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서 분량과 형식 기준
탄원서 마스터·12분·
분량과 형식을 정해 둔 기준이 없습니다. 몇 장 안으로 쓰라거나 어떤 모양이어야 한다고 적어 둔 조항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실제 기준은 다른 데 있습니다. 이 서면은 읽혀야 참작되는 자료여서, 종이의 수가 아니라 끝까지 읽히는가가 길이를 대신 정합니다.
탄원서의 분량 기준을 정한 규정은 확인된 범위에서 나오지 않았고, 글꼴이나 용지의 규격을 정한 조항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이 서면이 형을 정하는 자리에서 참작되는 자료라는 것이 길이를 가늠하는 유일한 단서입니다
길이를 정하려고 흔히 붙잡는 것
- 검색에 나온 몇 장이라는 숫자를 그대로 따른다
- 빈 곳이 남으면 성의가 없어 보일까 봐 문장을 늘려 채운다
- 같은 말을 표현만 바꿔 되풀이하며 길이를 만든다
- 짧게 쓰라는 말을 듣고 전하려던 사정까지 덜어 낸다
- 글자와 줄 간격을 줄여 한 장에 억지로 밀어 넣는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물음
- 낼 곳이 정해 둔 것이 있는지부터 물어봅니다
- 빈 곳은 남겨 두고 아직 적지 않은 사정이 있는지 봅니다
-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자리를 찾아 하나만 남깁니다
- 덜어 낼 것은 사정이 아니라 사정과 무관한 문장입니다
- 읽는 눈이 걸리지 않을 만큼은 넉넉하게 둡니다
기준을 찾으러 가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몇 장까지라고 못 박아 둔 조항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물음을 들고 오는 분들의 사정은 대개 비슷합니다. 쓰기는 써야 하는데 어느 정도로 써야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지 감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이의 수라도 정해져 있으면 목표가 생기니 우선 그것부터 찾게 됩니다.
그런데 찾아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서면의 길이를 정해 둔 규정이 확인되지 않고, 종이의 크기나 글자의 모양을 지시한 조항도 나오지 않습니다. 검색을 계속하다 보면 숫자가 적힌 안내를 만나기도 하는데, 그 숫자들은 서로 다르고 어디서 나왔는지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숫자가 서로 어긋난다는 사실 자체가 답의 일부입니다. 정해진 것이 있다면 안내마다 같은 숫자가 나왔을 것입니다. 다르게 나온다는 것은 각자 겪은 실무를 옮겨 적었다는 뜻이고, 그것을 기준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기준을 찾는 일을 여기서 멈추고 다른 물음으로 갈아타는 편이 빠릅니다. 정해 둔 크기가 없다면 길이를 정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입니다. 이 글은 그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봅니다.
정해 둘 수가 없었던 쪽에 가깝습니다
규정을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만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분량을 정해 두는 서류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받는 쪽이 같은 것을 여럿 모아 견주어 보아야 하고, 그러려면 모양이 고르게 맞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원 서류나 신고 서식이 몇 장 이내라고 적어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탄원서는 그런 방식으로 모이는 종이가 아닙니다. 어떤 사건에서는 한 사람이 짧게 한 장을 내고, 어떤 사건에서는 여러 사람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씁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고 쓰는 사람이 아는 범위도 제각각인데, 그 모두에 같은 길이를 씌울 방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서면에는 제출을 받아 정리하는 절차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정해진 창구가 없는 문서에 길이 규정만 따로 붙어 있는 편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형식을 정한 조항이 없는 것과 분량을 정한 조항이 없는 것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하나의 사정입니다.
여기서 방향이 갈립니다.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말을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뜻으로 읽으면 이 글이 필요 없어집니다. 반대로 그 빈자리를 무엇이 채우고 있는지를 보면, 오히려 길이를 정하는 일이 쉬워집니다.
종이의 수를 대신하는 물음
이 서면은 읽혀야 제 일을 하는 종이입니다. 그 성질에서 기준이 나옵니다.
탄원서가 놓이는 자리는 사건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형을 얼마나 무겁게 할지를 정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 종이는 살펴볼 사정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되는데, 보여 주는 일은 읽는 사람의 눈이 끝까지 따라와야 일어납니다.
그러니 길이의 상한은 규정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인내에서 옵니다. 그리고 하한은 다른 데서 옵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아는 사람인지가 드러나지 않은 채로 끝나 버리면, 아무리 짧게 잘 다듬어도 살펴볼 사정이 종이에 남지 않습니다.
