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 뭐가 우선인가
근로계약서 마스터·9분·
어느 한쪽이 언제나 이기는 구조가 아닙니다. 근로계약이 취업규칙에 못 미치면 그 부분만 효력을 잃고 취업규칙의 기준이 그 자리를 채우지만, 근로계약이 더 유리하면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바꾸었더라도 그 조건이 그대로 남습니다.
근로기준법 제97조 = 취업규칙에 미달하는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관하여 무효, 무효가 된 부분은 취업규칙에 정한 기준에 따름 ·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00709 =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은 그보다 유리한 기존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지 못함
두 문서가 같은 칸을 채우고 있습니다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조문이 그렇게 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근로계약서에는 임금과 근로시간, 휴일과 휴가가 적힙니다. 그런데 회사에 취업규칙이 있다면 같은 항목이 그쪽에도 적혀 있습니다. 두 문서를 나란히 펴 보면 같은 칸을 두 번 채운 것처럼 보입니다.
겹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8조는 계약을 맺을 때 명시해야 할 근로조건을 정하면서, 그 제2호에서 취업규칙의 필수 기재사항으로 정해진 것들을 그대로 끌어옵니다. 취업규칙에 담기는 항목이 근로계약의 명시 대상으로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취업규칙 자체는 근로자를 상시 열 명 이상 쓰는 사업장이 만들어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 문서이고, 그 의무를 정한 것은 근로기준법 제93조입니다. 조문이 정한 기재 항목에는 업무의 시작과 종료 시각, 휴게시간과 휴일, 임금의 결정과 계산·지급 방법 같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두 문서가 같은 항목을 다르게 정해 두는 일이 실제로 생깁니다. 계약서에는 연차를 열두 일이라 적어 두었는데 취업규칙에는 열다섯 일이라 적혀 있는 식입니다. 이때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가 이 편의 질문입니다.
아래로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취업규칙보다 못한 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의 효력을 잃습니다.
이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는 조문이 있습니다. 무효가 되는 범위와 그 자리를 무엇이 채우는지까지 한 문장 안에 적혀 있습니다.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관하여는 무효로 한다. 이 경우 무효로 된 부분은 취업규칙에 정한 기준에 따른다.
근로기준법 제97조(위반의 효력)
읽을 때 두 대목을 나눠 보십시오. 앞쪽은 무효가 되는 범위를 그 부분으로 한정합니다. 연차 조항이 미달했다면 그 조항만 효력을 잃고 계약 자체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뒤쪽은 비워진 자리를 무엇이 채우는지 정합니다. 무효가 되었다고 그 항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취업규칙의 기준이 들어옵니다. 앞의 예에서 근로자가 받게 되는 연차는 열다섯 일이 됩니다.
이 구조는 법률을 기준선으로 삼는 조문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근로기준법에 못 미치는 근로계약을 다루는 조문도 그 부분만 무효로 하고 법이 정한 기준으로 채웁니다. 기준선이 법률이냐 그 회사의 취업규칙이냐만 다릅니다.
그런데 위로는 남습니다
더 유리한 근로계약은 취업규칙을 바꾸었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앞의 조문만 읽고 취업규칙이 늘 앞선다고 정리하면 절반만 맞습니다. 그 조문이 다루는 것은 취업규칙에 미달하는 근로계약이지, 근로계약이 더 유리한 경우를 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투어지는 상황은 대개 반대쪽입니다. 입사할 때 계약서에 적어 준 조건이 있는데, 회사가 나중에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바꾸는 경우입니다. 회사는 규정이 바뀌었으니 새 기준이 적용된다고 보고, 근로자는 계약서에 적힌 대로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대법원은 2019년 11월 14일 선고한 2018다200709 판결에서 이 문제에 답했습니다.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바꾸면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집단적 동의 절차를 거쳤더라도, 변경된 취업규칙이 그보다 유리한 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니 근로자 개인의 동의가 없다면 계약서에 적힌 유리한 조건이 그대로 남습니다. 절차를 밟아 규정을 바꾸는 일과 이미 개인과 맺어 둔 약속을 바꾸는 일이 다른 층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판단은 개별 근로계약과 취업규칙 사이의 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단체협약과의 관계로 그대로 옮겨 읽지 마십시오. 그쪽은 별도의 조문과 별도의 법리가 놓여 있는 영역입니다.
