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서 가장 자주 빠지는 조항
계약서 마스터·9분·
가장 자주 비는 자리는 어느 법원에서 다툴지를 정해 두는 한 줄입니다. 계약 자체는 말로도 성립하지만 제1심 관할법원을 합의로 정하려면 민사소송법 제29조 제2항이 서면을 요구하므로, 적어 두지 않으면 그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민사소송법 제29조 제1항이 합의로 제1심 관할법원을 정할 수 있게 하고 제2항이 그 합의를 서면으로 하도록 정합니다
잘 쓴 계약서와 다툴 때 쓸모 있는 계약서는 다릅니다
평소에 읽히는 조항과 사고가 났을 때 찾게 되는 조항이 서로 다른 자리에 있습니다.
계약서를 검토할 때 사람의 눈이 오래 머무는 곳은 정해져 있습니다. 금액이 맞는지, 기간이 맞는지,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입니다. 이 세 가지가 맞으면 다 봤다고 여기고 서명으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나중에 문제가 생겨 계약서를 다시 펼칠 때 찾는 문장은 그 세 가지가 아닙니다. 상대가 약속한 것을 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그만두겠다고 하면 이미 받은 돈은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가 끝내 맞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입니다.
이 어긋남이 생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계약서를 쓸 때는 일이 잘될 것을 전제로 읽고, 계약서를 찾을 때는 일이 잘못된 상태에서 읽기 때문입니다. 잘될 때 필요한 문장과 잘못됐을 때 필요한 문장이 다릅니다.
그래서 빠지는 조항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계약을 맺는 자리에서는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못 지키면 어떻게 할지, 소송까지 가면 어디서 할지를 계약 성사 직전에 꺼내기가 서로 어색합니다.
아래에서는 그렇게 밀려나기 쉬운 자리를 하나씩 봅니다. 다만 앞에 하나를 짚어 둡니다. 계약서에 반드시 넣어야 할 항목을 법이 목록으로 정해 둔 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법정 필수 항목이 아니라, 빠졌을 때 실제로 다투게 되는 자리입니다.
이 한 줄만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 관할 합의
계약 자체는 구두로도 성립하는데, 어디서 다툴지를 정하는 합의는 법이 서면을 요구합니다.
가장 먼저 볼 자리가 여기인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조항들은 빠져 있어도 일반 원칙을 따라가면 어떻게든 답이 나오지만, 이 조항은 성격이 아예 다르기 때문입니다.
민사소송법 제29조 제1항은 당사자가 합의로 제1심 관할법원을 정할 수 있도록 열어 둡니다. 그리고 제2항이 조건을 붙입니다. 그 합의는 일정한 법률관계로 말미암은 소에 관하여 서면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비가 묘합니다. 계약 전체는 방식의 자유가 원칙이라 말로 맺어도 성립하는데, 그 계약 안의 한 줄만은 적혀 있지 않으면 합의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통화하면서 다툼이 생기면 서울에서 하자고 서로 말을 맞춰 두었더라도 그 대화만으로는 관할이 정해지지 않습니다.
실제 계약에서는 이 합의를 계약서의 한 조항으로 넣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따로 서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 끝부분에 문장 하나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조항은 넣기가 어려워서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 빠집니다.
빠졌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서로 가까이 있다면 별일이 아니지만, 상대가 멀리 있는 경우에는 오가는 시간과 비용이 그대로 부담이 됩니다. 정작 그 사정을 겪게 되는 시점에는 이미 합의를 새로 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관할 합의만은 민사소송법 제29조 제2항이 서면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계약 자체가 구두로 성립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상대와 이야기가 되는 시점이라면 그 부분만 따로 적어 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관계가 틀어진 뒤에는 합의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이 조항이 없다고 해서 소를 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합의로 정한 것이 없으니 일반 원칙에 따라 관할이 정해질 뿐입니다.
그러니 이 조항의 값어치는 다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다투게 되느냐를 미리 정해 둔다는 데 있습니다. 미리 정해 두는 데 드는 비용은 문장 하나이고, 정해 두지 않았을 때의 비용은 상황에 따라 훨씬 커집니다.
해제와 해지를 뒤섞어 쓴 문장
낱말을 잘못 고른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되돌릴 것인지를 정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계약서에서 두 번째로 자주 어긋나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계약을 끝내는 상황을 적어 두기는 했는데, 끝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가 앞뒤로 맞지 않는 경우입니다.
