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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사라마구 : <눈먼 자들의 도시>

역자 : 정영목 / 출판사 : 해냄출판사 / 출판일 : 1998년 12월 25일 / 쪽수 : 370

백색의 악
만약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사람만이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과 죽음, 폭동에서부터 우리는 빠져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조차 상상하기 싫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글을 나는 여름 방학 동안 읽게 되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이 독특한 제목의 글을 좇아 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멀어버릴 듯한 느낌, 마치 이 글의 주인공들과 생사를 함께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작자의 치밀한 구성과 문체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이 없었다.
이 글은 ´98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이자 포르투갈 지성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이었는데, 문장 부호와 쉼표, 마침표만을 사용하며, 직접·간접 화법과 단락 구분을 전혀 하지 않는 등 독특한 그만의 문체를 엿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다른 글들과 달리 집중력과 긴장감을 가지고 이 책에 적응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하지만 그 적응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소설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뭔가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읽어 가면 갈수록 나도 모르게 작가의 담론에 이끌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조금씩 인습과 편견, 고정 관념과 정형화된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마 해방된다는 것은 다시금 눈을 뜬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이 글은 도로 한가운데에서 어느 한 남자가 눈이 먼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남자는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인다고 말한다. 마치 우유 색깔의 두터운 하얀 막이 눈에 붙은 것처럼. 결국 눈 먼 남자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집으로 가게 된다. 나는 왜 그가 눈이 멀었는지 몹시 궁금함을 느꼈다. 눈 먼 남자는 아내와 함께 안과를 찾아간다. 그 안과의 대기실에는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댄 노인, 사팔뜨기로 보이는 어린 남자애와 그 애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겉으로는 별 특징이 없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나는 작가가 병원의 현재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표현하려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썼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눈먼 남자가 찾아간 안과의 의사는 육안으로는 이상이 없다는 걸 알고, 정밀 검사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정말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의사는 우선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고 여러 가지 의학 서적을 뒤져가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 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아아, 의사도 눈이 멀어 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머는 것이 전염병이라면 그것은 아주 빠른 속도로 전세계로 번져 나갈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눈먼 남자를 본 사람은 전부 눈이 멀어 버렸었다. 물론 그 눈먼 사람들을 도와 준 사람이나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눈이 멀어 버렸다. 눈먼 사람의 눈만 보아도 아니, 그 사람 자체만 보아도 눈이 멀어 버리는 엄청난 병이라는 생각이 들자, 더욱 더 몸이 오싹해졌다.
의사는 아침 인사를 할 때 조심스럽게 눈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한 다음, ˝앞이 안보여, 어제 진찰했던 환자에게서 옮았나 봐.˝라는 말을 하였다. 눈이 머는 것이 옮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또다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사 아내의 의연한 행동이 나를 진정시켜주었다. 나라면 아마 그 상황에서 남편이 그렇게 말했다면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의사의 아내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행동했다. 의사가 보건부에 신고를 해야 된다고 할 때에도 우선 의사에게 아침 식사를 먹인 후에, 실명 전염병의 발발을 알리게 하였다.
처음에 보건부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실명 전염병에 걸려 사태가 심각해진 것을 안 보건부는, 직접 나서서 일을 처리한다. 눈 먼 사람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눈 먼 사람들만 격리 수용시킨다는 것이었다. 곧 의사의 집에도 구급차가 도착하고 의사와 의사의 아내는 차에 탄다. 그런데 구급차 운전사가 눈 먼 사람만 데려가야 한다고 하며 의사의 아내는 내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는 아내도 방금 눈이 멀었다며 데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두 부부는 구급차에 타서 수용소로 가게 된다.