두 방향을 합치면 물음 하나가 남습니다. 지금 이 종이를 처음 펼친 사람이 끝까지 따라 읽고 나서, 이 글을 쓴 사람이 무엇을 아는 사람인지 말할 수 있겠는가입니다. 이 물음에 답이 나오면 그 길이가 이 사건에서의 적정 분량입니다.
아래 표는 그 물음을 조금 더 잘게 쪼갠 것입니다. 왼쪽은 길이를 늘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들이고, 오른쪽은 줄이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들입니다. 둘을 저울에 올려 보면 지금 쓴 글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가 보입니다.
| 종이에서 벌어지는 일 | 길이에 어떻게 작용하나 | 판단 |
|---|---|---|
| 직접 보고 겪은 일이 아직 적히지 않았다 | 더 적어야 할 것이 남아 있다 | 길이를 늘릴 이유가 됩니다 |
| 어떤 자격으로 아는 사이인지가 흐리다 | 말의 근거가 서지 않았다 | 길이를 늘릴 이유가 됩니다 |
| 선처를 바란다는 말만 여러 번 되풀이된다 |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 줄여야 할 자리입니다 |
| 사건을 직접 보지 못한 부분까지 설명한다 | 쓴 사람이 알 수 없는 이야기다 | 덜어 내야 할 자리입니다 |
| 일반적인 사회 이야기로 문단이 채워진다 | 이 사건과 이어지지 않는다 | 덜어 내야 할 자리입니다 |
| 같은 뜻의 문장이 표현만 바뀌어 다시 나온다 | 길이는 늘고 내용은 그대로다 | 하나만 남기면 됩니다 |
표를 보면 늘릴 이유와 줄일 이유가 서로 다른 종류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늘릴 이유는 아직 적지 않은 사정이 있다는 것이고, 줄일 이유는 이미 적은 것이 겹치거나 이 사건과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도 종이의 수를 세어서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로 줄이고 늘리는 손질은 이 글의 범위를 넘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 내는지는 그 작업만 따로 다룬 글에 정리해 두었고, 이 글은 기준이 있는가라는 앞의 물음까지만 맡습니다.
짧을수록 좋다는 말과 길수록 정성이라는 말
둘 다 자주 들리지만 어느 쪽도 뒷받침할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짧게 쓰라는 조언은 읽는 사람의 시간을 생각한 것이고, 길게 쓰라는 조언은 들인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란 것입니다. 두 조언 모두 선의에서 나온 것이지만 어느 쪽도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길이와 결과를 이어 놓은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조언이 같은 실수를 부른다는 점입니다. 둘 다 길이를 먼저 정해 놓고 내용을 거기에 맞추게 만듭니다. 짧게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직접 본 일까지 덜어 내게 되고, 길게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끌어와 채우게 됩니다.
특히 뒤쪽이 위험합니다. 채우려고 끌어온 문장에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섞이기 쉽고, 그런 문장이 하나 들어가는 순간 나머지 문장까지 함께 의심을 받습니다. 길이를 만들려다 종이 전체의 무게를 잃는 일이 실제로 이 서면에서 가장 아까운 사고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어느 쪽도 권하지 않습니다. 길이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무엇을 아는지 적고 나면 남는 것이 그 사건에서의 길이입니다.
짧다고 정해 둔 기준이 없어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한 장 안에서 어떤 자격으로 아는 사이인지와 직접 보고 겪은 일이 다 담겼다면 그 길이로 할 일은 다 한 것입니다.
그렇게 정해 둔 것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길어질수록 같은 말이 되풀이될 여지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므로, 길이가 늘었다면 겹치는 자리가 생겼는지를 한 번 훑어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길이를 맞추는 것보다 각자 아는 것이 다르게 적히는 쪽이 중요합니다. 여러 장이 같은 문장으로 채워져 있으면 장수가 늘어도 살펴볼 사정은 한 사람 몫에 머뭅니다.
형식에 관해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
글꼴이나 용지를 지정한 조항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읽기 어렵게 만들지 않는다는 실무 서술뿐입니다.