두 낱말은 뜻이 다릅니다. 해제는 계약의 효력을 거슬러 올라가 없앱니다. 처음부터 그런 계약이 없었던 것처럼 되고, 그래서 민법 제548조는 해제한 때에 각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원상회복의 의무를 지도록 정합니다. 받은 것이 있으면 돌려주는 정산이 따라옵니다.
해지는 앞을 향합니다. 민법 제550조는 해지한 때에 계약이 장래에 대하여 효력을 잃는다고 정합니다. 그때까지 이루어진 부분은 그대로 두고 그 뒤로만 관계를 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제공한 서비스나 이미 지난 기간에 대한 대가는 정산 대상이 아닙니다.
실무에서는 한 번으로 끝나는 거래에 해제를, 기간을 두고 이어지는 거래에 해지를 주로 씁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와 계속 이어지는 관계는 되돌릴 수 있는 범위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긋남은 이렇게 생깁니다. 조항에는 해지라고 적어 두고서 그 아래에 이미 지급한 대금을 전액 반환한다고 적는 경우입니다. 앞 문장은 앞으로만 효력을 끊겠다는 것이고 뒤 문장은 지난 것까지 되돌리겠다는 것이라 서로 맞지 않습니다. 다툼이 생기면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의 해석이 정반대로 갈립니다.
| 보는 것 | 해제 | 해지 |
|---|---|---|
| 효력이 미치는 방향 | 거슬러 올라갑니다 | 앞으로만 미칩니다 |
| 이미 이행한 부분 | 원상회복의 대상이 됩니다 | 그대로 둡니다 |
| 관련 조문 | 민법 제548조 | 민법 제550조 |
| 주로 쓰이는 거래 | 한 번으로 끝나는 거래 | 기간을 두고 이어지는 거래 |
| 조항을 쓸 때 정해야 할 것 | 무엇을 어떻게 되돌릴지 | 언제부터 끊고 그때까지는 어떻게 정산할지 |
표의 마지막 줄이 이 절의 핵심입니다. 어느 낱말을 쓸지 고르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이 계약이 끝났을 때 무엇을 되돌릴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해지면 낱말은 따라옵니다.
덧붙이면 어떤 사유가 있을 때 계약을 끝낼 수 있는지를 이 글에서는 조문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조문을 끌어오지 않기 위해서이며, 계약서에는 어떤 상황에서 끝낼 수 있는지를 당사자가 직접 적어 두는 편이 다툴 여지를 줄입니다.
위약금이라고 적으면 그다음이 정해집니다
한 낱말을 적어 두는 것만으로 그 돈의 성격이 어느 쪽으로 기웁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얼마를 물기로 하는 조항도 자주 빠지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는 빠지는 것 못지않게 적어 두고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법 제398조는 당사자가 채무불이행에 관한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 둘 수 있도록 하면서, 위약금의 약정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계약서에 위약금이라고만 적어 두면 그 돈은 일단 손해를 미리 정해 둔 것으로 다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같은 조문은 예정한 금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숫자를 적어 두었다고 해서 그 숫자가 그대로 관철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실무에서 조심할 것은 하나입니다. 위약금이라는 낱말을 적어 두면 그 뒤의 취급이 어느 쪽으로 정해지므로, 다른 성격의 돈을 의도했다면 그 사정을 따로 주장하고 보여야 합니다. 계약서 문구를 정할 때 이 점을 알고 적는 것과 모르고 적는 것은 뒤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이 조항이 아예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손해가 생겼다면 그 손해가 얼마인지를 주장하는 쪽이 하나하나 보여야 합니다. 미리 정해 두는 조항의 실익은 바로 그 수고를 줄이는 데 있습니다.
그 밖에 자주 비어 있는 자리들
법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빠지면 반드시 다투게 되어서 적어 두는 것들입니다.
앞의 세 자리만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실제 분쟁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항목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법이 정한 필수 항목이 아니라 실무가 겪어서 알게 된 자리라는 점을 다시 짚어 둡니다.