보건부에서는 이 실명 전염병을 ´백색의 악´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백색 질병, 백색 공포 등 많은 수식어로 표현하였었다. 갑자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백색이란 과연 무엇일까? 단지 눈이 멀면 모든 것이 하얗게 보여서 그렇게 지어졌다면, 그 백색은 무엇을 상징할까? 글을 읽는 동안 그것은 나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수용소는 현재 쓰고 있지 않은 정신병원이었다. 의사와 의사의 아내는 그 정신병원 아니, 수용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오른쪽 병동의 첫 번째 병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작가는 눈이 멀었다는 의사 아내의 눈을 통해 그 병실을 묘사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의사의 아내는 눈이 멀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남편을 따라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다른 눈먼 사람들은 그들의 집에서 차례차례 체포되어서 함께 왔다. 의사는 아내를 통해 그들 중 자신의 병원에 왔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용소는 눈 먼 사람들의 소굴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 곳의 형편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화장실은 있었지만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방에 불과했다. 그리고 병실의 구석구석은 오물과 쓰레기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복도는 화장실 구실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화장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복잡한 수용소의 구조상, 더욱이 눈이 먼 상태에서는 화장실을 찾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눈이 멀었지만 냄새를 걱정해 복도에서 용변을 처리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복도가 포화상태가 되어 그 역겨운 냄새가 수용소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나는 정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 먼 사람들은 이미 그 냄새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이 더욱더 안타까웠다. 이제 후각마저도 잃겠구나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이 짐승으로는 변하지 않으리라고 중얼거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누가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면 그대로 죽을 목숨이었다. 식량은 수용소 주위를 지키고 있는 군대에서 지급했다. 그래서 항상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음식이 오는 시간을 몹시 기다렸다. 하지만 군인들이 눈이 머는 것을 두려워해서 식량을 수용소 입구에다 그냥 놓아두고 가곤 했다. 할 수 없이 눈 먼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나와서 그 음식을 가지고 가야했는데 눈 먼 사람들이 아무리 수용소에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입구에 있는 음식을 정확히 찾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결국 음식을 가지러 나왔던 사람이 잘못해서 군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다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아무런 의도 없이 실수로 다가선 사람, 그것도 눈이 멀고, 무방비 상태인 민간인에게 무자비하게 총을 쏜 군인들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죽은 눈 먼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화도 사그라지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식량 문제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눈이 먼 사람들 중에서 돈에 눈이 멀어 음식을 가로채 나머지 눈 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귀중품들을 내놓아야 음식을 주겠다고 협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모두 협력해도 앞날이 불투명한데, 오히려 공동사회를 망치는 짓을 해버렸으니, 그들이 언젠가는 큰 봉변을 당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돈을 내고 음식을 사 먹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식량을 공급하던 군인들이 식량을 공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식량을 돈과 바꾸어 주었던 사람들도 더 이상 식량을 주지 않았다. 나는 혹시 군인들이 전염병을 막기 위해 이 사람들을 굶어 죽이려고 일부로 그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군인들도 모두 눈이 멀어 버린 것이었다. 정말 앞이 캄캄해왔다. 이제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눈 먼 사람들은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식량을 갈취한 사람들의 음식을 먹기 위해 그들의 병실에 불을 질렀다. 식량 배급은 끊어졌지만 식량을 갈취한 사람들에게는 식량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분은 급기야 수용소 전체에 퍼지게 되었고, 수용소 안은 불바다가 되어 도망가는 사람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마치 전쟁터 방불케 하였다. 눈 먼 사람들은 불이 난 것을 뒤늦게 알고 대피하다가 계단에서 밟혀 죽기도 하고 미처 피하지 못해 불에 타 죽기도 하였다. 설사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먹을 식량이 없어 굶어 죽기가 일수였다. 수용소를 지키던 군인들도 모두 눈이 멀어 버려서 그 곳을 떠난 지가 오래 되었을 뿐더러, 불로 인해 남은 식량도 다 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수용소 안의 같은 병동에서 서로의 신뢰를 두텁게 쌓은 의사와 그의 아내, 첫 번째로 눈 먼 남자와 그의 아내, 검은 안대를 댄 노인, 사팔뜨기 소년,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일행도 음식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거리는 쓰레기와 오물로 수용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죽은 시체들이 거리에서 개들에게 먹히는 것보다 수용소에 있는 편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행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아내의 도움으로 어느 슈퍼마켓 창고에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음식을 찾아내어서 허기를 채우게 된다. 그리고 배고픔을 잊은 일행은 의사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남들보다는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된다. 물론 의사 아내의 도움으로. 나는 한 사람의 눈을 통해서 그들이 생활해야 한다는 것에서 그들은 복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답답하게 느꼈다. 나도 오직 의사 아내의 눈에 보이는 것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가 눈 먼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첫 번 째로 눈 먼 남자와 그의 아내가 눈이 멀어 버린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첫 번째로 눈 먼 남자가 눈을 감았다가 뜨는 순간 앞을 보았다. 그리고 곧 앞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내가 그 때 느낀 감정은 말로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흥분되고 기뻤다. 곧 이어 다른 사람들도 눈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정말 극적인 대 반전이었다. 나도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마구 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제 도시는 축제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여기저기서 행복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마음속에서도 축제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사람이 눈이 다시 보일 때 눈이 멀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이제까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사람, 바로 의사의 아내였다. 나는 이제까지 고생한 의사의 아내에게는 제발 눈이 머는 그런 불운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물론 글을 읽는 동안에도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가 혹시나 눈이 멀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머는 것은 이 글에서 인간 모두가 거쳐야할 운명인 것 같았다. 바로 의사의 아내가 눈이 머는 병의 마지막 전염자였던 것이다. 이 글은 의사의 아내가 눈이 머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라는 말과 함께.
