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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 속 여행 |  | |
| 김주영 : <거울 속 여행>
출판사 : 문이당 / 출판일 : 2001.4.16 / 쪽수 : 309
<가슴 찡한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김주영 소설의 매력은 장편 역사소설에만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만의 그 대단한 입담과 방대한 자료조사 그리고 상상력으로 펼쳐내는, ´객주´나 ´화척´, ´야정´의 그 흥미진진함은 그 소설들을 읽은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아직 생생하고, 하나하나 살아서 움직이는 것만 같은 인물들은 그 흥미진진함을 한층 더한다. 흔히 종속적이고 소극적이라고만 생각해왔던 조선시대의 여인들도 그의 소설에서는 힘차고 굳세며 적극적으로 그려지는데, 그런 모습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쉽게 책을 놓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역사소설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거울 속 여행´에 있다. 소설이면서도 참 서정적이어서 마치 한 편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도 하고 잔잔한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게도 하는 소설. 가물가물해서 잊혀질 듯한, 하지만 언제나 아련하게 가슴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유년의 기억을 어찌 그리도 꼼꼼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가슴 찡하게 그려내고 있는지.
´거울 속 여행´은 가난과 기다림과 이별 얘기다. 누구에게나 유년기의 어느 때 한 번이라도, 어둑어둑해지도록 돌아오지 않으시는 부모님을 막연히 기다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그 긴 시간을 나 역시 많이 경험해 봐서일까? 일 나가신 어머니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나´와 ´동생´의 그 불안한 마음이 내내 나의 마음이 되곤 했다. 정작 나는 단 한 번도 어머니나 아버지가 날 버리고 영영 안 돌아오실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었는데도 말이다.
돌아오지 않으시는 어머니를 찾아나선 그 날, 일터에서 동생보다 더 커 보이는 주인집 아이를 업고 일하시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나´와 ´동생´의 한없이 서운했을 마음(정작 어머니는 주인집 아이보다 더 작은 ´동생´은 한 번도 업어주거나 어리광을 받아주거나 하시지는 않으셨으니), 두 아들의 그 마음을 알기에 그 밤 잠들지 못하고 어두운 방 구석에서 혼자 울던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 우는 소리에 깨어나 행여나 어머니가 아실까, 이불 속 형의 손을 꼭 쥐고 울음을 참는 동생의 마음. 그 모든 마음에 공연히 가슴이 아파서 몇 번을 훌쩍였다.
언제가 어느 책의 서문에서였던가, 작가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무척 가난하였단다. 그래서 자기 몫의 도시락이나 자기 몫의 우산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소풍날이면 늘 다른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곤 했고, 비가 오는 날도 변변히 우산을 써 보질 못했던 모양이다. 장성한 아들이 결혼을 해서 며느리를 맞았는데 마땅한 선물이 없어 생각 끝에 좋은 우산을 선물하였단다, 그런데 시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며느리는 대수롭지 않게 그 우산을 그냥 두고 갔다고 하던가.
나 역시 그랬겠지만, 그만한 가난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늘 물질적으로 풍요한 세상에서 살았기 때문에 소중히 생각해야 할 많은 것들을 하찮게 여김이리라. 그래서인지, 툇마루에 앉아, 시장통에서 주워 모은 상표딱지에 그려진 그림이, 먹을 수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로 티격태격 하루를 보내는 형제의 모습이나 술밥을 훔쳐먹기 위해 술도가 주변에서 거의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옥화의 양 손에 쥐어진 무거리떡이 탐나서 온갖 꾀를 내는 동생의 모습이나, 미군들 차에 다가가 서툰 영어로 ´기브미 껌´을 외치고 미군들이 던져주는 과자나 껌에 환호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그악스러워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건강해 보이고 당연해 보였다. 빵 봉지 속에 들어있는 스티커 때문에 빵을 사서는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갖는다는 요즘 아이들, 아무렇지도 않게 먹기 싫은 음식은 버리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보다 얼마나 당연해 보이고 얼마나 사람다워 보이는가 말이다. 그렇게 가난했어도 형제에게는, 어머니가 돌아오지 못하는 날 찾아와 밥도 해 주고 불도 지펴주고 코 골며 함께 자 줄 ´월천댁´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풍요로워도 옆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세상이니 정작 가난한 사람은 누구고 풍요로운 사람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어렸을 때 살던 시골 동네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다. 동네 사람 대부분이 절엘 다녔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유교적인 풍습에 따라 생활했으니 그 교회에 혼자 와 있던 젊은 전도사가 얼마나 많은 맘 고생을 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놀아주고 뭔가를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잠에서 덜 깬 채 이불 속에서, 마당에서 들려오는 어렴풋한 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 전도사님이 입대를 하게 되었다며 어른들과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인사하고 돌아서서 가시도록, 그 때 왜 나가서 잘 가시라는 말도 못했는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참 안타깝다.
´나´에게, 어느 날 떠나간 ´삼손´이나 어린 나이에 죽은 옥화, 학교의 젊은 여 선생님, 이발소의 거울 주인, 시계포 최씨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모두 그리운 사람들이고 안타까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그 때와는 다르게 ´나´와 ´동생´을 기다리시는 어머니나 어른이 된 동생까지도 그리운 사람이고 안타까운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기에 안타깝지만 작가의 말처럼 그 시절을 사랑할 수 있으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거울 속 여행´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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