아래 표는 각 항목이 빠졌을 때 어떤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되는지를 함께 적었습니다. 항목의 이름보다 오른쪽 칸을 읽으십시오. 우리 계약에서 그 질문이 나올 법한지가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 자주 비는 자리 | 빠지면 답할 수 없는 질문 | 적을 때 정해 둘 것 |
|---|---|---|
| 대금을 언제 어떻게 주는가 | 언제까지가 지연인가 | 지급 시기와 방법, 늦었을 때의 처리 |
| 일이 끝났다고 누가 정하는가 | 지금이 완료된 상태인가 | 확인하는 사람과 확인하는 방법 |
| 연락은 어디로 하는가 | 통지가 도달한 것인가 | 주소와 담당자, 바뀌었을 때 알릴 의무 |
| 내용을 바꾸려면 어떻게 하는가 | 이 대화가 변경 합의인가 | 변경은 문서로 한다는 문장 |
| 알게 된 정보를 어디까지 쓰는가 | 이것을 밖에 말해도 되는가 | 대상과 기간, 끝난 뒤의 처리 |
가장 자주 사고가 나는 것은 넷째 줄입니다. 진행 중에 오간 대화로 조건이 바뀐 것인지 아닌지가 흐려지면, 나중에 어느 쪽 조건이 유효한지를 놓고 처음부터 다시 다투게 됩니다. 변경은 문서로 한다는 한 문장이 이 다툼을 크게 줄입니다.
셋째 줄도 만만치 않습니다. 담당자가 바뀌었는데 알리지 않아 통지가 닿지 않은 경우, 보낸 쪽과 받은 쪽의 이야기가 정면으로 갈립니다. 연락처를 적어 두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통지의 기준을 세워 두는 일입니다.
서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훑는 순서
처음부터 다시 읽지 말고, 잘못됐을 때를 가정하고 다섯 가지만 물어보십시오.
계약서를 통째로 다시 읽는 것은 지치는 일이고 효과도 크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번 읽은 문서라 눈이 미끄러집니다. 대신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이 문서 안에 있는지만 확인하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아래 순서는 일이 잘못됐다고 가정하고 던지는 질문입니다. 답을 찾지 못하는 질문이 나오면 그 자리가 비어 있는 것입니다.
- 상대가 약속한 것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찾는다무엇을 요구할 수 있고 얼마를 물릴 수 있는지가 적혀 있는지 봅니다. 없다면 손해를 하나하나 보여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 도중에 그만두게 되면 이미 오간 돈이 어떻게 되는지 찾는다끝내는 조항이 앞을 향하는지 뒤를 향하는지, 그리고 정산 문장이 그것과 맞는지 함께 봅니다.
- 이야기가 끝내 맞지 않으면 어디로 가는지 찾는다관할에 관한 한 줄이 문서에 적혀 있는지 확인합니다. 말로 정해 둔 것은 여기서 쓰이지 않습니다.
- 연락과 통지를 어디로 하는지 찾는다주소와 담당자가 적혀 있고 바뀌었을 때 알리도록 되어 있는지 봅니다.
- 조건을 바꿀 때 어떻게 하는지 찾는다변경을 문서로 한다는 문장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없으면 진행 중의 대화가 전부 변경 주장의 재료가 됩니다.
다섯 질문 가운데 셋째가 가장 자주 비어 있고, 비어 있다는 사실조차 눈에 띄지 않습니다. 계약서 끝부분의 짧은 조항이라 읽을 때 그냥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빈 자리를 발견했다면 지금이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시점입니다. 서명한 뒤에 채우려면 상대의 동의가 다시 필요하고, 그 무렵이면 상대에게도 채우지 않을 이유가 생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할 합의는 왜 서면으로만 해야 하나요?
민사소송법 제29조 제2항이 그 합의를 일정한 법률관계로 말미암은 소에 관하여 서면으로 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약 자체는 구두로도 성립하지만 이 합의만은 적혀 있어야 합니다.
관할 조항이 없으면 소송을 못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합의로 정해 둔 것이 없으니 일반 원칙에 따라 관할이 정해질 뿐입니다. 이 조항의 값어치는 어디서 다투게 될지를 미리 정해 둔다는 데 있습니다.
해제와 해지를 구분해서 써야 하나요?
낱말을 고르는 문제라기보다 계약이 끝났을 때 무엇을 되돌릴 것인지를 정하는 문제입니다. 해제는 민법 제548조에 따라 원상회복이 따르고, 해지는 제550조에 따라 장래에 대하여만 효력을 잃습니다.
위약금을 적어 두면 그 금액을 그대로 받나요?
그렇게 보기 어렵습니다. 민법 제398조는 위약금의 약정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하면서,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하면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계약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항목이 정해져 있나요?
계약서 일반에 대해 법이 항목의 목록을 정해 둔 것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자리들은 법정 필수 항목이 아니라 빠졌을 때 실제로 다투게 되는 자리입니다.
이미 서명한 계약서에 빠진 조항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상대와 이야기가 되는 동안에 그 부분만 따로 문서로 남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관계가 틀어진 뒤에는 합의 자체가 어려워지므로 발견한 시점에 처리하는 편이 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