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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수 |  | |
| 파트리크 쥐스킨트 : <향수>
역자 : 강명순 / 출판사 : 열린책들 / 출판일 : 2000/8/15 / 페이지수 : 386
<그의 코는 그의 유일한 세상을 향한 창이었다>
´향수´. 그 제목막으로는 내용이 잘 짐작되지 않는 작품이다. 부제인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보고서 우리는 제목과 부제의 부조화를 느끼게 된다. 그 부조화만큼 우리는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혼란스럽고, 복잡한 무엇인가를 느끼게된다. 그것은 우리가 이 소설에서 많은 이야기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바로 이 이상한 소설의 이상한 주인공이다. 쥐스킨트는 그를 사악한 인간이라고 규정 짓는데 조금의 머뭇거림조차 없다. 그의 사악함은 철저한 고독지향성과 기괴한 천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됨의 연속이었다. 그 혼자됨은 자신도 모르는 외로움을 가지고 오고, 그 외로움의 대안은 그가 가진 특이한 재주, 즉 향기를 모으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 소설에서 향기는 존재 내면에 있는 정수, 또는 실체, 실존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즉 그루누이가 보여주는 일련의 향기를 지배하는 행동은 타인을 지배하려는 강한 욕망에서 비롯한 행동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루누이에게 있어서 후각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세상을 인식하는 유일한 수단인 셈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살아가기는 불가능하다. 작가는 이러한 당연한 진리를 그루누이를 통해, 악취 나는 사람들 속에 사는 것이나 혼자 살아가는 것 모두 어려운 바임을 말하고 있다.
그루누이는 악취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막상 그러한 공간에서 그는 그 참기 힘든 악취가 우리들의 실존임을 느낀다. 동시에 상실된 자신의 실존에 대한 갈구를 보인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자신이 평생 해온 일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고픈 인간의 욕망 때문일 것이다. 그루누이에 있어서는 자신의 실존을 자신만의 향기를 가지려는 데에서 찾으려한다. 그리고 그 향기를 얻기 위해 25명의 생명을 꺾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처형장에서 자신이 만든 자신의 실존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그리고 대성공!!.. 그러나 그의 불행은 자신이 만든 실존이 진정한 실존이 아니라 허상에 불과하였음을 깨닫고 나서 증폭된다. 실존, 진실된 자기의 모습은 자기가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냄새를 다른 이들에게 느끼게 해주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냄새를 전할 수 없었던 비극적인 그루누이에게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자신이 만든 작품을 통해서만 자신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작가 쥐스킨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는 그루누이의 비참한 죽음을 통해서 사랑과 증오는 같은 것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둘 다 특정한 존재를 향해서 맹목적으로 가도록 만든다는 점과, 그 존재를 소유, 독점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둘 다 존재(그것의 실체, 실존, 진정한 의미까지...)에 대한 솔직한 이해를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손에 잡지 못하고 있는 아련한 이야기거리를 많이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그저 그렇게,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도 이 소설을 다시금 읽도록 하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는지....
그런데 사악한 그루누이를 증오하지 않고 연민을 느끼는 지금의 나도 그의 ´향수의 마법´에 걸린 것일까?
(교보문고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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