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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서정윤 : <홀로서기>

출판사 : 문학수첩 / 발행일 :1993/4 / 쪽수 : 118

서정윤의 시집은 방학 초에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다. 그 전까지 윤동주, 김소월 등 학교에서 배우는 시의 유명하고 오래된 시인들만 알던 나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시집이다. 방학 내내 읽은 책이 몇 권 없지만, 이 시집은 대부분의 시들이 내 마음과 꼭 맞아서, 무척 즐겁고도 감명 깊게 읽었다. 여기 실린 시들은 내용이나 표현이 어렵지 않아서, 쉽게 읽고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내가 꾸준히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서정윤의 시들은 대부분 ´외로움´에 관한 얘기들이다. 사랑 얘기도 많이 나오지만 결국 사랑에서 얻어진 외로움으로 끝을 맺는다. 지금 내 나이 때가 가장 감성이 예민할 때라고들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도 ´외로움´이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이 시들에 깊이 동감을 느끼는 것 같다.
네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인 ´城´에 관해서는 내 친구와 한 번 얘기를 해 본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를 읽고 어떻게 느꼈는지 알고 싶어서 이 시에서 ´성´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 같냐고 물어 보았는데, 그 친구는 ´자신감´이라고 대답했다. 그 친구도 고등학교에 와서 자신감이 많이 줄어들었나 보다.
내가 ´城´을 읽고 느낀 바로는, 이 시에서의 ´성´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그 친구는 ˝너는 성선설을 믿는 모양이구나˝ 했다. 사실 나는 성악설을 믿지만, 그건 냉정하게 머리 속에서 추상적으로 생각할 때나 그런 거고, 실제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 사람의 눈빛, 표정, 말투, 그런 것을 보며 그 사람을 믿고 만다.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언제까지나 굳게 변함없었으면 좋겠는데, 커갈수록 자꾸만 흔들린다. 이 시 마지막 행의 ´끊임없이 무너지려 한다.´는 구절이 자꾸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유는 그것 때문인 듯하다.
또 겨우 두 줄짜리 시인 ´우울´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간단한 한 문장으로 씌여진 시지만 생각할수록 많은 뜻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언제까지인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전엔 늘 밝게만 살았던 것 같은데, 이 시에 동조하는 걸 보면 나도 좀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처럼, 단순하게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아직 스물도 안 된 나이에 너무 늙은 소리를 하는 건가?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라는 부제가 붙은, 7연으로 이루어진 ´홀로서기´ 역시 내가 좋아하는 시다. 지금껏 내가 읽어본 시 중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가장 잘 나타낸 시라고 생각한다. 홀로 선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는 두렵기만 한 일이다. 머리 속으로는 이미 모든 사람은 다 혼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마음으로 느끼기엔 너무 벅찬 일인 듯 싶어서 말이다. 믿음직한 누군가가 언제나 나와 함께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약한 마음이 늘 자리잡고 있지만, 가장 믿고 따르는 부모님마저도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 주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모든 사람은 다 따로따로 태어나 따로따로 죽게 마련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니, 쓸쓸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어쩔 수가 없다. 여기에서 나온 대로, 그저 혼자 서는 연습을 하는 수밖에...
비슷한 주제의,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다. 시인은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은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꽤 긴 시이다. (일기장에 두 장에 걸쳐 썼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어떤 시집을 봐도 이런 주제의 시들이 가장 먼저 눈에 뜨인다. 내가 천리안의 ´자기 소개´나 메일의 마지막 구절로 즐겨 쓰곤 했던 시도 이 시집에 하나 있다. ´사랑한다는 것으로´라는 짤막하고 예쁜 시다. (아름답다기보다 예쁘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이유는 무얼까...) 진정한 ´사람다운´ 사랑을 하려면 이 시에서처럼 상대를 먼저 배려하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좀 이기적인 것 같다.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은 하려고 한다. 언젠가는, 절로 깨닫고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퇴적암 지층 1, 2´라는 시도 무척 좋다. 나는 죽음에 따르는 고통이 정말 두렵지만, 그에 못지않게 죽음 자체도 두렵다. 고통이 두려운 이유는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죽음이 두려운 것은 대체 내 삶이 이 세상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 것인가 하는 게 두려워서이다. 아둥바둥 열심히 살아봤자 그저 덧없을 뿐인데... 이 드넓은 우주에서, 작은 행성인 지구에 자그마한 인간이 하나 잠깐 살고 죽었다고 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미생물이 몇억 마리 있다고만 말하지 그 하나 하나가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는 내가 살고 죽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은 죽을 때 이름을 남긴다지만, 물론 나도 최대한 노력해서 뭔가를 남기고 싶지만 이름을 남긴다 해도 아무리 커 봐야 인류에게나 그 영향이 미칠 것이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확실히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은, 엔트로피를 좀 더 빨리 증가시키는 것밖에 없는 듯하다. 장난스러운 말이지만, 정말이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이걸로 만족시켜야 하는 걸까? 이 시집에서 말하듯, 누구를 사랑했다고 하는 것이 충분한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는 걸까? 그저 나는 이 세계의 시간의 한 장으로 남을 것이고, 좀 더 멋지고 보람찬 삶을 새겨두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이 시와 함께 해 본다.
