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서 한 장 때문에 책임을 다 지게 됩니다
각서 마스터·8분·
각서가 무거운 것은 곧바로 집행되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 놓은 내용이 그대로 인정되는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서명이나 도장이 자기 것이라는 사실이 인정되면 문서 전체가 진정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그 위에서 적힌 의사표시가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강제집행에는 집행권원과 집행문이 필요하고 각서는 그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 사문서가 집행권원이 되는 통로는 강제집행 인낙 문언이 적힌 공정증서 하나뿐입니다
서명할 때 흔히 하는 생각
- 써 주면 당장 통장부터 막힐 것이다
- 어차피 종이 한 장이니 나중에 아니라고 하면 된다
- 말로 협의한 내용이 진짜고 종이는 형식이다
- 회사가 준 것이니 서명하는 수밖에 없다
- 금액이 안 적혔으니 큰 의미는 없다
다툼이 벌어졌을 때의 실제
- 각서만으로는 재산을 건드릴 수 없고 먼저 재판을 거쳐야 한다
- 서명이 내 것이면 문서 전체가 진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 적힌 문장이 앞서고 말로 한 협의는 따로 증명해야 한다
- 근로계약 불이행에 위약금을 예정한 부분은 강행규정으로 무효가 된다
- 금액이 없으면 집행은 못 하지만 책임을 인정한 사실은 남는다
각서를 썼다고 해서 다음 날 압류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먼저 이 오해부터 걷어내야 나머지 이야기가 제자리를 찾습니다.
각서를 요구받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대개 통장이 묶이는 그림입니다. 서명하는 순간 상대가 그 종이를 들고 어딘가로 가서 곧바로 재산을 붙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데, 실제 절차는 그렇게 짜여 있지 않습니다.
강제집행을 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를 공적으로 확정한 문서인 집행권원, 그리고 그 문서에 집행을 해도 좋다는 표시를 붙인 집행문입니다. 민사집행법이 이 두 층을 나란히 두고 있어서,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집행 절차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각서는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당사자끼리 만들어 서로 서명한 사문서일 뿐이고, 사문서에 집행력을 주는 조항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서를 받은 쪽도 그 종이 하나로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합니다.
예외로 열린 통로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 공증인이 작성한 공정증서에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취지가 적혀 있고, 그 내용이 일정한 금액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입니다.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하는 좁은 문이며,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공증을 정면으로 다룬 편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서명 직후에 벌어지는 일은 대개 아무 일도 없는 상태입니다. 문제는 그 조용한 기간이 안전을 뜻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각서는 사실을 적은 종이가 아니라 약속을 만든 종이입니다
문서를 두 갈래로 나누는 실무의 구분이 여기서 결정적으로 작동합니다.
법정에 낸 종이는 성격이 갈립니다. 약속이 그 종이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있고, 있었던 일을 뒤늦게 적어 둔 것이 있습니다. 법정에서는 그 둘을 각각 처분문서와 보고문서로 갈라 부릅니다.
계약서와 차용증, 유언서, 어음과 수표, 해약통고서가 앞쪽에 들어갑니다. 진단서나 영수증, 장부는 뒤쪽입니다. 영수증은 돈이 오갔다는 사실을 적은 기록이지 그 종이로 무언가를 약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서는 사법상의 의사표시를 담고 있으면 앞쪽으로 다루어집니다. 지급하겠다고 적으면 지급 약정이 그 종이로 이루어진 것이고, 배상하겠다고 적으면 배상 약정이 그 종이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다는 서술처럼 보이는 문장도 그 안에 약속이 들어 있으면 성격이 그쪽으로 기웁니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한가 하면, 처분문서로 분류되는 순간 그 문서를 읽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볼 추정과 맞물리면 결과가 상당히 무거워집니다.
