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서 선처를 구하는 표현
탄원서 마스터·8분·
부탁의 문장은 한 줄로 족하고, 읽을 것이 있는 쪽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적은 사정의 문장입니다. 참작은 참작할 사정이 보일 때 일어나는 일이므로, 같은 부탁을 여러 번 되풀이한 글에는 살펴볼 재료가 남지 않습니다.
형법 제51조가 형을 정할 때 참작할 사항을 열어 두고 있으며 범행 후의 정황도 그 가운데 하나 · 어떤 표현이 결과를 움직인다고 볼 자료는 확인되지 않음 · 양형인자로 다뤄지는 것은 처벌불원과 진지한 반성이지 탄원서 자체가 아님
부디 한 번만 선처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선처를 호소합니다.
사고 이후 이 사람은 매주 토요일마다 공장에 나와 남은 작업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함께 있었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이니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12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아침 조회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조회를 함께 진행해 온 사람으로서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하니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이 사람이 자리를 비운 뒤로 어머니의 통원 일정을 누이가 혼자 맡고 있습니다. 저는 같은 동에 살며 그 일정에 몇 차례 함께 다녔습니다.
선처를 구한다는 말은 무엇을 요구하는 말인가
이 글이 놓이는 자리는 죄가 있는지를 가리는 재료가 아니라 형을 정하는 단계에서 참작되는 재료입니다.
선처라는 낱말은 널리 쓰이지만 그 안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는 잘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탄원서가 선처를 구한다는 말을 여러 방식으로 되풀이하다가 끝납니다.
형을 정할 때 참작할 사항은 형법 제51조가 열어 두고 있고, 범행 후의 정황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문에 탄원서라는 낱말이 있는 것은 아니며, 탄원서에 담긴 사정이 그런 항목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까지가 확인되는 범위입니다.
이 구조를 놓고 보면 부탁의 자리가 어디까지인지가 분명해집니다. 참작해 달라는 요청은 이미 이 문서를 낸 행위 자체에 들어 있습니다. 글이 해야 할 일은 요청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참작할 것을 내놓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처를 구하는 표현이라는 물음의 답은 문구 목록이 아닙니다. 부탁은 짧게 한 번 하고, 나머지 분량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쓰는 것 — 이것이 이 문서에서 선처를 구하는 방식입니다.
부탁의 문장과 사정의 문장은 하는 일이 다릅니다
앞의 것은 요청을 전하고 뒤의 것은 판단할 재료를 남깁니다.
두 종류의 문장은 겉보기에 비슷한 무게로 놓이지만 읽는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다릅니다. 부탁의 문장은 읽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고, 사정의 문장은 읽은 뒤에 무언가가 남습니다.
남는 것이 있어야 참작이라는 일이 성립합니다. 참작은 살펴본다는 뜻이고, 살펴볼 것이 문장 안에 없으면 아무리 여러 번 요청해도 살펴볼 대상이 생기지 않습니다.
구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문장에서 누가 언제 무엇을 보았는지를 뽑아낼 수 있으면 사정의 문장이고, 뽑아낼 것이 없으면 부탁의 문장입니다.
아래 표는 자주 쓰이는 문장들을 그 기준으로 갈라 본 것입니다. 왼쪽 문장이 나쁜 것이 아니라, 왼쪽만으로 채워진 글에는 읽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 글에 실린 문장 | 그 문장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것 | 종류 |
|---|---|---|
| 선처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요청이 있다는 사실 | 부탁의 문장 |
| 착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 쓴 사람의 평가 | 부탁에 가까움 |
| 3년간 같은 조에서 결근이 없었습니다 | 기간과 확인 가능한 행동 | 사정의 문장 |
| 사고 뒤 매주 현장에 나와 정리를 돕습니다 | 시점과 지금 하고 있는 일 | 사정의 문장 |
|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 쓴 사람의 예측 | 확인할 수 없음 |
둘째 줄과 셋째 줄의 차이가 이 표의 요점입니다. 성실하다는 평가와 결근이 없었다는 사실은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뒤쪽에만 확인할 수 있는 값이 들어 있습니다.
다섯째 줄은 약속에 해당하는 문장인데, 앞으로의 일을 쓴 사람이 보증할 수는 없습니다. 재발 방지에 관한 서술을 어떻게 다룰지는 따로 정리한 편이 있습니다.
같은 부탁을 반복하면 글이 짧아집니다
분량은 늘어나는데 읽을 것은 줄어드는 것이 이 글에서 가장 흔한 실패입니다.
