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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한 책읽기 |  | |
| - 이 글은 유니텔 문학동호회 신명호님의 글입니다 -
최근에 김현의 유고집 「행복한 책읽기」를 읽었다.「행복한 책읽기」는 비평집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벼이 한 사람의 느낌을 살펴본다는 생각으로 읽었으나 그의 책 곳곳에서 보이는 죽음에대한 사유가 마음속에 많이 남았다. 지나쳤으나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기형도의 시집「입속의 검은 잎 」의 해설에 집약적으로 나타나있다.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반드시 겪에 되는 한 현상이다...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실제로 없다는 점에서, 그의 육체는 부재이지만, 머릿속에 살아 있다는 의미에서, 그의 육체는 현존이다.´ -기형도 시집의 해설중에서-
기형도의 해설에서 그는 시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젊은 나이에 죽은 그를 사라지게 놔두기 보다는 차라리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게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샤먼처럼 그의 시를 추억하고 알리는 것이 자신의 의도임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그의 이런 노력은 성공했는지 모른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이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죽음이 절망적이지 않다니... 그럼 도대체 무엇이 절망이라는 어휘로 표현될 것인가.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잠재된 무의식처럼 피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이다. 자신만만한 이성도 파악할 수 없는 無의 세계이고, 결코 알아낼수 없는 두꺼운 未知의 세계이다. 분주한 삶의 뒤안에서 언제나 자리잡고 앉아 인식하건 인식하지 않건 남아있는 돌덩이와도 같은 것이다.
삶 자체가 삶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한계성을 지니는 것은 그래서 삶이 소중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실존의 범주와의 관련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죽음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항상 같은 모습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말하는 죽음의 이미지라는 걸 생각해보자. 바로 떠오르는 것 중에 절망적이지 않은 이미지가 있는가? 죽음의 이미지가 긍정이라면 그건 삶이 죽음보다 더 죽음같다는 현실적인 상황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죽음을 더 나은 상태로 보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현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절망적이지 않다고 한다. 어째서 그런가? 먼저 말하겠다. 김현의 죽음은 앞서 말한 죽음과는 다르다. 죽음이라는 말 속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들은 하등 관련이 없다.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조금이나마 죽음이라는 언어가 주는 한없이 무거운 숙명에서 어느정도 해방될 수 있다.
그는 죽는다와 사라진다를 구분해서 생각한다. 그의 사유속에서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알겠지만 이는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부활의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의 죽음에는 죽음이라는 그 자체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과정속에 두 번의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육체의 不在이다. 생물학적이든 관습적이든 간에 육체의 죽음은 살아있는 존재의 필연이다.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피할수 없는 것이다. 살아있지 않다면 죽음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삶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도 너무도 당연하지만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것을 무엇으로 생각하든간에 삶의 많은 부분은 육체이다. (여기서 해묵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싸움을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그냥 넘어가 주시길...) 그 육체의 죽음은 사실 삶, 생존의 많은 부분을 앗아간다. 육체의 죽음은 사실 정신활동의 정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보통 생각하는 죽음은 여기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육체의 죽음은 정신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한 생명체의 완전한 종료는 여기서 완결된다. (양해를 구하자...여기서 영혼의 존재는 접어두자) 그러나 김현은 이 완전한 죽음의 단계를 연장시킨다. 첫 번째 단계의 ´죽음´은 죽은 것이 아니다.
아니 죽었지만 아직 진실로 죽지는 않았다. 그는 그 첫 번째 죽음의 단계를 타자와의 연관성을 통해 연장시킨다. 여기서 타자와의 연관성이란 나와 타자간에 남아있는 기억의 연관이다. 그 연관성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삶속에서 부대끼고 자신의 근처에 살았던 직접적인 의미의 연관일 수도 있다. 또한 간접적인 연관도 있을 수 있다. 한 존재가 남긴 것들. 그것이 나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존재들 속에서 의미를 지닐수 있는 것들. 그런 것들과의 연관.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이 그 간접적인 연관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현 자신은 후자의 연관성을 중요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후자의 연관성 속에서 일시적, 위태한 죽음의 상태가 아닌, 영원성, 일종의 불멸의 가능성을 보았던 듯 하다.