서명이 내 것이면 그다음이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추정이 두 번 겹치는 구조라 다투는 쪽이 처음부터 불리한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사문서는 작성명의인이 그 문서에 서명이나 날인, 무인을 한 사실이 인정되면 문서 전체가 진정하게 성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장 하나가 인정되면 그 위에 적힌 내용까지 통째로 진짜인 것으로 일단 받아들여진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처분문서라는 성격이 겹칩니다. 진정성립이 인정된 처분문서는 그 기재 내용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고, 부정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한 적힌 대로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대법원이 이 법리를 정리해 두었고, 그 판결의 사건번호와 판시 내용은 구속력을 정면으로 다룬 편에 옮겨 두었습니다.
두 추정이 겹치면 다투는 사람의 자리가 좁아집니다. 상대는 각서를 내밀고 서명이 당신 것이라는 사실만 보이면 되고, 남는 일은 전부 이쪽 몫이 됩니다. 아래 표의 오른쪽 칸이 그 몫입니다.
| 다툼에서 나오는 말 | 그 말이 놓이는 자리 | 그래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나 |
|---|---|---|
| 서명은 했지만 내용은 못 봤다 | 서명 사실은 그대로 인정된다 | 내용을 못 봤다는 사정을 이쪽이 따로 증명해야 한다 |
| 도장은 내 것이지만 내가 찍지 않았다 | 날인 사실이 다투어진다 | 추정을 깨뜨릴 사정을 이쪽이 내놓아야 한다 |
| 말로는 다르게 합의했다 | 적힌 문장이 앞선다 | 다른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이쪽이 증명해야 한다 |
| 그때 사정이 급했다 | 사정만으로는 효력이 흔들리지 않는다 | 법이 정한 취소나 무효의 요건에 들어맞아야 한다 |
| 서명 자체가 위조되었다 | 추정의 전제가 무너진다 | 상대가 서명의 진정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 |
마지막 줄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서명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앞의 추정이 걸릴 자리가 없어지고, 그 문서로 무언가를 주장하려는 쪽이 처음부터 다시 증명해야 합니다. 각서를 둘러싼 다툼에서 서명의 진정 여부가 늘 먼저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나머지 네 줄은 모두 같은 모양입니다. 억울한 사정이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사정을 뒷받침할 자료를 붙여야 비로소 판단의 재료가 됩니다. 서명하기 전에는 한 줄로 끝났을 일이 서명 뒤에는 증명의 문제로 바뀝니다.
느리게 오는 대신 되돌리기 어려운 순서로 옵니다
각서가 실제로 힘을 쓰는 시점은 서명한 날이 아니라 소송이 시작된 뒤입니다.
각서를 받은 쪽이 그 종이로 곧장 재산을 붙잡을 수 없다면, 그 종이는 언제 어떻게 쓰이는가. 답은 재판입니다. 각서는 집행의 도구가 아니라 증거의 도구로 쓰이고, 그 자리에서 앞에서 본 두 겹의 추정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이 이런 모양이 됩니다. 아래 단계를 보면 각서가 어느 칸에서 결정적으로 작동하는지가 드러납니다.
- 각서에 서명한다이 시점에는 겉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명한 사람은 대개 이 종이를 잊습니다.
- 약속한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돈을 못 갚거나 약속한 행동을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상대는 이때 각서를 다시 꺼냅니다.
- 상대가 소송이나 지급명령을 낸다각서는 여기서 청구를 뒷받침하는 서증으로 제출됩니다. 각서 자체가 판단을 대신하지는 않지만, 판단의 출발점을 상대 쪽에 놓아 줍니다.
- 법원이 각서의 기재 내용을 읽는다서명이 인정되면 문서가 진정한 것으로 추정되고, 처분문서이므로 적힌 대로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보게 됩니다. 이 칸이 전체에서 가장 무거운 칸입니다.
- 판결이 확정되고 집행문이 붙는다여기서 비로소 집행권원이 생깁니다. 서명한 날로부터 몇 달이나 몇 해가 지난 뒤일 수 있습니다.
- 집행 절차가 시작된다이 단계에 이르면 각서의 내용을 다시 다투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다툴 자리는 앞 단계에 있었습니다.