내가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하필이면 의사 아내의 눈만 끝까지 멀지 않았을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폭력이 난무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혼란스러운 수용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타인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며, 희생과 헌신을 통해 사람들이 덜 불행해지도록 애쓰는 참된 인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그녀 곁에 있었다. 그녀 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처음부터 보아왔던 사람들이고,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또, 의사의 아내로서 냉철함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바로 선택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수용소에서 눈 먼 사람들이 생활하는 동안 나도 그 안의 일원이 된 느낌이었다. 그들이 슬퍼하면 슬퍼하고 그들이 기뻐하면 기뻐하고. 나는 책을 보거나, TV드리마, 영화를 볼 때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이거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가가 어떤 식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고 복선의 매개체는 무엇일까, 또 작품성과 글의 구성은 어떤가 등의 어떻게 보면 고등학교 1학년답지 않은 사고 방식으로 비평해 왔는데 이 글을 읽는 동안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품을 비평하기는커녕 글 속에서 작가의 요리대로 마음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고 작품 속에 빠져드는 나의 태도에 내 스스로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가 만든 가상의 세상에서 가상의 인물들과 희비를 같이 하게 된 것은 아마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사라마구의 솜씨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쉽게 읽어갈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나를 긴장시키고 놀라게 만들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해 지니고 있는 확신을 뒤흔드는, 아니 완전히 뽑아버리는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번 잡으면 쉽게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간과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특히 ´볼 수 없다´는 기묘한 설정은 세상이 오물과 쓰레기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수가 뿌려져 있기에 이를 보지도, 냄새 맡지도 못하는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준다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라마구에게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단지 촛불에 비친 일시적인, 그것도 희미한 환영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마구는 ´보고 있다´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서로 베풀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진정한 ´눈뜬 자들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일상에 대해 주의 깊은 시선을 돌리도록 경고하고 있었다.
이런 점들만 보더라도 ´눈먼 자들의 도시´는 대작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마도 나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대작 중의 하나로 나에게 남을 것이다.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들로 탈바꿈시키는 강렬하지만 고요한 변화의 힘이 깃들여 있다´ ´이 소설에는 밀레니엄을 꿰뚫는 뭔가가 있다. 한마디로 시대 정신이 넘쳐흐른다.´ ´인간 본성에 강한 의문을 던지는 사라마구의 문학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 등 세계의 신문들은 이렇게 이 작품을 극찬했다. 나는 이 작품이 그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또 그 이상의 가치도 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내가 이 작품에 대해 평한다면 ´인간의 야만적인 폭력에 관한 교과서라고 지칭할 수 있는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삶의 가치를 강하게 암시하는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이것은 이 글에서 보여준 계층화, 도덕과 체념에 대한 갈등, 현대인의 정신 이상은 인간의 모순과 비인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의사의 아내´를 통한 연대 의식은 인간의 선한 면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알고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나에게, 우리에게 말로써, 글로써 깨닫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라마구는 이 소설을 통해 그 쉽지만 어려운 깨달음을 글로서 표현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은 이 글의 작품성과 그의 표현력을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아니,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것이 아니라 볼 수는 있지만 보지는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백색의 악이란 백색 즉, 우리가 일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한 사회 혼란과 개인의 문제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라마구의 질타 앞에 나는 한없이 부끄러움과 왜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여지는 일상에 익숙한 우리의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다, 인류에게.
˝도시가 그곳에 그대로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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