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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식 |  | |
| 히라노 게이치로 : <일식>
역자 : 양윤옥 / 출판사 : 문학동네 / 출판일 : 1999/4/8 / 쪽수 : 222
´일식´을 드디어 읽었다. 아니, 읽어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주인공 ´나´는 16세기 후반에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이교도 철학서 사본인 ´헤르메스 선집´을 접하고 매료된다. 나름대로 이교도 철학서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리스도교 사회에서의 구약 및 신약 성서의 영역을 벗어난 통속적 서적으로, 대문자로 쓰이지 않은 책, 민간에 전해지는 괴이한 책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패관소설´로서의 ´이야기책´을 말하는데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나 유언비어, 흥미 위주의 괴담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한마디로 신학인, 그리스도인로서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나는 완본을 구하기 위해 리옹에서 다시 피렌체로 향한다. 잠시 머물게 된 마을에서 연금술사인 한 남자와 조우하고 그의 됨됨이와 지적탐구에 감동해 가깝게 지낸다. 연금술이란, 동이나 철, 주석 같은 비금속을 금, 은이나 백금 같은 귀금속으로 연금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못했기에 미신으로 치부된 지 이미 오래다. 일식에서 중요한 은유를 나타내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안드로규노스´이다.
양성구유(兩性具有). 남녀의 생식을 동시에 지닌, 신이 창조한 아담과 이브의 본질을 철저히 무시, 부정하는 존재다. 마을에 갑작스레 불어닥친 재앙으로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이 죽어가고, 무지몽매한 이들로 인해 ´마녀´로 몰린 안드로규노스는 화형을 당한다. 마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 같이 절대적이고 숭고한 희생으로 비쳐졌다.
그 순간, 태양이 한쪽부터 서서히 그늘이 지더니 기어이는 안전한 검은 태양, 즉 ´일식´이 일어난다. 사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뉴스나 신문지상에서 일식이 일어나는 시간대며 어디서 더 잘 보인다는 것까지 알려주므로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때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사건, 기적임에 틀림없다. 나는 사건의 마무리도 지켜보지 못한채 도망치듯 파리로 돌아온다.
한편의 소설 속에 이토록 많은 수사와 난해하기 짝이 없는 한, 고문을 인용하는 능수 능란한 어휘가 담겨진 것에 대해 몇 번이고 놀랐다. 일일이 뒤에 있는 뜻풀이를 보는 수고로움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만 있다면.
이렇게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책은 처음이다. 여러 날을 되풀이해 읽었고 솔직히 제대로 읽었는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읽고 난 후는 말할 수 없이 꽉 찬 느낌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그때는 좀더 선명한 무언가를 볼 수 있으리라. 히라노 게이치로의 새로운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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