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를 쓰면 다시 소송할 수 없나
합의서 마스터·9분·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닙니다. 소를 제기하는 일을 막는 것과, 소를 제기해도 다툴 권리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근거가 다릅니다. 합의서에서는 뒤쪽이 먼저 작동합니다.
민법 제732조는 화해로 양보한 권리가 소멸한다고 정합니다 · 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를 막으려면 그 조문이 아니라 부제소 합의라는 별도의 조항이 문서에 있어야 합니다
합의서를 두고 오가는 말
- 합의서를 썼으면 소송은 낼 수 없다
- 합의금이 적었으니 나머지를 다시 청구하면 된다
- 부제소 조항은 어차피 무효라 신경 쓸 것 없다
- 합의서는 증거력이 세서 뒤집기 어려울 뿐이다
- 합의서를 없애 버리면 안 쓴 것이 된다
조문에서 읽히는 것
- 소를 접수하는 일 자체가 봉쇄되지는 않는다
- 양보한 권리는 소멸해 근거로 삼을 것이 없다
- 부제소 합의는 원칙적으로 유효한 약정이다
-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가 남았는지의 문제다
- 서면이 없어도 성립한 화해는 그대로 남는다
물음이 두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법원 문이 잠기는 일과 손에 든 근거가 사라지는 일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합의서에 서명하고 나면 누구나 같은 것을 궁금해합니다. 이제 이 일로 법원에 갈 수는 없느냐는 물음입니다. 찾아보면 못 간다는 글과 갈 수 있다는 글이 나란히 나오는데, 둘 다 반쯤만 맞습니다. 물음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물음은 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가 막히느냐입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한 약정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문장이 문서에 없다면 서류를 접수하는 일까지 봉쇄되지는 않습니다.
둘째 물음은 소를 제기했을 때 무엇을 근거로 다투느냐입니다. 합의서에서 무게가 실리는 쪽은 이쪽입니다. 민법이 정한 화해의 효력 때문에, 다투려던 권리 자체가 이미 손에서 빠져나가 있을 수 있어서입니다.
그래서 이 편은 두 층위를 갈라 봅니다. 아래 표의 위쪽 줄과 아래쪽 줄은 근거가 다르고, 문서에 무엇이 적혀 있느냐에 따라 한쪽만 작동하기도 합니다.
| 묻는 것 | 무엇이 있어야 작동하는가 | 작동하면 어떻게 되는가 |
|---|---|---|
| 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 |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한 조항 | 그 범위에서는 소송으로 다툴 수 없다 |
| 다툴 권리가 남았는가 | 화해계약의 성립 | 양보한 권리가 소멸해 근거가 남지 않는다 |
아래쪽 줄이 이 편의 본줄기입니다. 그런 조항을 넣었는지와 무관하게, 합의가 화해로 성립하기만 하면 따라붙는 효력이기 때문입니다.
위쪽 줄은 문서에 그런 문장을 넣었을 때에만 생깁니다. 넣는 방법과 그 조항이 살아남는 조건은 부제소 조항을 다룬 편에서 따로 봅니다.
민법 제732조가 정한 것은 권리의 소멸입니다
화해는 다툼을 덮는 계약이 아니라 다투던 권리를 갈아 끼우는 계약입니다.
민법은 화해를 계약의 한 유형으로 정해 두었고 그 효력을 조문 한 줄로 못 박았습니다. 문장이 짧아 지나치기 쉬운데, 합의서를 둘러싼 물음의 대부분이 이 한 줄에서 갈립니다.
읽을 때 눈여겨볼 낱말은 소멸과 취득입니다. 한쪽이 양보한 권리는 없어지고 다른 쪽은 화해로 그 권리를 얻습니다. 다투던 자리에 새 권리관계가 들어서는 것이지, 옛 권리가 잠시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구조가 아닙니다.