형식이라는 낱말이 제목에 붙어 있어 규격표를 기대하실 수 있지만, 이 서면에는 그런 표가 없습니다. 글자의 크기나 줄 간격, 여백이나 종이의 규격을 정한 조항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형식이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 절에서 본 대로 이 종이는 읽혀야 일을 하는데, 읽기 어렵게 만들어 둔 종이는 그만큼 끝까지 따라 읽히기 어렵습니다. 규격이 없는 자리에서 남는 실무의 기준은 이것 하나입니다.
그래서 조심할 것은 규격을 지키지 않는 쪽이 아니라 반대쪽입니다. 한 장에 담으려고 글자를 줄이고 여백을 없애면 규정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만 읽는 일이 고단해집니다. 길이를 줄이려다 읽히는 일을 잃으면 앞뒤가 바뀝니다.
종이로 만든 뒤에 어떻게 다루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인쇄해서 묶고 첫 장을 어떻게 두는지는 그 주제만 다룬 글에 있고, 이 글은 글의 크기에서 멈춥니다.
- 확인되지 않습니다분량을 정한 규정
- 확인되지 않습니다글꼴·여백·용지의 규격
- 확인되지 않습니다파일 형식을 정한 조항
- 읽는 눈이 끝까지 따라오는가남는 기준
세 자리를 빈칸으로 남기지 않고 확인되지 않는다고 적어 둔 까닭은 앞에서 본 것과 같습니다. 어딘가에 숫자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계속 찾는 일을 여기서 멈추시라는 뜻입니다.
낼 곳에서 따로 요구하는 형식이 있다면 그것은 그곳의 운영 방식이므로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이 글이 말하는 것은 그런 요구가 없을 때 무엇을 기준 삼을지입니다.
종이를 덮기 전에 스스로 묻는 것
장수를 세지 말고 물음에 답이 나오는지를 봅니다.
앞에서 본 것을 차례로 늘어놓으면 스스로 묻는 목록이 됩니다. 다 쓴 글을 소리 내어 한 번 읽으면서 아래를 하나씩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되풀이되는 자리가 귀에 걸립니다.
걸리는 줄이 있으면 그 부분만 손보면 됩니다. 목록을 다 채우려고 문단을 새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 목록은 길이를 늘리라는 것이 아니라 길이가 무엇 때문에 그만큼이 되었는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줄은 다 쓴 다음이 아니라 시작하기 전에 처리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요구가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면 이미 맞춰 놓은 글을 다시 손봐야 합니다.
다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셋째 줄이 가장 자주 걸립니다. 쓰는 동안에는 강조하려고 되풀이한 것이지만 읽는 쪽에서는 같은 말을 다시 듣는 일이 됩니다. 되풀이가 잦으면 뒤쪽 문단부터 눈이 건너뛰기 시작합니다.
비즈폼에는 전하려는 사정과 관계, 서명란이 나뉘어 있어 어디까지 적었는지가 눈에 들어오는 탄원서 서식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빈 화면에서 길이를 가늠하는 것보다 칸이 나뉜 서식에서 채워진 자리를 보는 편이 수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탄원서 분량이 법으로 정해져 있나요?
정해 둔 규정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몇 장 이내라고 적어 둔 조항이 나오지 않고, 안내마다 숫자가 서로 다르게 나오는 것이 그 숫자에 근거가 없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기준으로 길이를 정하나요?
이 서면은 읽혀야 참작되는 자료이므로 끝까지 읽히는가가 상한이 되고, 무엇을 아는 사람인지가 드러났는가가 하한이 됩니다. 두 물음에 답이 나오는 지점이 그 사건에서의 길이입니다.
짧게 쓰는 것이 유리한가요?
길이와 결과를 이어 놓은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짧게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직접 본 일까지 덜어 내게 되므로, 길이를 먼저 정하는 방식 자체를 권하지 않습니다.
정성을 보이려면 길게 쓰는 편이 낫나요?
그렇게 볼 근거도 없습니다. 오히려 채우려고 끌어온 문장에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섞이기 쉽고, 그런 문장 하나가 나머지 문장까지 함께 의심받게 만듭니다.
글꼴이나 용지 규격이 정해져 있나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읽기 어렵게 만들어 둔 종이는 그만큼 끝까지 따라 읽히기 어려우므로, 한 장에 담으려고 글자와 여백을 줄이는 일은 권하지 않습니다.
낼 곳에서 형식을 정해 주면 어떻게 하나요?
그것은 그곳이 스스로 정한 운영 방식이므로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그런 요구가 없을 때 무엇을 기준 삼을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