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를 취소할 수 있는 경우
합의서 마스터·10분·
착오를 이유로는 취소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민법이 화해에만 따로 둔 특칙이고, 그 원칙을 벗어나는 예외는 조문 단서가 정한 둘뿐입니다. 속임이나 위협처럼 착오가 아닌 갈래는 이와 다른 자리에서 다룹니다.
민법 제733조 본문이 화해계약은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단서가 당사자의 자격과 분쟁 이외의 사항 둘만 예외로 남겨 두었습니다
잘못 알고 서명했으니 착오로 취소하면 된다.
화해계약은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지 못한다는 것이 조문의 본문이다. 착오 취소는 원칙이 아니라 닫혀 있는 길이다.
합의금이 너무 적었던 것도 결국 착오다.
금액은 서로 다투다가 물러선 대상이다. 다투던 것에 관한 착오는 단서가 여는 예외에 들지 않는다.
합의 뒤에 없던 손해가 나타났으니 합의가 취소된다.
그 문제는 합의를 되돌리는 문제가 아니라 합의의 효력이 그 손해에까지 미치는가의 문제다. 다른 길이다.
일반 계약이라면 열려 있는 길
잘못 알고 한 의사표시를 되돌리는 조문은 민법 총칙에 이미 있습니다.
잘못 알고 서명했으면 되돌릴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민법은 의사표시에 착오가 있었던 경우를 위해 조문을 하나 두고 있습니다.
다만 그 조문도 아무 착오나 받아 주지는 않습니다. 잘못 안 것이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부분이어야 하고,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생긴 것이면 취소하지 못한다는 단서가 뒤에 붙어 있습니다.
두 번째 항은 취소가 인정되더라도 그 사이에 사정을 모르고 끼어든 사람에게는 취소를 내세우지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계약을 되돌리는 일이 나와 상대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①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 ② 전항의 의사표시의 취소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민법 제109조
무엇이 중요부분에 해당하고 어느 정도가 중대한 과실인지는 사안마다 갈리는 자리입니다. 이 글에서 기준을 세우지 않겠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길이 있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합의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문을 만납니다.
화해계약에는 그 길이 닫혀 있습니다
민법은 화해에만 따로 조문을 두어 착오 취소를 막아 두었습니다.
서명한 문서가 화해계약으로 성립했다면 앞 절의 조문을 그대로 들고 갈 수 없습니다. 민법이 화해를 위해 특칙을 따로 마련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조문은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이 원칙이고 뒤에 붙은 단서가 예외입니다. 순서를 뒤집어 읽으면 뜻이 정반대가 되므로 문장을 통째로 보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정해 두었는지는 화해의 목적에서 나옵니다. 화해는 다툼을 끝내려고 맺는 계약입니다. 끝낸 뒤에 잘못 알았다는 이유로 다시 열 수 있다면 애초에 끝난 것이 아니게 됩니다. 조문은 그 모순을 막고 있습니다.
제733조(화해의 효력과 착오) 화해계약은 착오를 이유로 하여 취소하지 못한다. 그러나 화해 당사자의 자격 또는 화해의 목적인 분쟁 이외의 사항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민법 제733조
- 착오로는 취소 불가원칙
- 단서가 정한 둘예외
- 일반 규정 그대로착오 밖의 사유
여기서 한 가지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이 특칙이 붙는 것은 그 문서가 화해로 성립한 경우입니다. 서로 물러선 내용이 없어 화해의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면 이 조문이 작동할 자리도 없습니다.
그러니 취소를 따지기 전에 그 문서가 화해인지부터 보아야 순서가 맞습니다.
단서가 여는 예외는 둘뿐입니다
다투던 것이 아니라 다투지 않고 깔아 둔 것에 착오가 있어야 합니다.
단서는 두 가지를 나란히 적어 두었습니다. 화해 당사자의 자격에 착오가 있는 때와, 화해의 목적인 분쟁 이외의 사항에 착오가 있는 때입니다. 이 둘 말고는 열려 있지 않습니다.
뒤쪽 표현이 낯설어 보이지만 대법원이 뜻을 밝혀 둔 적이 있습니다. 대법원 1992. 7. 14. 선고 91다47208 판결(손해배상)은 이것을 분쟁의 대상이 아니라 분쟁의 전제 또는 기초가 된 사항으로서, 쌍방 당사자가 예정한 것이어서 상호 양보의 내용으로 되지 않고 다툼이 없는 사실로 양해된 사항이라고 보았습니다.