이것을 창설적 효력이라고 부릅니다. 화해계약이 성립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전의 법률관계를 바탕으로 하던 권리와 의무는 이 효력에 따라 정리됩니다. 합의 뒤에 남는 것은 합의서에 적힌 내용이고, 그 전의 주장은 딛고 설 자리를 잃습니다.
제732조(화해의 창설적 효력) 화해계약은 당사자 일방이 양보한 권리가 소멸되고 상대방이 화해로 인하여 그 권리를 취득하는 효력이 있다.
민법 제732조
- 권리가 소멸양보한 쪽에서는
- 권리를 취득받은 쪽에서는
- 합의서의 내용뒤에 남는 근거는
다만 조문을 설명할 때 늘 따라다니는 말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입니다. 무조건이라는 낱말로 바꿔 읽지 마십시오.
그 특별한 사정에 해당할 만한 취소 사유가 무엇이고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는 합의서를 취소할 수 있는 경우에서 조문과 함께 다룹니다.
합의서가 무거운 까닭은 증거력 때문이 아닙니다
같은 종이 한 장이라도 문서마다 힘을 얻는 법이 다릅니다.
약속을 적어 둔 문서는 대개 증명의 자리에서 쓰입니다. 서명이 인정되면 적힌 대로 인정되기 쉬워지고 뒤집으려는 쪽이 애를 먹는 구조입니다. 한쪽이 상대에게 적어 주는 문서는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합의서에는 한 겹이 더 있습니다. 서로 물러서서 다툼을 끝내기로 한 계약이면 화해가 되고, 화해가 되면 앞 절의 조문이 곧바로 작동해 권리 자체를 정리해 버립니다. 증명의 문제를 지나 권리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결론의 모양에서 드러납니다. 증명이 문제라면 다툴 여지는 늘 남습니다. 반증을 세우면 되기 때문입니다. 권리가 문제라면 아무리 잘 설명해도 들고 갈 것이 없습니다. 합의서는 반박하기 어려운 문서라기보다 반박할 대상이 사라진 문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합의서를 두고 증거력이 세다고만 설명하는 글은 절반을 놓친 것입니다. 세기의 문제가 아니라 층의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화해는 약정으로 효력이 생기는 계약이고 서면을 요구하는 조문이 없습니다. 종이는 그 약정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수단일 뿐입니다.
요건을 갖추었다면 계약으로서는 같습니다. 다만 무엇을 어디까지 합의했는지 나중에 보여 주기가 어려워집니다. 서면을 남기는 실익이 여기에 있습니다.
표지의 낱말이 결과를 정하지 않습니다. 서로 물러선 내용이 문서에서 읽히는지를 봅니다. 이 갈림은 합의서와 각서를 견준 편에서 따로 다룹니다.
정리하면 합의서의 무게는 종이의 성질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계약의 유형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다음으로 확인할 것은 하나입니다. 이 문서가 정말 화해인가입니다.
그 효력은 화해가 성립한 경우에만 붙습니다
표지에 합의서라고 적었다고 해서 곧바로 화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 절의 조문은 화해계약에 붙는 효력을 정한 것입니다. 조문 첫머리가 화해계약이라고 적고 시작하므로, 그 문서가 화해인지부터 따져야 순서가 맞습니다.
민법은 화해를 당사자가 상호 양보하여 분쟁을 끝내기로 약정하는 계약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요건은 셋으로 읽힙니다. 다투는 것이 있어야 하고, 양쪽이 서로 물러서야 하고, 그것으로 끝내기로 해야 합니다.
갈림길이 되는 것은 가운데입니다. 한쪽만 무엇을 해 주기로 적힌 문서는 상호 양보라는 요건을 채우지 못합니다. 그런 문서에 창설적 효력을 그대로 얹을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표지가 무엇이든 서로 물러선 내용이 담겨 있으면 화해로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아래 목록은 그 판단을 위해 문서에서 먼저 찾아볼 것들입니다.
