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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인이야기 |  | |
| 작년 가을 무렵 나는「로마인 이야기」를 손에 잡았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 관련 책들을 너무 좋아해서 ´로마´라는 말만으로도 관심이 갔다. 그런데 읽을수록 수많은 흥미로운 사건과 그림으로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자세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계절이 바뀌는 것도 잊고 나는 열심히 책을 읽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직접 로마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세세하고 방대하게 로마를 설명할 수 있었을까 경탄했다. 그리고 책제목에 있는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로마제국을 이뤄놓은 로마인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고 부러운 생각도 났다. 책을 읽는 동안 로마를 직접 가보진 않았어도 로마가 건축해 놓은 그 수많은 장소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토가, 투니카를 입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테베레 강가의 일곱 언덕, 지금도 함성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콜로세움, 중심가 포로 로마노 등이 당시 시대의 모습으로 돌아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책에서 공화정, 제정 같은 정치 제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이 특히 인상 깊었고, 잘 정렬된 군대조직이나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큰 전쟁들, 제국을 경영하는 방법들도 매우 재미있게 읽은 부분들이다. 게다가 싸움을 잘하는 나라로 그치지 않고 뛰어난 정치제도, 경제제도들을 개발하면서 엮어낸 문화의 융성은 다른 여러 역사 속 어떤 나라보다도 현재의 후손들에게 관심을 끌고 본이 되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선택한 정치제도는 공화정이다. 그런데 로
마는 이미 2500년 전에 공화정을 실시함으로써 뛰어나게 앞섰던 나라였
음을 증명하고 있다. 당시 주변 국가는 으레히 왕 한 사람이 다스렸지만,
로마는 선출된 대표인 집정관이 나라를 다스리는 공화정으로 국가를 500
년 동안이나 통치해 온 점은 정말 특별하다. 지금까지 여러 제국들 중 전
제정치가 아닌 공화정치로 국가를 크게 발전시킨 나라는 흔치 않다. 알렉
산더 제국, 페르시아 제국, 당 제국, 이슬람 제국, 몽골 제국 그리고 우리
나라 또한 전제 정치로 성장했다. 그러나 로마는 민회, 자유로운 시민, 선
출권 등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평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호민관이나 귀족
다수의 협의체였던 원로원 제도 등을 보면 권력을 잘 분립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화정과 함께 로마를 대제국으로 만든 또 하나의 힘은 법이라고 생각
한다. 로마는 12표법, 시민법, 만민법 등의 법을 만들어 합리적이고 조직
적으로 전 지역을 다스렸다. 이러한 법에 의해 질서가 잡히고 성장하여
후세 사람은 로마를 법치국가로 부른다. ´사회 생활은 법에 따라´라는 현
대사회의 원칙도 이미 로마시대에 세워진 거다. 현재 세계 여러 지역에
법들이 많고 많은데 그 뿌리를 들추면 로마법에 기초를 두고 있고 우리
나라 법도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로마의 관용은 대단하다. 로마는 다른 민족과 달리 전쟁에서 승
리하지 못한 장수를 용서하기도 하고, 적도 자기에게 동화시킬 줄도 알았
다. 카르타고는 제1차 포에니 전쟁 때 해전에서 패배한 장수를 사형시켰
다. 삼국지에서 보면 조조는 두 장수에게 5만의 병력을 주어 서주의 유비
를 공격하게 하였으나 전쟁에서 패배하자 이들을 장군직에서 내쫓는 이
야기가 나온다. 패배하거나 이기지 못한 장수는 그에 마땅한 벌을 받을
가능성이 따르지만 로마인들은 그런 죄를 묻지 않고 전의 직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로마의 지휘관들은 대담하게 전투를 치를
수 있었고 아마도 많은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요인이 되었을 것 같다. 로
마는 정복한 나라들의 전통이나 종교를 인정해 주었고 그 사람들을 오히
려 로마인으로 받아들여 로마문화를 전파했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들여다보아도 로마법이나 건축술, 로마의 언어
가 유럽에 매우 강력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로마의 말은 서양의 말 전체에 밑바탕이 되다시피 했고, 중세에 유럽의
공통어로 라틴어를 모르면 지식인 취급을 받지 못했다. 지금도 바티칸에
서는 라틴어를 쓴다. 영국에서도 퍼블릭 스쿨에서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라틴어를 배운다고 하니, 우리가 한자공부를 하는 것과 비슷할 것도 같
다.
