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서 같은 내용을 여러 명이 베껴 낸 사례
탄원서 마스터·8분·
여럿이 쓰는 값은 사람 수가 아니라 자리의 개수에 있습니다. 같은 글을 옮겨 적어 열 통을 만들면 자리는 하나로 줄어듭니다. 한 사람의 말이 열 번 되풀이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탄원인의 자격이나 통수를 제한하는 조항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것은 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적혀 있는가입니다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입니다
누가 낼 수 있는지를 제한한 조항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먼저 오해 하나를 걷어 내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내는 것 자체를 막는 규정을 이 글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도 동료도 이웃도 낼 수 있고, 몇 사람이 내는지를 세어 제한하는 조항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이 다루는 것은 낼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그 안에 무엇이 적혀 있는가를 봅니다. 자격을 다루는 이야기는 낼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정리한 편에 따로 있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격의 문제라면 사람을 줄이는 것이 답이 되지만, 내용의 문제라면 사람을 줄여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손볼 곳은 통마다 무엇이 적혀 있는가 한 자리뿐입니다. 아래에서 그 이유를 셋으로 나누어 봅니다.
같은 글로 만든 열 통
- 한 사람이 쓴 초안을 옮겨 이름과 관계만 바꾼다
- 통마다 같은 결론과 같은 마무리 문장이 반복된다
- 자기가 본 적 없는 일을 남의 문장에서 가져와 적는다
- 첫 문단의 소개가 문장까지 똑같이 겹친다
- 무엇을 보았는지는 없고 부탁만 되풀이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온 열 통
- 각자 자기가 겪은 한 장면에서 글을 시작한다
- 직장에서 본 것과 이웃에서 본 것이 따로 적힌다
- 확인하지 못한 일은 적지 않고 그대로 비워 둔다
- 어떤 자격으로 그 사람을 아는지가 통마다 다르다
- 같은 사람을 두고 서로 다른 시기가 채워진다
여럿이 쓰는 유일한 값은 자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을 서로 다른 곳에서 본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 그것이 여러 통의 값입니다.
한 사람이 자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눈으로 본 자리가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곁에 여러 사람이 있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직장에서 본 모습과 동네에서 본 모습은 다릅니다. 십 년 전을 아는 사람과 최근 반년을 아는 사람도 다릅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본 것을 적으면 한 사람이 여러 각도에서 그려집니다.
이것이 여러 사람이 함께 내는 일의 실질입니다. 사람 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난 것이고, 늘어난 자리만큼 지면에 담기는 사정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쓴 글을 옮겨 적는 순간 이 값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종이는 열 장이 되어도 그 안에 담긴 자리는 처음 쓴 사람의 것 하나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같은 글이 되는 길은 대개 이렇게 열립니다
베끼겠다고 마음먹은 자리보다, 도와주려는 자리에서 더 자주 생깁니다.
여럿이 함께 내기로 하면 대개 한 사람이 먼저 씁니다. 시간이 없거나 글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그 글을 참고하겠다고 받아 갑니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생깁니다. 참고할 글이 이미 잘 정리되어 있으면 고칠 자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이름과 관계만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게 됩니다.
아래 순서는 그 흐름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어느 단계에서 멈추어도 통마다 다른 글이 남습니다.
- 한 사람이 먼저 초안을 쓴다가장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맡는 경우가 많고, 이 단계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 나머지 사람이 참고하려고 그 글을 받는다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라 본보기를 구하는 것이고, 이때까지도 되돌릴 수 있습니다.
- 고칠 자리를 찾지 못해 이름만 바꾼다이미 매끄럽게 정리된 글에서 손댈 곳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여기가 갈림길입니다.
- 자기가 보지 않은 대목이 그대로 남는다초안을 쓴 사람이 본 장면이 자기 이름 아래로 옮겨 오고, 나중에 그 대목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 통마다 같은 결론이 되풀이된다마무리 문장까지 겹치면 열 통을 이어 읽어도 새로 더해지는 사정이 없습니다.