또 서정윤 시인은, ´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써놓았다. 여기서의 신은 대부분 기독교나 천주교에서의 신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나는 어릴 적에 잠깐 성당을 다니면서 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천주교와 기독교의 교리 정도는 조금 이해하고 있다. ´그 다음 2´라는 시의 마지막 행에, ´신이 있다면 이럴까.´라는 말, 나도 얼마나 많이 해 본 생각인지. 나는 만물에는 만든 사람이 있으니, 생물을 탄생시킨 것이 바로 창조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그 창조주가 어느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든 말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유한한 생을 가진 인간이기에, 생각의 범위도 역시 유한하고, 그래서 이런 생각밖에는 못하는지도 모른다고도 느낀다. 나는 성당에 다녔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 접해 있는 종교가 천주교이고, 그래서 정말로 바라는 일이 있거나 죄를 지었다고 느낄 때는 기도를 하기도 한다.
나는,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누구든 말이다. 그래야 세상일들이 더 편하고 단순하게 이해될 것 같다. 종교적인 해석으로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한 자신´이 거쳐가는 한 과정이라고도 하는데 그게 정말일까? 정말 모르겠다.
´소망의 시1´, ´절망´, ´슬픈 시´, ´사람도 그림자라 불리는 호수에서´, ´화석´, ´노을 풍경´, ´노을 소리´, ´안경´ ´눈오는 날엔´ 그 밖에도 대부분의 시가 다 좋지만 나는 특히 이 시들이 기억에 남는다. ´안경´은 내가 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에 특히 특별하게 여겨지는 시인데, 1연과 2연은 나의 상태를 그대로 말하고 있는(시력이 0.1도 안 된다.) 것 같다. 3연은 주제가 담긴 연이라고 생각되는데,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면/ 분명한 건 하나도 없다´ 물론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도 세상이 분명해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아도 분명한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고, 모두 나름대로는 각자의 논리가 있을 테니. 이렇게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되다니, 정말 재미있는 시다.
´노을 소리´는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은 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노을이라는 시어를 막연하고도 묘한 호감과 느낌으로 좋아했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노을에다가 ´노을 소리´라고 말을 붙이니 정말 신비한 느낌이 든다. 내 생각엔 노을이 소리를 낸다면 이른 저녁의 작은 뻐꾸기 소리와, 나지막한 북 소리, 바다에서 파도 치는 소리에 기러기 우는 소리, 그런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노을 소리´는 잔잔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시라서, 방학 때 집에 혼자 있을 때에 노을 앞에서 읽으면 참 좋은 시였다. 우리 집은 거실에서 바로 앞쪽에 광교산이 보이고 산 뒤로 해가 지면서 아름다운 노을이 보이기 때문이다. 서정윤 시인이 즐겨 쓰는 시어가 ´노을, 눈물, 바람, 나무´ 같은 것들인데, 이 시들에서 쓰인 눈물의 의미는 대부분 아픔을 반영하거나 뉘우치는 경우의 눈물이라서 무척 깨끗하고 순수해 보인다. 사랑과 외로움에는 더없이 잘 어울리고 또 필요한 시어인 것 같다.
서정윤 시인의 시들은 그저 통속적인 사랑 얘기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깨달음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치고 있다. 그것도 쉽고 평이한 시어들을 이용해서 말이다. 나만 외로움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도 안도감 같은 것을 느낀다. ´홀로서기´는 무척 좋은 시들로 알차게 꽉 찬 시집이고, 나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고 느끼고 생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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