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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님 |  | |
| 황석영 : <손님>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 출판일 : 2001/6/1 / 쪽수 : 262
리얼리즘(Realism)이란 현실주의, 사실주의 등으로 이해되는 예술의 표현양식 중 하나이다.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데에서 이러한 명칭이 붙여졌다고 할 수 있는데, 여과 없는 리얼리즘을 드러내는 매체는 카메라이다. 사진을 통해 보여지는 세계는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그의 생각 속에서 정리하고 구조화하여 탄생시킨 소설의 세계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리얼리즘을 창출해 낸 소설로 불리는 황석영의 <손님>을 굳이 여느 리얼리즘 소설과 다른 장르의 것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소설이 사진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러나 일단 형식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화자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인데 그 주체가 끊임없이 변하며, 간간이 3인칭 시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같은 상황을 다른 인물들이 각각 서술하게 하는 것도 독특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이 이 소설에 주는 효과는 무엇인가. 소설의 현실은 작가 혼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방북 작가로서 감옥에까지 간 적이 있는 황석영은 이 소설을 아무런 현실의 바탕 없이 상상력만으로 쓰지는 않았다. 그는 1989년 북한 황해도의 신천에 있는 ´미제 학살 기념 박물관´에 직접 가보기도 하고, 이후 뉴욕에 체류하면서 그 지방 출신의 한 목사에 의해 신천 대학살의 진상을 알게 된다. 여러 경로를 통해 자료를 수집한 그는, 기존 소설의 서술 방식의 틀을 깨고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게끔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도 어느 한 사람의 시점에서만 보아질 수 없고, 만들어질 수 없듯이 소설도 그러하다. 작가의, 현실을 바라보는 탁월한 안목이 이러한 서술 방법을 창조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그렇게 소설을 엮어 나간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이 일정한 순서가 없게 보이고 다소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현실 또한 정해진 틀 속에서, 정해진 대본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귀신을 등장시킨 것은, 특히 귀신과 대화를 하는 장면은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소설에서 보기 힘든 일이다. 사람들은 귀신의 존재를 두려워하면서도 과학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그것이 없다고 믿는다. 굿과 같은 것도 미신으로 여겨 현대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면 그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왜 작가는 작품에 귀신을 등장시켰고, 소설 전체의 구성 또한 ´황해도 진지노귀굿´ 의 열두 마당을 기본으로 하였는가. 여기에서 약간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류요섭과 그의 외삼촌 안성만을 제외하면 모두 세상을 떠난 망자이다. 그들이 옛날 일을 회상하면서 서로의 한을 씻고 화해를 하고 결국에는 산 자의 곁을 떠난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는 살아있는 자들만이 할 수 있다. 죽은 자들의 넋두리와 화해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고 소설 중의 한 북한 안내원의 말처럼 ´현재와 미래를 중시하여´ 살아있는 자들끼리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황석영은 ´손님´이 외부에서 이식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동시에 ´손님´ 이 전통적인 의미로 천연두를 뜻한다는 것을 밝히면서, 이데올로기라는 굴레를 벗어버리고 화해의 시대를 맞이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그의 생각은 타당하다. 아무도 전쟁이나 분열을 화합보다 낫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연 기독교라는 종교나 마르크시즘이 천연두처럼 없애버려야 할 존재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그것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상이다. 그리고 6.25 당시 황해도 신천에서 3만 5천 명이나 죽은 것도 그 두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의 대립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상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신천에서 있었던 동족상잔의 비극은 전시라는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돈 많은 지주가 믿는 종교이고, 사회주의는 돈 없는 소작인들이 믿고 따라야 하는 신념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는 후기에서 ´사실상 무서운 손님 마마님은 아직도 미국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 기독교와 마르크시즘, 그리고 미국. 이 셋의 어떠한 사상적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들이 우리의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손님 마마님´으로 같이 묶어서 배척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황석영이 <손님>을 통해 리얼리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단 상황에서 북한을 방문한 흔치 않은 경험을 소유한 그는, 어찌 보면 이러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되 치밀한 사료조사와 증언을 통해 그것의 밑바탕을 깔고, 진부하지 않은 형식으로 소설 같지 않은,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한 소설을 쓴 황석영. 그가 우리 나라의 고전적인 리얼리즘 소설의 구조를 벗어나서 자신만의 방식을 창조하여 드러낸 <손님>으로, 리얼리즘 소설가로서 재평가를 받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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