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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
박완서 - <유실>

끊긴 시간 속의 행적
˝잃어버림˝
이것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유실>은 물건이 아닌, 주인공 자신의 정체를 추적하면서 갖는 의구심이 잘 묘사되어 있다.
중증의 당뇨병과 그것에 대한 합병증으로 앓고 있는 폐결핵 때문에, 엄격한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고향 친구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와의 만남은 과음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날 밤에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취하게 된다.
간신히 찾아낸 그 시간에 관련되었던 사람, 그에게서 그 날 자기가 기억 못하는 시간 속의 행적들을 끄집어내려 하지만 정작 바라던 것은 얻지 못한 채,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 끊긴 시간 속에서의 행적이 자신의 존재의 정체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는 주인공 김경태.
이렇게 해서 이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자아에 대해 의식하게 해 주며, 또 다른 자신이 어느 한 구석에라도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해 주는, 미묘한 뒷맛의 여운을 남기고 있다.
유실.
이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같이 주인공은 무언가 잃어버리고, 또한 그것을 다분히 의식하면서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격식을 차리고, 몸에 밴 점잖고 침착한 태도를 잃지 않던 주인공이 다른 관련자로부터 그가 기억 못하는, 그로서는 끊긴 시간 속에서의 행적에 관해 듣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다른 것은 잃는 한이 있더라도 끊긴 시간을 이을 수 있는 단서만은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집요한 추적을 한다.
취기 속에서 평소의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두고 그것이 과연 진짜 자신의 정체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면서부터 ˝잃어버린 자아˝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끊긴 시간 동안 그의 또 다른 자신에 대한 강한 의구심으로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음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의 내부에도 갇혀 사는 미친 분신이 있어 그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그를 뚫고 달아나 하룻밤 제멋대로 횡행했음이 아닐까? 또 다른 자신을 그는 그가 기억 못하는 시간 속에서 발견하고 있다.
나의 경우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데에서 자아를 발견할 때가 있다. 또한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러한 때를 상기해 보면서 나는 벌써 이야기의 주인공 김경태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자기 정체를 잃어버리는 것. 그것은 불행한 일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일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방황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종류의 ˝유실˝이 아닐까? 그것을 느낄 수 있거나 없는 것에 따라 다른 자신의 면모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성질이 있지만, 그 날 끊긴 시간 속에서의 손실로 허전한 느낌마저 가지지 않게 된다. 엄청난 손실이었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손실을 느끼고 있는 주인공은 대중 속에서 어느 분류에 속할까? 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은 경우에 그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자기가 모르는 순간에도 있을 수 있는 ˝유실˝은 잃어버린 사람의 다시 찾으려는 노력이 자기 자신의 존재의 정체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면 크나큰 손실 속에서 무엇인가가 채워져야 한다는 아쉬움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마저 느끼지 못한 채 다른 것에만 신경을 쏟으며 지내는 이들에게는 불감증이라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주인공은 끊긴 시간 속에서의 자신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표면상 달라질 것이 없고, 내면적인 변화 때문에 깊이 생각하면서 깨닫게 된다.
그가 이루어야 할 것은 물건이나 돈을 찾는 게 아니라 감쪽같이 끊겨 달아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지배한 녀석과 그의 내부의 자아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그 날 잃어버린 물건을 모두 돌려 받은 뒤에도 그가 그 때 관련했던 사람을 계속 찾아가는 것은 ´뭔가 또 돌려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거의 시달리다시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찾다 지친 나머지 있는 것조차 의심스럽던 녀석의 존재를 그는 다시 믿으려 하고 있었다.
끊긴 시간 속의 그의 행적.
그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만약 끊겨진 시간에 있었던 일을 경험한다면 그 속에서 어떠한 모습이 자신이 존재할 것인지, 또 그 모습은 어떤 일을 하면서 여태까지 그의 실체의 성격과 정반대의 자취를 남길 수도 있을 것이고 예상했던 자아의 자취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끊긴 시간을 찾기 위해 찾아갔던 성남시에서 깨닫게 되었다.
비로소 그는 성남시 어디엔가에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어쩌면 자신이었다. 엄청났던 유실은 늦게야 그에게 유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고, 다시 돌이킬 수 없게 해 주기도 했다. 그의 유실은 이제까지 당했던 가장 큰 손실이었고, 다시는 그런 큰 손실을 볼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자기 존재의 정체를 잃어버리는 것은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고 가슴속에 상처로만 남을 뿐인 것이다.
그런 또 하나의 자신이 진짜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그 의구심이 자아를 추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존재를 의심하게 되더라도 다시 믿게끔 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수단이면서 동시에 자아를 남처럼 생각게 하기도 한다. 남처럼 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깨닫는다.
˝지난 날 수없이 녀석을 만나 왔음을. 그의 꿈속에서, 욕망에서.˝
그는 지금까지 추적해 왔던 자기 정체를 앞으로도 계속 탐색하면서 끊임없이 자아를 찾고자 애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작은 시험관 속의 현상처럼 빤하지 않다는 게 갑자기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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