세 방향을 한 표에 놓으면
기준선이 무엇이고 어느 쪽이 더 나은지에 따라 결과가 갈립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우선순위 다툼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어느 문서가 이기는가를 묻는 대신, 근로계약의 조항이 기준선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를 물으면 답이 바로 나옵니다.
아래 표에서 마지막 줄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취업규칙 자체가 지켜야 할 선을 정한 것이라 근로계약과의 관계가 아니라 취업규칙의 한계를 말합니다.
| 근로계약의 조항이 | 결과 | 근거 |
|---|---|---|
| 법이 정한 기준에 못 미치면 | 그 부분만 무효 · 법정 기준이 채움 | 근로기준법 제15조 |
| 취업규칙이 정한 기준에 못 미치면 | 그 부분만 무효 · 취업규칙의 기준이 채움 | 근로기준법 제97조 |
| 취업규칙보다 유리하면 | 근로계약의 조건이 그대로 남음 | 대법원 2018다200709 |
| 취업규칙이 법령·단체협약과 어긋나면 | 취업규칙 쪽이 그에 어긋날 수 없음 | 근로기준법 제96조 |
취업규칙은 법령이나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 적용되는 단체협약과 어긋나서는 아니 된다.
근로기준법 제96조(단체협약의 준수)
표 아래 붙여 둔 조문이 마지막 줄의 근거입니다. 취업규칙이 기준선 노릇을 하려면 그 자신이 법령과 단체협약의 틀 안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앞의 두 줄이 같은 모양이라는 점도 눈여겨보십시오. 기준선이 법률이든 취업규칙이든 처리 방식은 같고, 무효가 된 자리는 늘 기준선의 내용으로 채워집니다.
셋째 줄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기준선보다 위에 있는 조건은 지워지지 않고 남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어느 문서가 우선한다가 아니라 유리한 쪽이 남는다가 됩니다.
내 경우에 무엇이 적용되는지 확인하는 순서
두 문서를 펴 놓고 항목별로 비교하면 됩니다.
실무에서 이 문제를 확인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다투는 항목 하나를 정하고, 계약서와 취업규칙에서 그 항목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 찾아 나란히 놓는 것입니다. 항목 단위로 봐야 하고 문서 단위로 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두 값이 다르면 어느 쪽이 근로자에게 유리한지를 판단합니다. 계약서 쪽이 유리하면 그 조건이 남고, 취업규칙 쪽이 유리하면 계약서의 그 조항이 효력을 잃고 취업규칙의 값이 들어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확인해야 합니다. 취업규칙의 값 자체가 법이 정한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입니다. 그때는 취업규칙이 기준선 노릇을 하지 못하고 법정 기준이 들어옵니다. 기준선이 두 겹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불리한 방향이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근로자 개인의 동의가 없으면 계약서에 적힌 유리한 조건이 남는다는 것이 2018다200709 판결의 판단입니다.
그 항목은 취업규칙의 내용이 그대로 기준이 됩니다. 다만 취업규칙의 값이 법정 기준에 못 미치면 그 부분은 다시 법이 정한 기준으로 채워집니다.
취업규칙을 만들고 알리는 절차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지 못하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열람을 먼저 요청하는 편이 낫습니다.
세 문답의 공통점은 항목 단위로 따져야 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두 문서를 통째로 견주려 하면 어느 쪽도 답이 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래로 내려간 조항은 채워지고, 위로 올라간 조항은 남습니다. 이 두 문장이 이 편에서 기억할 전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 중 무엇이 우선인가요?
한쪽이 늘 우선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근로계약이 취업규칙에 못 미치면 취업규칙의 기준이 채우고, 더 유리하면 근로계약의 조건이 남습니다.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바꾸면서 동의를 받았다면요?
집단적 동의 절차를 거쳤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기존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는 우선하지 못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계약서의 연차가 취업규칙보다 적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 조항이 그 부분에 관하여 무효가 되고, 취업규칙에 정한 기준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취업규칙이 법보다 불리하면 어떻게 되나요?
취업규칙은 법령과 어긋날 수 없습니다. 법이 정한 기준에 못 미치는 근로조건은 그 부분에 한정해 효력을 잃고 법정 기준으로 채워집니다.
근로계약서에 취업규칙을 첨부해야 하나요?
첨부를 요구하는 조항은 없습니다. 다만 계약서가 특정 항목을 취업규칙에 맡겨 두었다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야 실질적인 합의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