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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 |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왠지 엉뚱하면서도 물음표로 끝나지 않아서 심오해 보이기도 한 질문 같다. 지은이는 박완서. 유명한 작가다. 1학년 때 국어(상) 교과서에서 처음 접해 본 그의 작품 ´그 여자네 집´은 곱단이와 만득이의 사랑 외에도 우리 민족의 슬픈 비극사를 보여줘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중매체에서 많이 들어왔다. 이 작품 또한 ´을까´로 끝나서 두 작품이 서로 무슨 관련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쓰잘떼기 없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생각이 맞았다. 작가의 말 마지막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미완으로 끝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이렇게 완결토록 꾸준히 격려해준 웅진 출판사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랬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싱아 이야기의 후속편 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난 싱아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읽으면서 ´그 여자네 집´이 생각났다. 시점이 1인칭이기 때문이다. 박완서의 소설은 다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 우리 문학 교과서에 조금만 실린 박완서의 ´배반의 여름´인가 하는 소설도 1인칭이었다. 이런걸 발견해 내다니 나는 정말 천재 같다. 하하하. 배경은 1950년 6·25 당시. 누구나가 소설 쓰기 좋은 소재 같지만 보편적인 내용이 아니다. 남들이 다 피난 갈 때 가지 않고 생활하는 모습...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만약에 국군이 이겨서 피난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그걸 숨기고 같이 피난간 척 하려는 이유를. 그런데 알고 보니 ´나´의 가족들은 비굴하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피난을 가지 않은 다른 몇 집들도 공산군에게 잘 보이면서 사는 걸보고 내가 모르던 그 시대의 이면을 알게되어 당황 스러웠다. 식량이 없어서 올케언니와 함께 빈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는 모습은 내가 꼭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가족들 모두가 올케에게 의지하고 있어서 후에 올케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까 궁금했는데 별로 궁금해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올케는 오빠가 죽은 후에도 변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시집 식구들과 함께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보기 좋았다. 오빠는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다쳐서 가장 노릇을 못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지금 마누라가 있는데도 죽은 첫 번째 마누라네 친정 집에 피난 가고 싶어하는 그 심보는 도대체 뭔지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좀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나´가 피 엑스에 취직한 후의 이야기다. ´피 엑스´라면 군대에 있는 구멍가게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이 때가 전쟁 때여서 그런지 미군 피 엑스는 상당히 넓고, 크고 종류도 많은 것 같다.
피 엑스에서 본 사람들은 다 특이했다. ´나´가 서울대생인걸 자랑하며 다니는 ´허 사장´, 영어 잘하고, 말 잘하는 ´티나 김´, 엉터리 영어로 초상화 그리라고 미군 꼬시는 고등학교 1학년 ´이 군´, 피 엑스 총책임자이며 티나 김과 각별한 관계인 ´싸진 캐넌´ 등. 나중에 이 군은 피 엑스 물건을 훔쳐서 초상화 부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를 ´나´가 옮겨간다. 곧 초상화 부의 매상이 떨어지자 결국 ´나´도 어쩔 수 없이 이 군이 했던 것처럼 엉터리 영어로 사람들을 꼬시게 되고 섹시해 보이기 위해 파마까지 한 부분은 재밌었다. 오히려 이 군이 맡았을 때보다 더 매상이 올라가자 ´나´가 거만해 져서 화가들(´간판장이´라고 해야 맞겠지만)을 무시하자 한 화가가 화집을 들고 와서 특정 페이지의 명함 만한 그림을 보여주고 아무 말 없이 간 건 더 웃겼다. 소심하게 시리.
알고 보니 이 소설은 작가 박완서의 체험기록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사실 자기의 경험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것까지 솔직하게 적은 작가가 너무 존경스럽다. 소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경험으로도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 소설을 읽고 작가 박완서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고, 그래서 더 많은 그의 작품을 읽어 볼 계획이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지만 이제 작가가 쓸지 모를 결혼후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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