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 한 줄 때문에 더 청구하지 못합니다
합의서 마스터·8분·
받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고 갈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서로 물러서서 다툼을 끝내기로 하면 물러선 쪽의 권리는 그 범위에서 없어지고, 합의서에 적힌 내용대로의 권리가 그 자리에 들어섭니다.
민법 제732조는 화해로 양보한 권리가 소멸하고 상대방이 그 권리를 취득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 이 효력을 설명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가 늘 함께 붙습니다
서명할 때 머릿속에 있던 그림
- 일단 마무리하고 모자라면 나중에 더 이야기하면 된다
- 받은 금액이 적으면 그만큼 다시 달라고 할 수 있다
- 문서를 써 줬을 뿐 권리를 넘긴 것은 아니다
- 판단은 나중에 법원이 다시 해 줄 것이다
- 서명이 잘못됐다는 것만 밝히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서명한 뒤에 실제로 놓인 자리
- 같은 일로 더 요구할 근거가 그 범위에서 사라져 있다
- 금액의 많고 적음은 이미 물러선 내용 안에 들어가 있다
- 물러섰다는 것이 곧 권리를 넘겼다는 뜻이다
- 법원이 다시 볼 대상 자체가 남아 있지 않다
- 되돌리는 길은 남아 있으나 문턱이 매우 높다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시점은 대개 몇 달 뒤입니다
서명할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문제는 한참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합의서를 쓰는 자리는 대체로 급합니다. 오래 끌던 이야기를 그날 끝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종이 한 장이 오가고, 서명을 하고 나면 양쪽 다 홀가분해집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 사라졌는지 실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달라지는 것은 시간이 지난 뒤입니다. 치료가 길어지거나 수리 견적이 처음보다 커지거나, 그때는 없던 항목이 새로 튀어나옵니다. 그제야 앞서 쓴 종이를 다시 꺼내 읽게 되고, 문서 어딘가에 있던 한 줄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한 줄을 발견한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대개 같습니다. 이건 그때 상황을 모르고 적은 것이니 다시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담을 가면 예상과 다른 말을 듣습니다. 다시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는 뜻의 말입니다.
이 편이 다루는 것은 그 어긋남입니다. 문서가 강해서 이기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겨룰 자리 자체가 이미 정리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러섰다는 것은 권리를 넘겼다는 뜻입니다
화해는 다툼을 잠시 덮어 두는 약속이 아니라 권리를 갈아 끼우는 계약입니다.
민법은 서로 물러서서 다툼을 끝내기로 하는 약정을 화해라는 이름의 계약으로 정해 두고, 거기에 다른 계약에는 없는 효력을 하나 붙여 놓았습니다. 물러선 쪽이 갖고 있던 권리는 없어지고 상대는 합의한 내용대로의 권리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효력을 창설적 효력이라고 부릅니다. 조문의 원문과 그 구조는 다시 소송할 수 있는지를 다룬 편에 옮겨 두었으니 여기서는 결과만 봅니다. 결과는 짧습니다. 합의 전의 권리는 남지 않고, 남는 것은 합의서에 적힌 것뿐입니다.
그래서 합의서를 읽을 때 세기를 묻는 것은 초점이 어긋난 물음입니다. 강한 문서와 약한 문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적었느냐에 따라 사라지는 범위가 정해질 뿐입니다.
아래 세 칸은 서명하는 순간 한꺼번에 일어나는 일을 나눠 놓은 것입니다. 가운데 칸만 떼어 읽으면 상대가 무엇을 얻었는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 권리가 사라짐물러선 쪽에서는
- 합의대로의 권리상대 쪽에서는
- 문면에 적힌 범위그 뒤에 남는 것은
다만 이 효력을 설명하는 자리에는 늘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말입니다. 무조건이라는 낱말로 바꿔 읽지 마십시오.
그 특별한 사정에 해당할 만한 것이 무엇이고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는 이 글의 마지막 절과 취소를 다룬 편에서 나눠 봅니다.
졌다는 말과 남지 않았다는 말은 다릅니다
둘 다 결과는 못 받는 것이지만, 그 사이에 놓인 절차의 모양이 전혀 다릅니다.
더 청구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두고 흔히 쓰는 표현이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순서를 거꾸로 잡은 표현입니다. 다투어 보고 밀린 것이 아니라 다툴 대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별이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 보면 차이가 뚜렷합니다. 다투다가 밀린 상황이라면 근거를 더 모아 오는 것이 답이 됩니다. 진단서를 보강하거나 견적서를 다시 받아 오면 결과가 달라질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가 정리된 상황에서는 근거를 아무리 쌓아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다쳤는지를 더 잘 보여 준다고 해서 이미 넘어간 권리가 되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시간과 비용만 쓰게 됩니다.
아래 표는 두 상황을 나란히 둔 것입니다. 오른쪽 줄에 서 있다면 준비할 것이 다릅니다.
| 어떤 상황인가 |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근거를 더 모으면 |
|---|---|---|
| 다투었는데 인정받지 못했다 | 사실을 더 잘 보여 주는 자료 | 결과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 |
| 다툴 권리가 남아 있지 않다 | 합의의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 | 쌓아도 결론이 움직이지 않는다 |
합의서를 쓴 뒤의 상담이 짧게 끝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실관계를 길게 들을 필요 없이 문서 한 장을 읽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명한 뒤에 확인할 것도 사실이 아니라 문면입니다. 무엇을 두고 물러섰는지가 그 종이에 어떻게 적혀 있는지부터 보십시오.