같은 판결이 든 장면은 이렇습니다. 사실은 가해자의 과실도 함께 있었는데 오로지 피해자의 과실로 사고가 난 것으로 착각하고 합의금을 받은 경우입니다. 그 사고가 피해자만의 잘못이라는 점은 양쪽이 다투던 대상이 아니라 다툼 없이 깔고 시작한 전제였으므로, 그 착오를 이유로 화해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표로 옮기면 두 예외의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 단서가 연 예외 | 무엇에 관한 착오인가 | 합의서에서는 어떤 장면인가 |
|---|---|---|
| 화해 당사자의 자격 | 누가 그 합의의 당사자인가에 관한 착오 | 합의를 할 지위에 있지 않은 사람과 문서를 주고받은 경우 |
| 분쟁 이외의 사항 | +다투지 않고 전제로 깔아 둔 사항에 관한 착오 | +양쪽이 다툼 없는 사실로 여기고 출발한 부분이 실제와 달랐던 경우 |
그래서 이 편의 판단 기준은 한 문장으로 줄어듭니다. 잘못 안 그 부분이 다투던 것이었는지, 다투지 않고 전제로 삼았던 것이었는지입니다.
다투던 것이었다면 그 착오는 조문 본문에 막힙니다. 화해라는 계약이 원래 그 다툼을 접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금액이 적었다는 사정은 대개 다투던 것입니다
아쉬움과 착오는 다릅니다. 조문이 가르는 것은 뒤쪽입니다.
실제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금액입니다. 그때는 그 돈이면 되겠다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모자랐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착오처럼 느껴지지만 조문의 자리에서는 그렇게 읽히지 않습니다.
합의금은 양쪽이 밀고 당기다 어느 선에서 서로 물러선 결과입니다. 곧 다투던 것 그 자체입니다. 다투던 것에 관해 잘못 판단했다는 사정은 단서가 여는 두 예외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과실 비율도 대개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서로 얼마씩 잘못했는지를 두고 주고받다가 합의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분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앞 절의 판결이 취소를 인정한 장면은 그 반대였습니다. 비율을 다툰 것이 아니라, 한쪽에게 잘못이 있는지조차 아예 화제에 오르지 않은 채 출발했던 경우입니다.
이 구별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합의하던 자리를 떠올려 보는 편이 빠릅니다. 그 이야기를 그때 했는지 여부가 갈림길입니다.
말하지 않은 것이 다투던 대상 밖의 전제였다면 단서에 닿을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적극적으로 속인 정황이 있다면 착오가 아니라 다른 갈래로 보아야 하므로 사실관계부터 갈라야 합니다.
읽지 않았다는 사정 자체를 취소 사유로 정한 조문은 없습니다. 무엇을 잘못 알았는지, 그것이 다투던 것이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취소가 되면 합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다루어지므로 주고받은 것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 정리의 기준은 미성년자가 얽힌 합의를 다룬 편에서 조문과 함께 봅니다.
정리하면 착오를 이유로 화해를 되돌리는 일은 예외 중의 예외입니다. 이 편에서 독자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문장이 그것입니다.
그렇다고 남은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길들은 착오와 다른 조문 위에 서 있습니다.
착오가 아닌 갈래는 따로 봅니다
화해에 관한 특칙이 막고 있는 것은 문언상 착오뿐입니다.
합의서를 다투는 사유가 착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속임이 있었던 경우, 위협을 받은 경우, 주고받은 것이 크게 기울어 있는 경우, 내용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가 각각 다른 조문 위에 있습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화해의 특칙이 문언으로 막고 있는 것은 착오입니다. 거기까지가 조문에서 읽히는 사실이고, 그러므로 나머지는 언제나 통한다는 결론을 이 글에서 내지는 않겠습니다. 사유마다 요건이 따로 있고 그 요건을 세우는 일이 실제 다툼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표는 갈래를 갈라 두기 위한 것입니다. 조문마다 결론의 낱말이 다르다는 점을 특히 보아 두십시오. 취소와 무효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덧붙이면 취소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법은 취소할 수 있는 사람을 따로 정해 두었고,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도 정해 두었습니다. 미루면 사유가 있어도 다툴 자리가 닫힙니다.