네 번째 칸이 이 목록의 중심입니다. 앞의 세 칸은 시간이 걸리고 뒤의 두 칸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데, 실질적인 승부는 네 번째에서 끝납니다. 그 칸에서 각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자료로 등장하고, 서명한 사람은 그때 처음으로 자기가 무엇에 서명했는지를 자세히 읽게 됩니다.
이 순서가 각서를 위험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입니다. 위험이 즉시 닥친다면 오히려 사람들은 서명을 망설였을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간이 길기 때문에 가볍게 서명하고, 그 가벼움이 몇 달 뒤 되돌릴 수 없는 자료로 되돌아옵니다.
그렇다고 모든 각서가 그대로 살아남지는 않습니다
적힌 내용이 인정되는 것과 그 내용이 법적으로 효력을 갖는 것은 다른 층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문서를 어떻게 읽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읽은 결과가 곧바로 효력으로 이어지느냐는 또 다른 물음이고, 여기서는 조문이 따로 개입합니다.
대표적인 자리가 회사와 직원 사이입니다. 근로계약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얼마를 물어내라고 미리 정해 두는 약정은 근로기준법이 정면으로 금지하고 있어서, 그런 조항이 들어간 각서는 서명 여부와 무관하게 그 부분이 효력을 잃습니다. 어떤 각서가 여기에 걸리고 어떤 각서는 걸리지 않는지는 직장에서 각서를 요구받은 상황을 다룬 편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내용 자체가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는 서명했다는 사실이 그 약정을 살려 주지 않습니다. 다만 나에게 불리하다는 것과 사회질서에 반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고, 이 둘을 섞으면 다툴 수 없는 것을 다투다 시간을 흘려보내게 됩니다.
정리하면 층이 둘입니다. 문서를 읽는 층에서는 각서가 강하고, 효력을 판단하는 층에서는 조문이 강합니다. 서명 전에 확인할 것은 앞의 층이 아니라 뒤의 층입니다.
각서 자체가 어디에 등록되거나 신고되는 제도가 없습니다. 각서를 관공서에 신고하는 절차도 따로 없어서,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외부에 기록이 남지는 않습니다.
집행이라는 관점에서는 금액이 없으면 집행권원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책임을 인정했다는 사실 자체는 문서에 남기 때문에, 나중에 그 책임의 크기를 다툴 때 출발점이 상대 쪽으로 넘어갑니다.
종이를 돌려받는 것과 약정이 없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본이나 사진이 남아 있을 수 있고, 약정을 정리하려면 그 내용을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가 따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권리마다 소멸시효가 정해져 있어 시간이 지나면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기간과 기산점은 그 권리가 무엇이냐에 따라 갈리므로 각서에 적힌 내용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각서를 쓰면 바로 강제집행을 당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강제집행에는 집행권원과 집행문이 필요한데 각서는 사문서라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상대가 재산을 붙잡으려면 먼저 소송이나 지급명령을 거쳐 집행권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각서가 위험하다고 하나요?
위험한 자리가 집행이 아니라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서명이나 도장이 자기 것이라는 사실이 인정되면 문서 전체가 진정한 것으로 추정되고, 각서는 처분문서로 다루어져 적힌 내용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게 됩니다.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고 서명했으면 어떻게 되나요?
읽지 않았다는 사정은 그 자체로 효력을 없애지 못합니다. 서명 사실이 인정되는 이상 못 읽었다는 사정을 주장하는 쪽이 따로 증명해야 하고, 그것만으로 문서의 내용이 배척되지는 않습니다.
공증을 받은 각서는 다른가요?
공증이라는 말이 사서증서 인증과 공정증서 작성 두 가지를 함께 가리키는데 집행력이 붙는 것은 후자뿐입니다. 공정증서로 만들어져 있고 일정한 금액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며 강제집행 인낙 문언이 적혀 있어야 집행권원이 됩니다.
회사에 써 준 각서도 그대로 지켜야 하나요?
내용에 따라 갈립니다.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 두는 약정은 근로기준법이 금지하고 있어 그 부분은 무효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