되돌리려고 흔히 붙잡는 세 가지
셋 다 자주 나오는 말인데, 셋 다 그것만으로는 힘을 갖지 못합니다.
첫째는 금액입니다. 받은 것이 너무 적었으니 나머지를 달라는 주장인데, 액수의 많고 적음은 대개 그때 서로 다투던 것 자체입니다. 다투던 것을 두고 잘못 알았다고 말하는 방식으로는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둘째는 문서를 없애는 것입니다. 내 몫의 종이를 버리면 없던 일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인데, 화해는 약정으로 효력이 생기는 계약이라 종이가 효력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종이는 그런 약정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입니다.
셋째는 시간을 두는 것입니다.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몇 년 뒤에 다시 꺼내겠다는 것인데,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진 권리가 자라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남아 있던 좁은 길마저 기간에 걸려 닫힙니다.
셋을 겹쳐 보면 한 가지가 겹칩니다. 전부 종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대응이라는 점입니다. 정작 달라진 것은 종이가 아니라 권리 쪽인데도 그렇습니다.
그 자료는 얼마가 적정했는지를 말해 줄 뿐 이미 정리된 것을 되돌리지 못합니다. 금액의 적정 여부는 서로 다투던 영역 안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문서가 사라졌다고 합의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어디까지 정했는지를 보여 주기가 서로 어려워질 뿐이고, 그 어려움은 양쪽에 똑같이 걸립니다.
도장을 찍어야 효력이 생긴다고 정한 조항은 없습니다. 서명과 날인은 그 문서가 본인의 뜻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수단이고, 이 갈래는 당사자 표시와 서명을 다룬 편에서 따로 봅니다.
세 가지 모두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길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남아 있는 길은 문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아니라 다른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자리를 마지막 절에서 봅니다. 넓지 않고, 넓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자리는 세 곳뿐입니다
셋 다 좁고, 셋 다 문서를 다시 읽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첫째는 애초에 화해가 성립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서로 물러선 내용이 없이 한쪽 이야기만 적혀 있다면 앞에서 본 효력이 그대로 붙지 않습니다. 문서 제목이 합의서인지가 아니라 문면에 양쪽의 물러섬이 보이는지를 봅니다.
둘째는 합의의 범위가 그 손해에 닿지 않은 경우입니다. 합의는 그대로 살아 있는 채로 특정 부분만 그 밖에 남아 있는 상황인데, 이것이 인정되려면 갖추어야 할 사정이 정해져 있습니다.
셋째는 합의 자체를 되돌리는 길입니다. 다만 화해에는 다른 계약과 다른 특칙이 있어서, 잘못 알았다는 사정을 이유로 삼는 길이 원칙적으로 막혀 있습니다. 어떤 사유가 남아 있는지는 취소를 다룬 편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아래 목록은 서명한 뒤에 문서를 다시 읽을 때 보는 순서입니다. 셋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가려야 그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명한 뒤에 문서를 다시 읽는 순서
다섯 줄을 훑고 나면 대개 방향이 정해집니다.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남은 길이 넓지 않다는 뜻이고, 그것을 일찍 아는 편이 손해가 적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이 가장 값어치 있는 시점은 서명한 뒤가 아니라 서명하기 전입니다. 같은 항목을 서명 직전에 훑는 순서로 다시 짠 것이 체크리스트를 다룬 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합의서를 썼는데 손해가 더 커졌습니다. 추가로 청구할 수 있나요?
원칙은 어렵습니다. 물러선 쪽의 권리는 그 범위에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합의의 범위가 그 부분에 닿지 않았다고 볼 사정이 갖추어지면 따로 다툴 여지가 남고, 그 조건은 범위가 모호해 다시 다툰 사례를 다룬 편에 있습니다.
금액이 너무 적었다는 이유로 되돌릴 수 있나요?
금액의 많고 적음은 대개 서로 다투던 영역 안에 있습니다. 다투던 것에 관해 잘못 알았다는 사정으로는 화해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 민법이 화해에만 따로 둔 특칙입니다.
법원에 가면 다시 판단해 주지 않나요?
법원이 다시 볼 대상은 남아 있는 권리입니다. 물러선 부분은 이미 정리되어 있어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기각인지 아닌지보다 무엇이 남았는지가 먼저입니다.
합의서를 찢어 버리면 없던 일이 되나요?
되지 않습니다. 화해는 약정만으로 효력이 생기는 계약이라 서면이 성립 요건이 아닙니다. 종이를 없애면 무엇을 정했는지 보여 주기가 어려워질 뿐이고 그 불편은 양쪽에 걸립니다.
상대가 합의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것은 이 글이 다루는 문제와 다른 자리입니다. 물러선 권리가 사라지는 것과 합의한 대로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별개이고, 지키지 않은 경우에는 합의서에 적힌 내용을 근거로 삼게 됩니다.
서명하기 전에 무엇을 보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나요?
무엇을 두고 물러서는지와 어느 범위까지 정리하는지를 문면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서명 직전에 훑는 순서는 체크리스트를 다룬 편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