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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도 판타지 단편집 |  | |
| 이영도 : <이영도 판타지 단편집>
출판사 : 황금가지 / 출판일 : 2001/7/10 / 쪽수 : 321
<나 그리고 너, 그리고의 문제>
내가 처음 판타지 소설을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드래곤 라자´ 9권을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 선물로 주면서. 그 때 내가 읽었던 ´드래곤 라자´의 작가 이영도는 그저 재치 있는 말투와 이런저런 가상의 공간을 잘 만들어 놓는 이야기꾼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는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핸드레이크의 말은 드래곤 라자가 단순한 재미 뿐 만이 아니라, 그 속에 자아와 타인과의 관계를 녹여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후로 이어진 ´퓨쳐 워커´와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역시 그는 심도 있게 인간과 인간의 틈을 그려내며 조금씩 차갑게 그의 눈을 바꾸어갔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이 펴낸 그의 판타지 단편집에서 그는 단편 소설 4개와 콩트 2개로 좀더 포괄적인 의미의 사회를 담아보았다. 이 소설집에서 그는 흑을 비판하기엔 백이 유리하고, 차가움을 비판하기엔 뜨거움이 유리한 것처럼 현실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가상 세계를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처음 나는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어?´하고 다시 앞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오크가 보안관이라는 사실은 나에겐 ´말도 안 돼´였던 것이다.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나누어 놓았던 종족들은 때로는 내가 그것들의 경계를 얼마나 세세하게 나누었는지에 따라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게도 아니게도 만들었었다. 그런데 그 처음을 제공한 사람이 이제는 모든 종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우러져 사는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작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보기 좋은 모습. 같은 인간도 아닌 주제에 어떻게 그리 다정하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단편 소설인 ´오버 더 호라이즌´과 ´오버 더 네뷸러´의 이야기 전달자는 보안관 조수인 ´티르´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은 그 제목 그대로 명기인 ´아스레일 치퍼티´를 통해 제 나름의 방법으로 지평선을 넘어보려는 이들의 이야기이고, ´오버 더 네뷸러´역시 성운처럼 밝게 빛날 자신의 소망을 이루려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이 두 소설에서 티르는 이들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는 이 두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 맞춰서 진행시키고 있다. 언뜻 보면 그는 이 사건들에서 절대적인 제 3자로 비춰지지만, 이야기의 끝에 가서는 결국 그가 이 사건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중대한 목적을 이루고자 어떤 계획을 실행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아스레일 치퍼티를 훔쳐내고 ´션 그웬´의 목숨을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독자가 그를 비난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이 이야기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은연중에 그의 생각대로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즉, 티르는 소설 속의 인물만이 아니라 소설 밖의 인물들도 조정하는 것이다.
이 두 소설을 읽는 동안 내 시선을 가장 잡아끄는 사람은 ´안셀´이었다. 안셀은 다른 인물들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등장하는데 자신을 타고난 약사로 생각하기도 했다가 타고난 보안관 조수로 생각하기도 하고, 티르에 따르면 앞으로 자신을 타고난 바이올린 연주자로 생각하게 될 인물이다. 물론 그가 거쳐간 그 어떤 직업도 그나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아마도 내 생각에게 그는 타고난 해결사에 가장 가까울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를 느끼거나 다른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한다. 혹은 다른 사람의 직업을 흘긋 보며 ´저 것도 괜찮네.´하기도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렇다면 안셀은 우리의 욕구를 반영하여 자신이 대신 해소해주는 것이 아닐까. 소설 속 마을 어딘가에 살면서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드는 그는 자신은 모르겠지만 사실은 타고난 해결사이다.
나머지 두 소설인 ´골렘´과 ´키메라´는 ´드래곤 라자´와 ´퓨쳐 워커´에 등장한 핸드레이크와 그의 제자 솔로처가 실험실에서 겪는 소동을 담고 있다. 이 두 이야기의 전달자는 솔로처로, 이용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스승이기에 이용당해주는 그럴 듯한 제자이다. 골렘과 키메라 모두 핸드레이크의 실수로 만들어진 피조물로 두 스승과 제자를 곤란하게 만든다. 두 사람은 그 난관을 극복(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하는 과정에서 우리들 머릿속에 깊이 자리잡은 사고 방식의 잘못됨을 비틀어준다.
네 편의 단편소설 모두 재미있는 문체와 읽는 사람을 흥미 있게 만드는 구성으로 눈길을 잡아 두는 힘이 대단하다. 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식은 나로 하여금 ´아!´하는 탄성을 내지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느 한 인물이 사건을 정리해 주는 느낌을 받아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오버 더 호라이즌´과 ´오버 더 네뷸러´에서는 티르가, ´골렘´과 ´키메라´에선 헐스루인 공주가 그 인물들인데, 이런 방법은 간혹 소설의 맛을 떨어뜨린다. 이런 점은 전에 ´드래곤 라자´를 읽으면서도 느낀 적이 있는데 앞으로의 작품들에선 독자 스스로가 소설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정리하고 주제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조금 더 자연스러운 결말을 맺어주길 기대한다.
참, 그의 일련의 소설들에서 이야기의 전달자인 ´후치´, ´티르´, ´솔로처´가 서로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은데 이들은 작가의 닮은꼴 인물일까? 그렇다면 정작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만나보고 싶다.
두 편의 콩트는 사회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약간 이해하기 힘든 글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한번 읽어 볼 생각이다. (교보문고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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