부탁하는 문장은 쓰기 쉽습니다. 특별한 재료가 필요 없고, 마음이 급할수록 저절로 손에 잡힙니다. 그래서 한 편의 절반 이상이 표현만 바꾼 같은 부탁으로 채워지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실질적인 분량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열 문장을 썼어도 그 안에 든 정보가 하나뿐이면, 읽는 쪽이 얻는 것은 한 문장을 읽었을 때와 같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가 붙습니다. 부탁만 늘어선 글은 어느 사건에 갖다 놓아도 말이 되는 글이 됩니다. 어느 사건에나 맞는 글은 이 사건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 쓴 뒤에 한 번 세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부탁하는 문장을 전부 지웠을 때 남는 분량이 이 글이 실제로 가진 내용입니다. 남는 것이 몇 줄뿐이라면 아직 쓰지 않은 것입니다.
부탁의 문장을 지워 보고 남는 것을 세어 봅니다
옮겨 적으면 곤란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어떤 표현을 넣으면 효과가 있다는 안내는 근거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에는 이 문장을 넣으라는 식의 목록이 돌아다닙니다. 그런 안내가 근거로 삼는 것은 대개 양형에서 다뤄지는 항목의 이름들인데, 그 이름을 문장에 옮겨 적는 것과 그 항목이 실제로 있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양형에서 다뤄지는 것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지, 당사자가 진지하게 뉘우치고 있는지 같은 사정입니다. 탄원서는 그런 사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자료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자체가 항목으로 셈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남이 뉘우치고 있다고 제3자가 적어 넣는 문장은 조심해서 다뤄야 합니다. 그것은 쓴 사람이 확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확인할 수 없는 단정이 늘어날수록 글 전체가 가벼워집니다.
대신 쓸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그런 태도를 짐작하게 하는 행동을 직접 보았다면 그 행동을 적으면 됩니다. 무엇을 느꼈다고 적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적는 편이 언제나 남는 것이 많습니다.
쓴 사람이 확인한 범위 안에서만 적으십시오. 마음속을 대신 말해 주는 문장보다, 그렇게 보이게 한 행동을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 적는 편이 낫습니다.
쓰지 말라고 정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어느 글에나 똑같이 들어가는 문장은 이 사건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므로, 그 자리를 사정의 문장에 내주는 편이 낫습니다.
표현과 결과를 잇는 자료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문장에 살펴볼 재료가 남고 어떤 문장에 남지 않는가까지입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문서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적힌 의사가 그 문장의 성질을 정합니다.
탄원서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피해를 입은 쪽이 쓰는 글에서 그렇습니다. 이 문장은 다른 문장들과 성질이 다를 수 있어 따로 짚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형사 절차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는 별도의 통로가 있고, 그 의사표시에는 정해진 효과와 되돌릴 수 없다는 성질이 따라붙습니다. 탄원서라는 이름으로 낸 서면이라도 그 안에 그 의사가 분명히 드러나 있으면 달리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그렇게 읽히는지 그 기준을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여기서는 그 문장이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까지만 말씀드립니다. 처벌불원과 탄원서가 어떻게 갈리는지는 따로 정리한 편에 자세히 두었습니다.
피해를 입은 쪽이 아니라 제3자가 쓰는 글이라면 이 문제는 성격이 다릅니다. 처벌에 관한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 문장을 대신 적어 주기보다 자기가 본 사정을 적는 편이 이 문서의 자리에 맞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탄원서에 선처를 부탁한다는 말을 몇 번 써야 하나요?
횟수를 정한 기준이 없습니다. 다만 같은 부탁을 되풀이해도 읽는 쪽이 얻는 것은 늘지 않으므로, 한 번 분명히 적고 나머지 분량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쓰는 편이 낫습니다.
탄원서를 내면 형이 가벼워지나요?
그렇게 볼 근거가 없습니다. 이 문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형을 정할 때 참작되는 자료가 된다는 데까지이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이 글이 말할 수 있는 범위 밖입니다.
어떤 문장을 넣으면 효과가 있다는 목록을 봤습니다.
특정 표현이 결과를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한 자료가 없습니다. 그런 목록보다 자기가 직접 본 행동을 적은 한 문단이 남기는 것이 많습니다.
당사자가 반성하고 있다고 제가 써도 되나요?
직접 본 것을 넘어서는 단정은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게 보이게 한 행동을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 적으면 같은 이야기를 확인 가능한 형태로 전할 수 있습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적어도 되나요?
그 문장은 다른 문장들과 성질이 다를 수 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쪽이 쓰는 경우라면 그 의사표시가 갖는 효과를 먼저 확인해 보시고, 제3자라면 자기가 본 사정을 적는 편이 이 문서의 자리에 맞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