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서 감정적 표현으로 역효과가 난 사례
탄원서 마스터·8분·
역효과의 실질은 지면이 가득 찼는데 옮겨 갈 것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 서면이 하는 일은 살펴볼 사정을 절차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인데, 감정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들여보낼 것 자체가 남지 않습니다.
형을 정할 때 참작하도록 열어 둔 항목은 사람의 환경과 관계, 범행 후의 정황처럼 확인할 수 있는 사정입니다 — 절실함의 크기를 재는 항목은 거기에 없습니다
누가 무엇을 보았는지 없음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없음
살펴볼 사정 남지 않음
사례를 옮기는 대신 이유를 갈랐습니다
어느 사건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 글에 없습니다.
이런 글에는 대개 실제 사건이 붙습니다. 어느 재판에서 감정적으로 쓴 서면 때문에 일이 나빠졌다는 식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확인된 자료로 확보하지 못했으므로 여기에 싣지 않습니다.
지어내는 선택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글은 읽기 좋아지지만 없는 사건을 있었던 것처럼 옮기는 일이 되고, 사실이 아닌 것을 피하자는 이 글의 주제와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대신 다룰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서술이 왜 역효과가 되는지는 사건을 빌리지 않아도 설명됩니다. 이 서면이 무엇을 하러 가는 종이인지에서 그대로 따라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세 갈래로 나뉩니다. 살펴볼 것이 밀려나는 자리, 옆 문장까지 흐려지는 자리, 그리고 이 서면이 놓이는 자리를 벗어나는 자리입니다.
첫째 — 살펴볼 것이 지면에서 밀려납니다
참작한다는 말의 목적어는 감정이 아니라 사정입니다.
형을 정할 때 살펴보도록 열어 둔 항목들은 확인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어떤 환경에 있었는지, 상대와 어떤 관계였는지, 일이 있고 난 뒤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같은 것들입니다. 절실함의 크기를 재는 항목은 거기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 서면이 할 일도 정해집니다. 밖에서만 보이는 사정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곁에서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이 지면에 적혀야 절차 안으로 건너갑니다.
감정은 그 일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힘들었다는 말은 무엇이 어떻게 힘들었는지를 알려 주지 않고,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그렇게 볼 근거를 함께 데려오지 않습니다.
위의 대비가 보여 주는 것이 그 자리입니다. 네 문단을 다 읽어도 옮겨 갈 것이 한 줄도 만들어지지 않는 상태, 그것이 역효과라는 말로 뭉뚱그려 불리는 것의 실체입니다.
둘째 — 과장된 한 마디가 옆 문장까지 흐립니다
폭이 넓은 표현은 그 문장에서 끝나지 않고 이웃 문장의 신뢰까지 끌고 갑니다.
감정이 실린 문장은 대개 폭이 넓어집니다. 한 번도, 누구보다, 평생, 절대 같은 말이 붙으면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문제는 그 문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손이 적은 글이므로, 폭이 넓은 표현 옆에 놓인 구체적인 서술도 같은 자로 재어 읽히게 됩니다.
아래 표의 오른쪽 칸이 그 번짐을 적은 것입니다. 왼쪽 표현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확인할 수 없는 크기로 적혀서 옆자리까지 데려간다는 뜻입니다.
| 적은 표현 | 담으려던 것 | 옆 문장에 생기는 일 |
|---|---|---|
|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 평소의 모습을 말하려고 | 같은 사람이 적은 다른 단정도 폭이 넓어 보인다 |
|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다 | 성실함을 강조하려고 | 견줄 근거가 없어 옆의 구체적인 서술까지 흐려진다 |
|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이다 | 뉘우침을 전하려고 | 앞일을 단정해 지금의 사정과 층이 달라진다 |
| 이 일로 가정이 무너진다 | 사정의 무게를 알리려고 | 확인할 수 없는 결과가 확인되는 사정을 덮는다 |
|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 사람됨을 보이려고 | 사건 자체를 다투는 말로 읽혀 자리가 옮겨 간다 |
다섯 줄 모두 지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폭을 좁히면 그대로 살아남는 문장들입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는 말은 함께 일한 몇 해 동안 그런 일을 본 적이 없다는 말로 좁아지고, 좁아진 만큼 확인할 수 있는 서술이 됩니다.
