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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레방아 |  | |
| 나도향 : <물레방아>
출판사 : 소담출판사 / 출판일 : 2001/4/20 / 페이지수 : 196
입추, 말복을 지나치고 세차게 내리쬐는 뙤약볕에도 바람은 불고 그 산산한 바람 때문에 홑이불만 덮고 자던 새벽 단잠에서 깨기가 일쑤다.
아마도 이것이 가을의 냄새인가 보다.
나도향은 1920년대 우리 나라 소설가의 대표적인 분으로 낭만적인 문예사조에서 벗어나 우리의 현실을 그리고 그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젊은 작가였다.
그의 작품에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것만도 단편에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등과 같은 장편에 <환희> 따위가 있었고 그 밖에도 그가 25세의 아까운 나이로 눈 감을 때까지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물레방아>는 그의 단편작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나는 언젠가 라디오를 통해서 물레방아를 소개받은 기억이 있다. 그 때 받은 느낌으로 순박하기만 한 이방원에 대한 애착과 동정, 허영심 많은 여성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아직도 여실히 기억된다. 그 후 내가 직접 물레방아를 찾았을 때 그 새로운 맛은 전보다 훨씬 진미가 나고 향내가 짙었다.
물레방아를 콩콩 돌리는 물줄기가 마을 앞 기슭을 스치는 아늑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이 글은 먼저 가난했던 우리 농촌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이방원은 지주 신치규의 땅을 소작하는 소작인이었고 그는 그 때까지도 봉건주의 제도 사상을 버리지 못한 한 사람으로서 신치규를 상전으로 고분고분 모셨다. 몇 사람의 지주들은 잘 먹고 잘 살았지만 그 밑에 머슴이나 다름없는 소작인들은 항상 하루 세 끼 걱정을 해야 했었고 그 아낙네들은 여자로서의 치장도 한 번 해 보지 못한 채 죽어라고 일만 했던 실정이었다.
이방원의 마누라가 쓸데없는 허영을 부린 것도 결국은 이 환경들이, 특히 허영심 많았던 그 마누라의 마음을 휘저음으로서 생겼던 것이리라. 그 허영심 많은 여인은 자기보다 그녀들이 끼고, 꽂고 있는 금반지와 은비녀들을 더 부러워했다. 이 정도는 여느 여자라도 갖고 있는 한낱 욕망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정도는 너무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사랑도 뿌리치고 늙어빠진 영감에게 자기 몸까지 바쳐 가면서 은비녀를 향해 헤맸던 그녀. 그것은 단순히 그녀의 사치심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 시대가 낳은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좀 더 정숙했어야 하였고 좀 더 남편의 사랑들 받아 줄 수 있어야 하였으며, 좀 더 빨리 뉘우칠 수 있어야 하였다.
그 반면에 이방원은 정말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는 신치규로부터 쫓겨 난 화풀이로 마누라를 때렸으나 곧 후회하고 사과하기 위하여 정답게 마누라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각 신치규와 만나고 있었다, 물레방앗간에서. 그래서 이방원은 마누라를 찾으러 물레방앗간으로 가는 것이다.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둘을 묶어 만신창이가 되도록 밟은 후에 시궁창에 처넣을 것인가 아니면 수호지의 무송이 서문경과 그의 형수를 죽이고 형, 무대의 원수를 갚을 때처럼 두 년놈의 모가지를 댕강댕강 잘라 버릴 것인가. 나는 가슴을 조였다. 그렇지만 사람 좋은 방원은 그렇게 서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그의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신치규는 반죽음이 되어서야 간신히 순검의 도움으로 그 더러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방원은 계집에게 빨리 같이 도망가자고 외친다.
˝빨리 도망 가. 같이 전처럼 살어.˝
방원은 아직도 그녀를 조금도 탓하지 않고 있었다. 아내의 잘못은 자기의 무력이 빚어낸 결과라 당연히 생각하고 앞으로 더욱 아내를 사랑할 것을 다짐하며 아내를 독촉하는 방원이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방원의 순박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기적인 것이란 단어조차 모르고 어떤 성현 군자보다도 용서와 아랑이란 말에 대한 생각이 깊은 방원. 그는 과연 가난했지만 순박했던 그 시대 농민들의 본보기가 아니냐!
그는 지상의 지옥이란 감옥에서 복수라는 것을 처음 알고 사무치는 원한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그는 아마 감옥보다는 찬 인간 세상의 한 부분에 소름이 오싹했으리라.
˝이 더러운 년, 놈들 단칼에 쑤셔 버리고 말 테다.˝
그는 과연 악마가 되어 있었던가! 그것은 나의 착오였다. 막상 마누라를 앞에 세워 놓은 방원. 그는 다시 감옥살이 전의 방원이었다. 방원은 정말 착한 사람이었고, 악인이 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감옥에서의 복수심도 바깥 세상의 냉대도 그는 잊어버렸다. 그는 또 다시 애원하는 것이었다.
˝여 봐, 같이 도망가서 살자구. 전처럼 재미나게 말이야.˝
하지만 마누라의 허영은 끝내 죽음을 택했다. 얄미운 마누라도 죽었고, 그 위에 가엾은 방원도 쓰러졌다. 정말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돈 없는 자는 여자도 빼앗겨야 한다는 법칙도 있는가? 돈 없어 못 사는 것도 억울한데 거기다가 여자까지 빼앗겨야 한단 말인가? 방원의 하소연을 단순히 이렇게만 표현한다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여기서 우리는 사라져 가는 순박을 발견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여자를 차지할 수 있고 명예와 권세도 누릴 수 있다. 순박은 필요 없다. 비현실적이다. 그러므로 모두 돈을 벌자.´ 사람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무식 속에 움터서 깨끗하게 살다가 이제 돈에 사무쳐 죽어 가고, 자식이란 것에 깔려 사라져 가는 순박을 무시할 수 없다. 순박은 우리 마음을 영원히 정화시켜 주는 좋은 것이다.
by http://www.edu.co.kr/kwank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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