또한, 로마는 콜로세움을 비롯해서 여러 신전과 목욕탕, 대경기장 등
수십 개의 공공건물을 건설했다. 로마인은 현실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건물
들을 건설하였는데 특히 수도교와 도로 등의 건설은 교통의 발달과 로마
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로마는 오늘에도 살아있고
로마인들은 제국을 경영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
고방식을 가진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
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와 같은 말은 정말 그 뜻을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로마에 대해서 특히 관심을 많이 가졌던 부분은 로마군에 대한 것
이었다. 로마군은 전투에서 진 적은 많았어도, 전쟁에서는 거의 진 적이
없었다. 로마군은 어떻게 그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 지중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 그에 관해서 나
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았는데 스키피오, 술라, 마리우스, 폼페이우
스, 카이사르 등의 뛰어난 장군들이 많이 나타난 점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로마군이 용병이 아닌 로마 시민으로 구성되어 있어 용병과 비교할
수 없이 더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싸웠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다. 또한 로마군은 질서가 잘 잡혀 있고 병사, 백인대장, 대대장, 군단장
순의 계급 질서로 다른 국가에 비해서 부대 편성이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로마가 한니발, 피로스 같은 당대 최고의 명장들의 거센 공격에
도 불구하고 그들을 잘 막아 낼 수 있었던 데에는 또 하나의 힘이 있었
다. 아무리 로마군의 용맹과 전투력이 뛰어나고 무장이 잘 되어있고 질서
가 잘 잡혀 있다해도 한니발 같은 뛰어난 군대 통솔력과 책략과 지력을
가진 장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러나 이 의문은 ´로마 연합´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로마 연합´ 은 ´동
맹 시 전쟁´ 전까지 로마를 주축으로 모인 도시 국가를 말한다. 도시 국
가들은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고 로마시민들과 거의 대등한 대우를
받았다. 로마는 이 도시 국가들을 점령하고도 친구로 동맹을 맺어 ´로마
연합´이라는 강력한 방어망을 형성했다. 이탈리아 반도 안의 모든 도시
국가들이 ´로마 연합´이라는 강력한 철벽을 만들었으니 한니발 같은 뛰어
난 장군들도 로마를 꺾지 못한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같은 시대의 다
른 국가들은 점령한 땅을 자기 땅으로 만드느라고 바쁠 때 로마는 점령
한 도시와 동맹을 맺어 강력한 방어망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역시 뛰어
난 나라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로마는 왕정시대엔 나라의 기틀을 잡고 공화정 때에는 급속한 성장으
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뒤 180여년 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지중해
전역에 팍스 로마나를 심어 놓고 제정 때는 대제국에 맞는 제도와 속주
를 편성, 군대 개혁으로 로마제국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의
발전 과정 중에도 안타까운 역사도 많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로마 역
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카이사르 암살 사건이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같은 삼두 정치의 일원이었던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
서 승리, 로마의 독재관이 되어 여러 법과 제도를 고치고 제정의 기초를
다지고 있는 중에 그의 양자,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했던 것이다. 그는 도
나우 강 이남과 로마의 제1호 적국 파르티아를 치고 나서 황제가 되어
여러 법과 제도를 고칠 생각이었는데 암살당하고 만 것이었다. 아마 그가
죽지 않았다면 이 모든 계획이 성공했을 것이고, 로마는 동쪽으로 현재의
이란까지 나아가고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이 모
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파르티아인들은 다행히도 무사할 수 있었다.
또한, 로마는 역사적으로 또 한번 큰 좌절을 겪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게르마니아 원정의 실패였다. 로마는 게르마니아를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
스 때에 정복했었으나 게르마니아인들이 들고 일어나 로마로부터 독립하
였다. 그리고 이 사건 역시 역사를 바꿀 뻔했던 사건이었다고 생각이 든
다. 로마는 후에 게르마니아인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만일 로마가 아우구
스투스 때 게르마니아를 정복한 뒤 그 유지에 성공했었다면 아마도 로마
역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길어졌을 것이고 이로 인해 중세시대가 더 짧
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우리의 삶의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실 로마는 외국과의 전쟁으로 바빴던 역사가 많이 있다. 그리고 로마
는 다행스럽게도 전쟁 때마다 영웅이 나타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
었다. 포에니 전쟁 때는 한니발의 등장으로 밀리다가 스키피오란 영웅이
나타나 한니발을 무찔렀고,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잡은 후에 게르만군 30
만의 공격을 물리친 후 ´로마 연합´ 의 도시 국가들이 로마를 배반하고
싸운 전쟁에서 로마군을 승리로 이끈 마리우스, 소아시아 폰토스의 왕 미
트라다테스 6세의 대군을 무찌르고 로마의 정권을 잡은 술라, 해적 본거
지인 킬리키아와 시리아 왕국을 점령한 폼페이우스, 갈리아를 평정하고
로마를 제정으로 바꾸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카이사르 등 로마에는 이러
한 영웅들이 나타나 전쟁마다 승리하고 영토를 넓힐 수 있었다. 그 뒤로
로마는 제정이 되었고 안정 성장기를 맞아 국가의 개혁을 추진하고 외국
과의 큰 전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 로마 제정은 정말 복잡하다. 로마 제정은 ´제일인자´가 실질적
으로 황제 노릇을 하였고 그러면서 ´제일인자´를 중심으로 원로원, 시민,
병사들이 서로 견제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내가 로마에 대한 이러한 부분
을 조금씩 알아가면서부터 로마인의 사고 방식이 얼마나 우리와 다른지
더 궁금해졌고 더욱 알고 싶어졌다.
공화정을 비롯해서 도로나 운하, 수도교 등 실용적인 건축물, ´로마 연
합´ 그리고 제정도 다른 나라와 다르게 구사했던 로마인은 독창적이고 원
래의 개념을 깬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최초의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로마인에게 남보다 앞선 정치, 창조정신과 너그러움, 관용정
신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역사상 우리나라는 로마처럼 강대국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로마와 같이 거대한 나라를 세우고 경영할 수 있는 자세는 항
상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내가 이 로마인 이야기 9권을 읽고 고작 원고지 20장에 언급하려고 하
니 조금은 벅찼다. 그러나 내가 알고 난 후에 그 내용을 글로 옮겨 적고
나니 로마인 이야기란 책에 내가 직접 들어가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
았다.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이 긴 로마의 역사를 알게 해준 작가 시
오노 나나미와 출판사에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축적된 결과물˝ 이라는 그의 말처럼 나 역시 그 역사의 한 켠을
장식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픈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역사를 타민족이 손에 쥐고 읽어나가는 그런 멋진 꿈을 꾸고 싶다.
정치적 포용성이 일궈놓은 경제적 능력, 그 경제력 뒤에 버티고 서 있는
테베레 강가의 일곱 언덕 로마인들은 제국을 경영하는 능력이 뛰어났으
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
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와 같은 말은 정말 그 뜻을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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