육체의 죽음, 생명의 소멸은 한존재의 끝남을 분명히 나타내지만 그러나 김현은 타자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존재의 모습을 생명이라는 실존의 범주로 되돌려 놓는다. 다시말해 그의 삶, 생명을 기억하는 다른 타자가 존재한다면(언어, 기록도
포함해서) 그리고 그 타자가 단지 한명의 타자가 아니라 여타의 방법을 통해 그를 기억하는 불특정 다수의 타자라면 그는 죽은 것이지만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완전한 절망의 죽음은 타자의 기억속에서 그 기억이 제거된 이후의 사라짐이다. 김현은 이러한 죽음, 완전한 사라짐의 상태를 진정한 비극으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사유는 내가 보기엔 타자, 아니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한 낙관이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 존재의 영원이 가능하기 위해 살아생전에 기억에 남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언설. 그의 사유는 사회적 존재와의 모든 연을 끈고 사라지는 죽음 이라는 것도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결정된다는 것으로도 들린다. 사라지지 않고 죽어있는 한존재를 기억하고, 진실로 그의 삶, 혹은 그가 남긴것들을 기억해주는 타자가 있다는 것. 그러한 가정을 가지고 있을 때 만이 그의 사유는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인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단지 작은 기대와 희망이 아니라 원대하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를 기대와 희망이다. 한존재를 진실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면 말이다.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남아있다. 그들 속에서 난 살아있다. 그들이 끊임없이 날 그들 속으로 호명, 호출하고 날 또하나의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가운데 난 아직 사라지지 않고 죽어있는 것이다...´ -행복한 책읽기 中에서
그러나 매력적인 그의 사유는 뒤집어 보면 비관적이게도 죽음이라는 것도 타자의 기억속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 시켜준다. 결국 내가 진정한 의미로서 살아있으려면(김현의 말을 빌리면 사라지지 않고 죽어있으려면) 타자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리고 변덕스러운 인간의 기억속에 불안하게... 나를 기억하고 있는 타자들이 사라지면 난 완전한 죽음, 즉 사라짐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더 비관적인 것은 내가 사라지거나 죽어있을 수 있는 선택이 전적으로 타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정말 단 하나의 가능성도 열려있지 않다. 죽어있기 때문에 결코 능동적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사유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역시 불안하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기대속에서 죽음을 고찰하고, 실존을 위협하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또 하나의 차원으로 확장시켜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쉽게 죽음앞에서 주저앉지않고
죽음 이후, 사라지지 않을수 있도록 인간의 인식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이미 사라져버린 존재들도 타자 (여기에서는 미래적 의미겠지)의 기억에 따라 다시 환생하여 죽음의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잘 알지만 그 대표적 예로는 카프카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카프카는 자신이 죽으면 작품을 다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겨 그 스스로는 완전히 사라지고 싶었지만...불행하게도 아니 다행스럽게도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읽고 그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는 죽은 상태이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기형도에서도 김현은 그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앞서나가는 것 같지만 김현이 수많은 소설과 시를 평론하면서 임했던 생각들도 이러한 판단이 아니었나 싶다. 좋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자신의 글 속에서 살아있게 만드는 것. 많은 타자들이 한 작가의 존재를 그들의 작품을 통해 추억하고 그래서 좋은 작가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을수 있게 하는 것. 그는 이것을 꿈꾸며 비평이라는 것을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비평이 단순한 비평이 아닐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또 고개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여기저기 널려있는 평범한 우리들이다.
아마 나도 죽기 전에 무언가 기억될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나를 기억해주는 타자속에서 남아있지 않는다면 육체가 죽은 이후, 바로 사라짐이 다가설 것이다. 무섭게도 그럴 것이다. 죽는 일조차 힘들다. 기억에 남아 사라지지 않고 죽어있기는 정말 힘들다. 나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삶의 영역에서 붙들고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자신이 그들에게 기억될만할 것은 없을지 모른다. 정확하게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김현 그 자신은 죽음에 자신이 있었던 것일까? 그가 이렇게 나에게 까지, 나의 기억속에서 까지 계속 호출되고 있으므로 그는 아직 죽어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자신은 타자의 기억속에서 오래도록 남을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있다. -행복한 책읽기 中에서
그는 알고 있었다. 죽음이 죽음으로서 남아있으려면 타자의 기억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 그 막연한 희망 같은 것. 아무리 큰 자신감이 있더라도 절망감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은 위협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살아있을지 아님 죽어있을지 아님 사라져버릴지 그는 알 수없다. 왜냐하면 나로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도 항상 불안했다. 다른 모든 인간처럼 때로는 잠에서 깨어나 결사적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려 했다. 살아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확인해야하는 위태한 삶. 그게 우리들 인간의 삶이다. 나도 죽고싶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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