다섯 단계 가운데 셋째에서 갈립니다. 참고할 글을 받은 뒤에 자기가 본 장면부터 다시 시작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달라집니다.
무엇을 나눠 쓸 것인지 정하는 방법은 여러 명이 함께 쓸 때를 다룬 편에 따로 있습니다. 이 편은 왜 나눠야 하는지까지를 맡습니다.
열 통을 이어 읽었을 때 무엇이 남는가
같은 글이면 종이 수가 늘어도 남는 것은 늘지 않습니다.
아래 표는 같은 글로 만든 열 통과 각자 쓴 열 통을 나란히 놓은 것입니다. 왼쪽 칸이 이 편이 말하는 역효과의 실질입니다.
역효과라는 말을 쓰지만 무엇이 더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있어야 할 것이 늘어나지 않은 채 종이만 늘어난 상태이고, 그것이 이 글이 확인할 수 있는 범위의 전부입니다.
| 지면에서 세어 볼 것 | 같은 글로 만든 열 통 | 각자 쓴 열 통 |
|---|---|---|
| 적힌 장면의 수 | 한 가지에 머무른다 | 열 가지까지 늘어난다 |
| 확인할 수 있는 시기 | 한 시기에 몰린다 | 서로 다른 시기가 채워진다 |
| 관계의 종류 | 문장이 같아 갈리지 않는다 | 직장과 이웃과 가족으로 갈린다 |
| 적은 사람이 답할 수 있는 것 | 자기가 보지 않은 대목이 섞여 있다 | 자기가 본 것만 남아 있다 |
| 다 읽고 났을 때 남는 것 | 한 사람의 말이 열 번 되풀이된 것에 가깝다 | 한 사람을 열 자리에서 본 기록이 된다 |
다섯 줄 가운데 마지막 줄이 이 편의 결론입니다. 같은 글은 통수를 늘릴 뿐 자리를 늘리지 못합니다.
이 표는 몇 통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통수와 결과를 잇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고, 여기서 세는 것은 지면에 남는 사정의 가짓수뿐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줄여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겹치는 문장입니다.
앞의 이야기를 읽고 인원을 줄이는 쪽으로 가면 방향이 반대입니다. 여러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는 그대로 값이고, 사라진 것은 그 값을 지면에 옮기지 못한 부분입니다.
각자 쓸 것이 마땅치 않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무엇을 알고 있는지부터 물어보면 됩니다. 어떤 자격으로 그 사람을 아는지, 언제부터 알았는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는지 정도면 한 통을 채우기에 모자라지 않습니다.
글솜씨는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돈된 문장보다 자기만 아는 장면 하나가 지면에 더 많은 것을 남깁니다. 다듬어진 열 통보다 서투른 열 통이 나은 경우가 그래서 생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여럿이 내는 일의 값은 각자 다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나오고, 지켜야 할 것은 그 사실이 문장에 그대로 남게 하는 것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여러 명이 같은 내용으로 탄원서를 내면 안 되나요?
막는 조항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같은 글이면 종이 수는 늘어도 지면에 담기는 사정은 늘지 않아, 여럿이 함께 내는 일의 값이 거의 남지 않게 됩니다.
몇 통 이상이면 베낀 것이 드러나나요?
그런 기준을 확인한 자료가 없습니다. 드러나느냐 아니냐를 이 글이 말할 수는 없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같은 글에는 새로 더해지는 사정이 없다는 사실까지입니다.
탄원서는 많이 낼수록 좋은가요?
통수와 결과를 잇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세어 볼 만한 것은 통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자리에서 본 사정이 몇 가지나 지면에 남았는가입니다.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요?
잘 쓸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자격으로 아는 사이인지, 언제부터 알았는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인지 세 가지만 적어도 한 통이 됩니다.
한 사람이 대표로 쓰고 여럿이 서명하면 되나요?
여러 사람이 이름을 함께 올리는 문서의 모양은 연명부를 다룬 편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경우에도 담기는 자리는 하나이므로, 각자 본 것이 다르다면 따로 적는 편이 남는 것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