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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오버 수로 바이러스
<게임오버 수로 바이러스> (김설, 문학과지성사, 1997)를 읽다.



이 소설은 마치 전자 오락을 수십 번 되풀이 한 결과를 한 편의 글로 옮겨놓은 듯 하다. 주인공 수로는 어느 길을 갈 것인지 망설이다가 a라는 길을 택했다. ....... 결국 길을 잘 못 들어선 수로는 깡패에게 맞아 죽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수로는 사실 b라는 길을 선택했었다.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된다.



잠들기 전 게임을 ´Save´해 놓고, 다음날 다시 ´Load´해서 게임을 수행해 나가다가 결국 길을 잘 못 들어서면 ´Game over´. 그러나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Menu´로 돌아가 ´New game´이 아닌 ´Load game´을 클릭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게임은 시작되는 것이다. 죽은 병사가 다시 살아나고, 부서졌던 벙커가 다시 복구되며, 돈과 에너지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온다. 물론 패배의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에 속칭 ´계두´가 아닌 다음에야 실패를 거듭하진 않는다. 이 쪽이 아니라 저 쪽으로 공격. 결과는 성공이다. 관우가 양양성을 차지했든지, 적은 Commend center를 까부셨든지, 1단계를 통과했든지, 공주를 구했든지, 하다 못해 미소녀의 셔츠 하나라도 벗겼을 터. 아, 그러나 어느새 시간은 무심히 흘러 새벽 2시. 밤 새지 말라는 김국진의 오래된 조언을 받아들여 다시 게임을 ´Save´해놓는다. 그리고 내일이면 또다시 삼국통일을 위해, 져그의 몰락을 위해, 미소녀의 옷을 최후의 한 장까지 벗기기 위해, ´Load´와 ´Save´를 수 없이 반복한다.



이 소설 안에는 적어도 십여가지 결말이 존재한다. 그 하나하나를 결말로 인정한다면 <게임오버 수로 바이러스>는 장편 소설이 아닌, 소설집이 될 테지만, 결국 이 소설이 하나의 장편 소설이라는 지위를 얻는 것은 최후의 결말을 제외한 나머지 결말로 이끄는 각각의 이야기는 결국 소설이라는 허구적 이야기의 현실이 아닌 허구이기 때문이다. 허구 속의 허구는 독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허구가 되고, 허구 속의 현실은 인정받는 허구가 된다.



어차피 현실이란 허구가 구체화된 것일 뿐이라는 착각마저 자연스러울 만큼, 현실과 가상세계, 즉 허구는 이미 충분히 서로를 뒤집는다. SF의 고전 ´토탈리콜´, ´매트릭스´나 영화 ´더 게임´, ´스트레인지 데이즈´ 등에서 이미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없다. 가상 현실을 모방한 현실도 등장하는 세상이다. 때로는 가상 현실이 더 매력적이고 심지어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이 소설이 갖는 의의는 결국 아주 자명하다. 디지털 게임의 소설화. 영상 언어의 활자화. 느와르 영화의 소설 차용.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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