 생각도 하고, 어두워짐과 동시에 그들은 간직했던 희망을 버릴 것 같으면서도 다음 날이 되었을 땐 또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상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반복적인 일상은 모두에게 무의미 그 자체이다. 고도의 하인은 이틀 연속 그들을 찾아온다. 오늘도 고도가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는 같은 소식을 이틀 연속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주인의 이야기를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의 삶은 단 이틀동안 그의 삶에서 보여지고 있는 무의미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듯 했다. 포조와 럭키 역시도 그랬다. 첫날, 포조의 잔인함은 럭키와 자신을 구분짓는 기제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그는 럭키를 무시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드는 듯 해 보였다. 그 잔인함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뼈다귀를 던져주면서 마치 크나큰 자선이라도 베푸는 것 마냥, 자신은 바쁜 길을 가는 사람이지만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지루함을 해결해주기 위해 파견된 사람인 것 마냥,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둘을 이용해 자신의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 듯 해 보였다. 그리고 럭키는 어릿광대 마냥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해주는 포조를 자신의 주인 마냥 여기고 의지하고 있었다. 둘째날, 그들의 모습은 정반대가 되어 있었다. 두 눈이 먼 포조는 바로 전날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만났다는 사실 역시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럭키는 말 그대로 럭키였다. 함께 있어야지만 그의 삶이 가능한… 포조를 대하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태도 역시도 변화해버렸다. 두 눈이 먼 포조를 하나의 놀림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그들의 태도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미묘함을 느꼈다. 이러한 반복적인 상황은 블라디미르만이 기억한다. 나머지 등장인물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알 수 없는 새로움이다. 하지만 그 새로움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그들은 이미 희망을 잃어버린 듯, 지금 현재만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과거는 이미 망각의 영역으로 들어가버린 듯 해 보였다. 그러한 등장인물들의 특성은 블라디미르가 감당해야 하는 답답함을 배가시키고 있는 듯 했다. 오로지 그만이 세상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결코 즐거움일 수 없었다. 그 기억은, 단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일상일 뿐이었다. 지루함, 그 자체.. 블라디미르에게 하루하루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이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기다리고 있는 고도는 결국 또 하루의 시간을 그들의 손에 쥐어주고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듯 해 보였다. 영원히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모습은 어쩌면 세상 속에 갇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그만 가자고 이야기하지만 결코 움직이진 않는, 그 기다림은 언제 즈음 끝날 수 있을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고도는 무엇인지, 책을 덮은 지금 이순간에도 그 질문은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강타하고 있다.
by 영풍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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