이 문서가 화해로 읽히는지 살필 때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화해의 특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 문서에 아무 힘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다만 이 편에서 다루는 권리 소멸의 효력은 따라붙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 문서가 대신 어떤 계약으로 다루어지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운 자리입니다. 화해는 아니라는 데까지가 조문에서 읽을 수 있는 범위입니다.
소송을 막는 힘은 부제소 조항에서 나옵니다
권리가 소멸하는 것과 소송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은 근거가 다릅니다.
여기까지가 둘째 층위였습니다. 남은 것은 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를 막을 수 있느냐입니다. 이것은 창설적 효력이 아니라 문서에 그런 문장을 넣었는지의 문제입니다.
이 일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조항을 부제소 합의라고 부릅니다. 원칙적으로 유효한 약정입니다. 소송할 권리가 공적인 성격을 띤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약정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다만 무엇이든 다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는 이 약정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을 몇 가지로 정리해 두었는데, 그 가운데 대상이 좁혀져 있어야 한다는 것과 당사자가 스스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는 것이 자주 문제 됩니다. 조건을 하나씩 뜯어보는 일은 부제소 조항을 다룬 편에 맡깁니다.
유효한 부제소 조항이 있으면 그 범위에서는 소송으로 다툴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분명한 결론입니다. 그 뒤에 법원이 사건을 어떤 형식으로 마무리하는지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소를 제기하는 행위를 막는 문장이 없으니 접수는 됩니다. 다만 화해가 성립했다면 다투려던 권리가 이미 정리되어 있어, 무엇을 근거로 삼을지가 남습니다.
그렇게 뭉뚱그린 문장일수록 대상이 특정되지 않아 다툴 여지를 남깁니다. 좁혀 적을수록 조항이 살아남습니다.
형사 절차는 이 글이 다루는 민사상 권리와 층이 다릅니다. 이 편에서는 답하지 않습니다.
두 층위를 겹쳐 놓으면 처음의 물음에 답할 수 있습니다. 합의서를 썼다고 법원 문이 자동으로 잠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화해가 성립했다면 들고 갈 근거가 남지 않고, 여기에 부제소 조항까지 있으면 그 범위에서는 길 자체가 닫힙니다.
그래서 확인할 자리는 서명 전입니다. 서명한 뒤에 이 구조를 알게 된 사람들이 실제로 어디에서 막히는지는 합의서 한 줄 때문에 더 청구하지 못합니다에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합의서를 쓰면 소송을 아예 못 하나요?
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를 막으려면 소송을 하지 않기로 한 조항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그런 조항이 없더라도 화해가 성립했다면 민법 제732조에 따라 다투려던 권리가 소멸해 근거가 남지 않습니다.
합의금이 생각보다 적었는데 나머지를 청구할 수 있나요?
금액이 적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양보한 권리는 소멸하고 합의 내용대로 새 권리관계가 서기 때문입니다. 다투던 것에 관한 착오는 취소 사유로도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부제소 조항은 무효라고 들었습니다.
원칙은 반대입니다. 부제소 합의 자체는 유효하고, 무효가 되는 것은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거나 스스로 처분할 수 없는 권리를 다룬 경우처럼 요건을 벗어난 때입니다.
합의서를 쓰기만 하면 무조건 권리가 사라지나요?
화해가 성립한 경우에 붙는 효력입니다. 서로 물러선 내용이 없다면 화해의 요건을 채우지 못해 이 효력은 따라붙지 않습니다.
합의서와 각서는 힘의 순위가 다른가요?
순위가 다른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층이 다릅니다. 한쪽이 적어 주는 문서는 증명의 자리에서 쓰이고, 서로 물러선 합의서는 권리 자체를 정리합니다.
구두로 한 합의도 효력이 있나요?
화해는 약정으로 효력이 생기는 계약이라 서면이 성립 요건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합의했는지 보여 주기 어려워 서면으로 남겨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