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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싫어 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어.」
그녀가 싫어 하는 남자 상은 대충 이런 사람이었다. 자라오면서 단 한시간의 고
통도 모르고 살아온 표정이 어느덧 오만한 미소로 자리잡혀 있는 남자, 어느 자
리에서 누구와 대화를 하던 자신의 전공 이외에도 박식한 지식을 머리 안에 넣고
있어 그것을 티를 내야만 숨을 쉴 수 있는 남자,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고 앞으
로도 그럴 만한 실력을 갖춘 남자. 그녀는 그런 남자는 자신 외에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잣대에 처지는 부류는 무시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어디서
듣고 왔는지, 그런 사람은 배우자를 소모품이나 장식품으로 생각한다는
확신까지 가지며…….
그때마다 나는 안그러는 남자도 많을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아픔
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 주면, 이렇게 착한 사람과 살아야지 행복하지. 오빠는
착해서 너무 좋아. 늘 이런 식으로 나를 달래 주곤 했었다.
「싫어 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어.」
그녀는 매우 깔끔한 사람을 싫어 했다. 깔끔한 사람이 아닌 매우 깔끔한 사람은
밥먹고 물대신 소독약을 마실 것 같다며 피곤하다고 했다.
영화나 잡지를 함께 볼 때 매우 깔끔한 정장에 매우 깔끔한 안경과 턱선을 가진
배우를 보거나, 프랑스식 T본 스테이크를 프랑스 사람보다 더 세련되고
매우 깔끔하게 먹는 사람을 보면 어제 먹은 생선가시가 넘어올 것 같다며
매우 깔끔한사람들은 무조건 결벽증 환자로 몰아버렸다.
그때마다 한참 전에 누렇게 색이 바랜 작업실 벽지를 한 번 뜯어내야겠다고 생
각했지만, 오빠 작업실 청소하다보면 행복해.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할 일이 있고
그 사람이 나 때문에 산뜻함을 느낄 수 있잖아. 담배만 좀 줄이면 좋겠는데. 내
작업실은 담뱃재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깔끔을 떨어도 지저분한 잔재가 남아
있었다. 그때마다 줄여야지 줄여야지 했지만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한 가지도 없었다.
「싫어 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어.」
인간이 동물과 틀린 것은 서로를 위해 충고해 주고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대화 때문이라고 그녀는 얘기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살다보면 실어증에 걸
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될 것이라며 그날 그날의 일과 실수했던 일과
기뻤던 일을 일기쓰듯 내게 하나도 빠짐 없이 얘기했다.
내 입이 펜이고 오빠 귀가 일기장이야. 평생 내 일기 받아줄거지! 오빠 귀에 일
기를 써야 하루가 끝난 것 같아. 내가 이러는 거 부담가지 않지?
그녀의 신변에는 내가 신경을 쓸 만한 일들이 일어날 수가 없기에
그 얘기를 들어주는데 별어려움은 없었지만,
나와는 너무 다른 생활을 얘기하고 내가 누려보지 못한
느낌들의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그녀가 그렇지!
할 때를 기다려 웃어주기만 할 뿐이었다.
「싫어 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어.」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작업실 문을 열고 나간 후, 매번 며칠 기다리면 그녀는 그
문을 열고 들어와 다시 그 말을 해주었다.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물론 매번 다시는 그녀의 손이 작업실 문을 안 열 것 같다는 불안감에 몸서리치
기는 했었지만, 그때마다 달력의 글씨를 커터칼로 하나씩하나씩 긁어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며칠새 지저분해진 작업실을 청소하며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아마도 이번에 그 싫어 하는 사람은 그녀가 싫어 할 만한 조건을 매우 많이
갖춘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이것저것에 염증을 느끼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왜냐하면 이제는 커터칼로 긁어낼 달력도 남아 있지 않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몇 걸음을 제외하고
작업실 전체가 온통 쓰레기로 쌓여 있기 때문에 그녀가 청소하기 무척 버거울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녀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단 한 가지도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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