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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  | |
| 김남주 수필집 :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출판사 : 시와 사회 / 발행일 : 1994/3 / 쪽수 : 392
1946년 전남 해남 출생.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형 선고, 88년 12월 가석방 출소. 1994년 2월 13일 췌장암으로 별세.
어느 책에서 ˝김남주˝라는 이름을 듣고 그의 산문집과 시집 두 권을 사게 됐습니다. 둔한 저로서는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읽는 속도가 너무 더디고, 어렵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까닭은?
그러니까 7, 80년대를 걸쳐 폭정에 항거하고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 일정부분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다소나마 밝아진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고마움. 그 젊은이들의 땀과 피로 말미암아 작은 들꽃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들이 잊혀지는 현실이 안타깝고, 잊고 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의 바쁜 생활이라는 변명이 부끄러워집니다.
이 책은 제가 본 세 권의 수필집 중에 한 권입니다. 시를 쓰게 된 이유와, 창작습관, 읽은 책들에 대한 독후감, 대담 글, 그가 생각하는 시와 시인의 사회적 갈등과 교도소내의 실상 등이 실려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충격! 이랄까, 새로운 시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들이 접하는 책들이 너무 한정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형 서점에 가서도 외국작가들 중에 왜 이렇게 항상 듣던 흔한 이름 외에는 없을까, 라는 의문과도 연결됩니다. 다소 전위적이거나 좌파 의식이 깔려있거나 권위에 도전하고 질타하는 내용의 책들은 번역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극히 일부의 외국작가들만이 몇 십년을 걸쳐, 그것도 한정된 분야에서만 출간이 허락되는 까닭에 애초에 그런 사상들을 받아들일 길이 차단된다는 사실. 일정 집단 이외의 사람들은 접할 수 없는 수많은 책들. 다른 하나는 ˝시인˝ 이라는 위치에 대해서입니다. 잊고 있는 감각을 되살리거나 미처 끌어내지 못했던 사고 범위를 깊게 하는 시.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로 일관된 어려운 시.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시인˝이라는 생각들 했고 지금도 전혀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희구하는 세상이 평등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이라면. 그들이 염원하는 것들은? 인간성이 폐기된 아수라장이 아니라면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불합리와 억압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다양성이 살아 있는 세상이 보다 원활하게 호흡 할 수 있는 열릴 사회라지만 저희는 너무 편협하게 흐르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준 책입니다. 아니 ˝김남주˝라는 사람은 저에겐 그런 사람입니다.
언젠가 TV 에서 강화에 살고 있는 부인 박광숙씨와 그의 아들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토록 상투적이고 날카롭던 시인도 사실은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인간들의 사랑을 말하고 싶어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만 현실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은 시인의 도리가 아니었기에 그런 시들을 썼을 뿐이라고..
이게 사는 것은 전부는 아닐텐데... 이런 방식으로 모두가 살지는 않을텐데... 이렇게 사는 것이 최선이 아닐지도 모르는데...아직도 명확하게 미래의 진행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저에게는 이런 의문에 작게나마 조언을 해 주는 책입니다. 수월하게 읽히지도 않고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안치환의 ˝자유˝등의 노래에도 그의 시가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그의 시비를 건립한다는 공고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잘난 메모습관 때문에 잊어버렸네요... 감성을 자극하고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세밀히 묘사한 작가들과 더불어 ˝김남주˝ 시인 같은 이름도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까요?
『자식 때문에 어머니가
상복을 입은 여인들이
광장의 분수대를 돌고 있다
저마다 가슴에 사진을 하나씩 껴안고
분수대를 돌고 있는 여인들은
팔을 치켜들고 뭐라고 뭐라고 외치기도 하고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울기도 한다
저 여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일까
철모와 방패에 포위된 채 분수대를 돌고 도는 저 여인들은
우리에게 텔레비젼을 보여주고 있는 민가협의 총무간사가 설명한다
쿠테타에 자식을 빼앗긴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이라고
살려내라 살려내라 우리 자식 살려내라 외치고 있다고
권력에 굶주린 늑대들에게 자식을 빼앗긴 아르헨티나 어머니들
살해된 자식들 가슴에 묻고 애통해하는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
나는 보았다 나는 보았다 저와 같은 어머니들을 대한민국에서도
광주에서도 보고 서울에서도 보았다
감옥의 담벼락에서도 보고 법원의 뒷골목에서도 보았다
안기부의 정문에서도 보고 보안사의 후문에서도 보았다
폭력의 하수인들이 지배계급의 생명과 재산 지키고 있는 곳이면 그 어느 곳에서도 보았다
철모와 방패의 포위 속에서
살해된 자식을 살려내라 외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이여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우리 자식 살려내라 외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여
그러다가 개처럼 두들려 맞고
그러다가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쓰레기처럼 아무데나 버려지는 두 나라의 어머니들이여
언제쯤이면 아 언제쯤이면 자식 때문에 어머니가
상복을 입고 흐느껴 우는 시절을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 김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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