| 사유 | 결론의 낱말 | 화해에서 어떻게 다루는가 |
|---|---|---|
| 착오 | 취소 | 화해에 관한 특칙이 원칙적으로 막는다 |
| 속임이나 위협에 의한 의사표시 | 취소 | 착오와 다른 조문 위에 있다 |
| 궁박·경솔·무경험을 이용한 심한 불균형 | 무효 | 요건이 두 겹이라 문턱이 높다 |
| 내용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 | 무효 | 합의의 내용을 보고 판단한다 |
표의 첫 줄만 화해의 특칙에 걸리고 나머지 세 줄은 계약 일반의 규정이 다룹니다. 그래서 상담을 받으러 갈 때에도 무엇을 잘못 알았는지가 아니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정리해 가는 편이 낫습니다.
돈을 이미 받은 뒤라면 사정이 더 까다로워집니다. 그 국면은 합의금을 먼저 받고 서명한 사례에서 따로 다룹니다.
취소되면 분쟁이 되살아납니다 — 후발손해와는 다른 길입니다
취소는 끝이 아니라 다투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문입니다.
취소가 인정되면 그 법률행위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던 것으로 다루어집니다. 합의가 사라지면 합의로 정리되었던 옛 권리관계가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좋기만 한 결과가 아닙니다. 접었던 다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받은 돈도 정리 대상이 됩니다. 취소된 합의에 근거해 오간 것이므로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돌려주는가에 관해서는 조문에 단서가 붙어 있는데, 그 단서가 정면으로 문제 되는 국면은 따로 있어 그쪽 편에서 조문과 함께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이 클러스터에서 가장 자주 뒤섞이는 두 가지를 갈라 두겠습니다. 합의한 뒤에 예상하지 못했던 손해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합의가 취소된다고 말하는 글이 많은데, 조문의 자리가 다릅니다.
취소는 합의 자체를 되돌리는 일입니다. 후발손해는 합의를 그대로 둔 채 그 손해에까지 합의의 효력이 미치는지를 묻는 일입니다. 앞은 화해에 관한 특칙과 그 단서가 다루고, 뒤는 합의의 범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요건도 결과도 다르므로 섞어 쓰면 답이 어긋납니다.
취소를 떠올렸을 때 먼저 가릴 것
다섯 줄 가운데 하나라도 걸린다면 그때부터는 사실관계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언제 무엇을 알았고 언제 서명했는지가 모든 판단의 재료가 됩니다.
합의의 범위가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다투는 쪽은 다른 편에 있습니다. 합의 범위가 모호해 다시 다툰 사례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합의서를 착오로 취소할 수 있나요?
원칙은 취소하지 못합니다. 민법 제733조 본문이 화해계약은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고, 예외는 단서가 정한 두 가지뿐입니다.
합의금이 적었던 것은 착오가 아닌가요?
금액은 양쪽이 다투다가 물러선 대상입니다. 다투던 것에 관한 착오는 단서가 여는 예외에 들지 않아 취소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분쟁 이외의 사항이라는 말이 어렵습니다.
다투던 대상이 아니라 다툼 없이 전제로 깔아 둔 사항을 가리킵니다. 대법원 1992. 7. 14. 선고 91다47208 판결이 분쟁의 전제 또는 기초가 된 사항으로 쌍방이 다툼 없는 사실로 양해한 부분이라고 밝혔습니다.
속아서 합의했는데도 취소가 안 되나요?
화해에 관한 특칙이 문언으로 막고 있는 것은 착오입니다. 속임이나 위협은 다른 조문이 다루는 갈래이므로 착오와 나누어 따져야 합니다.
취소가 되면 합의 전으로 돌아가나요?
취소된 법률행위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던 것으로 다루어지므로 접었던 다툼이 되살아납니다. 받은 돈도 정리 대상이 됩니다.
합의 뒤에 생긴 손해는 취소 사유인가요?
취소의 문제가 아니라 합의의 효력이 그 손해에까지 미치는지의 문제입니다. 요건도 결과도 달라 섞어 다루면 답이 어긋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