셋째 — 상대를 향하면 자리를 벗어납니다
이 서면은 사건을 다투는 자리에 놓이지 않습니다.
감정이 길어지면 방향이 바뀌는 대목이 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사정을 적다가, 어느 지점에서 상대가 잘못했다거나 조사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 순간 이 서면이 놓이는 자리가 달라집니다. 무엇이 있었는지를 가리는 근거로는 이 종이가 쓰이지 않고, 형을 정하는 단계에서 살펴볼 사정을 알려 주는 재료로만 놓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리를 벗어난 대목은 반박되는 것이 아니라 쓰이지 않습니다. 지면은 차지하면서 이 서면이 갈 수 있는 곳으로는 함께 가지 못합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이 글은 그런 서술이 어떤 처분으로 이어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확인한 자료가 없고, 확인되지 않은 것을 겁주는 문장으로 만들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정을 적으면 감정은 문장 사이에 저절로 배어 나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감정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사정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는지 적으면 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장면을 보았는지가 적힌 글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되풀이한 글보다 읽는 쪽에 더 많은 것을 남깁니다.
그런 목록을 만들 수 없습니다. 낱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낱말이 확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지의 문제여서, 같은 표현도 범위를 좁혀 쓰면 그대로 살아납니다.
이 서면이 사건을 다투는 자리에 놓이지 않는다는 점만 붙잡으면 됩니다. 상대를 평가하는 문장은 그 자리로 넘어가기 쉬워서, 자기가 본 것으로 되돌아오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래서 고칠 곳은 표현이 아니라 순서입니다
감정을 다듬는 일보다 사정을 먼저 앉히는 일이 앞섭니다.
앞의 세 갈래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게 됩니다. 감정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 앉아 사정이 들어올 자리를 없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치는 방법도 표현을 순화하는 쪽이 아닙니다. 직접 본 일을 먼저 앉히고 남은 자리에 마음을 적으면, 같은 문장을 그대로 써도 글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순서를 바꾸면 저절로 좁아지는 것도 있습니다. 본 일을 먼저 적다 보면 언제였는지 어디였는지가 따라 붙고, 그 옆에서는 폭이 넓은 표현을 쓰기가 오히려 어색해집니다.
구체적인 문장을 다듬는 방법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쓰는 법을 다룬 편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 편이 맡은 것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이유까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감정적으로 쓴 탄원서는 역효과인가요?
감정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역효과라 불리는 것의 실질은 감정이 지면을 채우는 동안 살펴볼 사정이 밀려나 옮겨 갈 것이 남지 않는 상태입니다.
실제로 역효과가 났던 사례를 알 수 있나요?
확인된 사례를 확보하지 못해 이 글에는 싣지 않았습니다. 지어낸 사건을 사례처럼 옮기는 것이 오히려 이 글의 주제와 어긋나므로, 사례 대신 이유를 갈라 두었습니다.
과장된 표현 하나쯤은 괜찮지 않나요?
그 문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폭이 넓은 표현은 같은 사람이 적은 옆 문장까지 같은 자로 재어 읽히게 만들어, 구체적으로 적어 둔 대목의 값을 함께 깎습니다.
눈물 자국이나 손글씨가 진심을 보여 주나요?
자필이라야 효력이 있다거나 더 무겁게 읽힌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형식으로 진심을 보이려는 시도보다 무엇을 보았는지 적는 편이 남는 것이 많습니다.
상대를 비난하는 내용을 적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 서면은 사건 자체를 다투는 자리에 놓이지 않습니다. 그 방향으로 넘어간 대목은 지면만 차지하고 이 서면이 갈 수 있는 곳까지 함께 가지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