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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토피아의 이방인 |  | |
| 함종억 : <유토피아의 이방인>
출판사 : 한국서적공사 / 출판일 : 1997년 12월 5일 / 페이지수 : 192
며칠 전 본 신문에는 20여 년만에 금개구리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꽤 크게 실려 있었다. 우리 나라의 토종 개구리 중 하나였지만 황소개구리의 등장과 시멘트 수로의 건설로 인해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는 금개구리는 나에게 신비로운 신화의 세계를 연상하게 해 주었다.
논둑을 걷다보면 늘 들을 수 있었던 개구리의 울음소리조차 새삼스러워진다는 소식을 자주 듣게 되는 요즈음 <유토피아의 이방인>은 내게 새로운 창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상호라는 인물의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통해 이끌어지는 이 소설은 직접적으로 환경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함과 동시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부분들에 대한 가르침도 담고 있었다.
˝아그, 아퍼- 이제는 더 걸을 수가 없어. 뛰자. 날아가자. 야아-˝
민규의 자살로 이 소설은 시작되고 있다. 죽음이 짓누르는 적막함과 숨막힘 속에서 퍼져나가는 것은 음울한 울음소리와 국화 향기뿐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가며 펼쳐지는 민규와 상호의 우정이 싹트는 모습은 나에게 민규의 죽음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지도록 했다. 민규는 상호에게 스스로 말하고 있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권태로운 행복 속에서 부부싸움을 즐기면서 사시는 거야. 아버지는 차라리 바쁜 일에 쫓기며 살다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게 사는 것이 아버지의 행복인 것이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해진 민규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 안에서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기쁨이라면 일곱 살 난 동생의 순수함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민규와의 만남이 상호에게는 커다란 흔적을 남겼고 상호는 유망한 야구 선수로서의 미래를 포기하고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우리 젊은 기쁜 회원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서 작은 희망을 얻게 된다. 상호의 가슴에 꿈틀대던 싹에 더욱 든든한 울타리를 치게 된 것이다. 고향에 내려가 불법으로 쓰레기를 매립하는 업주를 상대로 환경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 상호는 자신의 고향을 자연과 인간의 발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수해로 흩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그 마음을 다시 자연과의 일치로 돌리고 그렇게 모아진 힘을 나쁜 독이 모조리 빠져나간 수로로 이끌어서 힘찬 물줄기를 이루어낸 것이다. 게다가 그는 그 물줄기를 이끌어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들의 손길을 탄 그 물줄기가 새로운 생명을 만들 수 있도록,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도록 온갖 정성을 다 한다. 단순히 따라오라는 일방적인 모습이 아닌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자세하고 꼼꼼한 설명을 통해서 무지하다고 인식되기 쉬운 농민들에게 자연 보호의 절실함을 깨우쳐주는 상호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인 것 같았다.
언젠가 아빠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땅만큼 정직한 것은 없단다. 아빠도 지금은 이렇게 도시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따금씩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딱 맞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특히 도시를 보면 어디 좋은 소식 들려오는 곳이 있니? 모두들 속이고, 죽이고, 싸우고… 너희들이 어른이 될 때에는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할텐데….˝
이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가고 있던 어느 날, 도시로 떠났던 춘표가 돌아오고 마을은 일대 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춘표는 어릴 때부터 상호와는 경쟁 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마을의 환경 보호´라는 측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도 하나로 뭉친 마을 사람들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온갖 편법과 부조리에 익숙한 춘표였지만 자연을 지켜야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정신은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산 속에서 신나게 뛰어 놀아야 할 짐승들을 잡아다가 음식으로 이용하고 간혹은 젖소 고기를 노루라고 속여 팔기도 하는 춘표의 잔인함과 감사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쓰레기 사건 때도 상호의 호의로 간신히 살아난 현태는 여전히 춘표의 편이 되어 치사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가장 무서운 적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상호를 죽이려 드는 그 모습들이란…… 내가 사람인 것이 부끄러워지는 부분이었다.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우리 사람들. 수해로 마을이 엉망이 되고 경제적인 문제가 닥치고 감정의 악화로 죽음의 위협까지 받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으로 살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도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람들의 미소였다. 잔치상을 벌이고 서로 하나라도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미소. 어른들의 푸근한 미소와 젊은이들의 활기찬 미소,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다정한 미소……. 그 미소는 춘표와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소는 사랑을 담고 있었고, 희망을 담고 있었다. 나보다는 남을, 인간이라는 한 종족에 머물지 않고 자연을 바라볼 줄 아는 넉넉함의 사랑과 편안함, 문명의 이기보다는 사람이 살아가야 할 곳을 바라볼 줄 아는 용기의 사랑이 넘치는 것이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용기와 기지로 집으로 돌아온 상호는 유리의 임신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한 생명의 죽음으로 시작해 한 생명의 탄생을 암시하며 막을 내리게 되는 이 소설은 결코 인간도 자연의 순환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민규의 절규가 상호의 가슴에 남았고, 민규로 인해 처음 자연을 고민하게 된 상호의 노력은 그의 아기의 희망찬 울음소리로 힘차게 터져 나와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 아기는 민규의 작은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민규는 물질적으로 넘치는 생활 가운데에서도 늘 허전했었다. 최고의 의대를 나오고도 자연의 파괴에 대한 응징으로 생기는 병들은 치료할 수 없는 아버지와 풍요로 인한 권태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보며 느꼈을 분노와 그러한 분들 사이에서도 해맑은 동생이 태어났다는 사실. 이런 모순 속에서 고통을 느끼다가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그리며 뛰어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농촌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며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하다. 게다가, 일상적인 사건들을 묘사하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그 나머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 것. 이것은 마치 민규가 자신의 삶을 일찍 마감함으로써 자신의 시간을 남겨놓고 간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나의 개인적인 삶의 자세와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도 이젠, 좀 더 시각을 넓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할 수 있는, 날개를 갖고 싶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어 웃을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날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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