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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옥에 간 작가들 |  | |
| 주명철(소나무)의
‘지옥에 간 작가들’을 읽고
여러 권의 책을 읽다보면 책을 쓴 작가도 틀리고, 또 씌여진 시기도 제각기 다르지만 읽는 책마다 고유한 향기와 감촉이 있음을 느낀다.
어떤 책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쭈욱 훑기만 해도 내용이 파악되지만, 어떤 책들은 밑줄을 그어가며 속속들이 파고 헤치며 읽어도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도 있다.
또 재미있게 읽는 책이나 어떤 지식을 요구하는 책이라면 문득 어느 한 지점에 이르러 그 내용을 잘근잘근 씹으며 꼼꼼히 읽기가 시작된다.
씹을수록 맛이 나는 그런 책..., 한마디로 읽기도 편하고 내용 또한 괜찮은 그런 책은 그만 덮어두기로 한다.
‘아껴읽기’를 위해서다.
하지만 ‘아껴읽기’로 점찍을 수 있는 책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 ‘지옥에 간 작가들’은 ‘아껴읽기’를 하고 싶은 그리 많지 않은 그런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책’을 다룬 책을 대하면 언제나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볼테르, 라보멜, 프랑수아 제나르, 모를레 신부, 마르몽텔 등,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던 문인들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금서’로 낙인 찍힌 책들과 작가들을 중심으로 18세기 프랑스 문화적 특성과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과 억압의 문제를 살핀 책으로써 ‘바스티유의 문인들’과 ‘지옥에 간 작가들’, 그리고 ‘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을 지은 「주명철」교수는 이미 ‘90년도에 ‘바스티유의 금서’로, 책을 통해서 18세기 프랑스 역사읽기를 보여준 바 있다.
권력과 자유사상과의 첨예한 충돌을 ‘금서’를 통해 읽음으로써, 바로 프랑스 대혁명에 대비하는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이 어떻게 탄압 금지되었는지 보여준다.
‘지옥에 간 작가들’은 바로 이 지점, 한 시대에 ‘금서’의 족쇄가 채워진 책의 좀더 자세한 들여다보기를 통해 그 시대 권력계층의 가치관을 읽어낸다.
프랑스 혁명의 지적 배경을 전공하는 서양사학자가 쓴 18세기 프랑스 금서와 검열의 문화사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는 ‘지옥’이라 불리는 희귀자료 열람실의 책시렁이 있다고 한다.
이미 1600년대 말부터 ‘읽으면 해롭다고 생각하는 책을 두는 비공개 장소’였다.
프랑스 혁명 당시 성난 군중들이 전제 정권의 상징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했을 때 발견한 것은 7명의 죄수와 393종의 책이었다.
즉 「지옥에 갇힌 금서」들이었다.
한사회가 선진적인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잣대로써 장애자의 처우수준을 들 수 있듯이, 금서의 양과 질로 한 시대의 문화성격을 판단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이 학자의 주장이다.
사형선고를 받아 지옥의 책시렁에 얹힌 작가로는 「사드 후작, 모파상, 보들레르, 랭보」같은 유명작가도 들어 있다.
루이 16세 때 혁명 전 왕비의 방탕함을 주제로 한 시들은 왕조의 정통성을 조롱했다.
18세기 음란서적은 성직자의 위선을 공격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을 비웃었다.
성직자의 쾌락주의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거나 음탕하고 외설스럽기 짝이 없는 글들로 왕과 귀족의 권위는 대중의 손 안에서 놀았다.
경찰이 틈나는 대로 압수해갔음에도 해적판까지 나돌 만큼 인기높은 베스트셀러였기에 은근한 재미도 못지않다.
또 하나, 이 책에 담긴 짙은 역사적 교훈 외에 나에겐 한 가지 더 특별한 사유가 남는다.
책의 문화적 변화를 추적한 이 책의 후반부 덕택이다.
‘책’을 소재로 한 상상력이란 끝이 없지만, 그 가운데 감동의 진폭에서 「보르헤스」의 작품은 단연 으뜸이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는 책을 우주라 여겼다.
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력의 확장이라 했다.
‘책은 기억하려고 읽는다.’
이 책에서도 ‘기억’과 ‘책’의 함수관계를 푸는 작업이 이어진다.
책이 없던 시절, 기억술은 중요했다.
기억술은 생각을 보존하는 글씨가 정착되면서 쇠퇴하고, 필경사들은 손노동의 피로를 무릎쓰고 책을 베꼈다.
덕분에 기억의 저장고인 ‘도서관’은 더욱 풍부해 졌고, 문명은 책과 도서관이라는 기억공간에 모든 정보를 갈무리해 놓았다.
21세기에 기억의 공간은 단지 도서관에만 있지 않다.
컴퓨터 화면만 켜면 인류기억의 모든 정보를 끄집어 낼 수 있다.
인류 전체의 기억용량은 공룡의 몸집만큼이나 거대하지만 개인은 문명이 커질수록 초라해질 뿐이다.
그 간극의 너비만큼 인간은 절망한다.
이제 마지막 기댈 곳은 아직도 기억의 일부를 확인시켜 주는 ‘책’ 뿐이다.
나의 ‘아껴읽기’를 위해 책장을 채워주고 있는 나의 책들..., 그 중에서도 약간은 어려운 듯한 이 책 ´지옥에 간 작가들´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접한다는 것도 나만의 우주공간에서의 작은 위안임을 믿는다.
by http://www.13oo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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