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증을 썼는데도 돈을 못 받는 이유
차용증 마스터·8분·
차용증은 약정을 증명하는 자료이지 재산에 손을 댈 권한이 아닙니다. 강제집행은 집행권원과 집행문을 갖춘 뒤에야 시작되므로, 문서만 들고 곧바로 압류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민사집행법 제24조·제28조 — 집행권원과 집행문이 있어야 강제집행 / 민사소송법 제358조 — 서명·날인·무인이 있으면 진정성립을 추정 / 형법 제347조 제1항 —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대표적 경로 판결 · 확정된 지급명령 · 인낙 문언이 있는 공정증서
거기에 더해 집행문
근거 민사집행법 제24조 · 제28조
종이 한 장에 걸어 둔 기대
받지 못하는 상황의 상당수는 문서를 잘못 써서가 아니라, 문서가 맡지 않는 일을 문서에 맡겨 두었기 때문에 생깁니다.
돈을 건네면서 차용증을 받아 두면 한숨을 돌리게 됩니다. 종이에 금액과 날짜와 이름이 적히는 순간 이 일은 정리되었다는 감각이 생기고, 그 감각이 이후의 판단을 느슨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변제기가 지나고 연락이 뜸해지면 그때 처음으로 다음 단계를 찾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대부분이 같은 벽을 만납니다. 문서는 그대로 있는데 그것을 들고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벽입니다.
이 편에 나오는 상황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일을 옮겨 적은 것이 아닙니다. 몇 가지 조건이 겹치면 누구에게나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는 유형이라고 읽어 주십시오. 사람이 달라도 걸리는 지점은 대체로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어떤 문구를 더 넣으라는 이야기로 가지 않습니다. 차용증이 맡는 일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 바깥은 누가 어떤 절차로 채우는지를 먼저 갈라 보겠습니다.
추정은 확정이 아닙니다
서명이나 도장이 있으면 그 문서가 진짜라고 추정될 뿐, 다툼이 봉쇄되지는 않습니다.
차용증은 개인이 만든 문서, 곧 사문서입니다. 민사소송법은 사문서에 관해 본인이나 대리인의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이 있으면 진정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정해 두었습니다. 차용증에 이름을 적게 하고 도장을 받는 관행의 뿌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조문이 쓴 낱말은 추정입니다. 반대되는 사정이 드러나면 뒤집힐 수 있는 상태라는 뜻이고, 상대가 그 서명이나 인영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다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 다툼을 정리하는 과정이 따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흔히 어긋나는 기대가 하나 있습니다. 도장이 찍혀 있으니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으리라는 기대입니다. 실제로는 추정을 얻은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이지, 승부가 끝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문의 문언과 그 해석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는 별도의 편에서 원문과 함께 다룹니다. 이 편에서는 추정이라는 낱말이 남겨 둔 여백만 확인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압류로 가는 길목에 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강제집행은 집행권원에서 출발합니다. 차용증은 그 자리에 놓이는 문서가 아닙니다.
재산을 압류하거나 채권을 추심하는 절차를 강제집행이라고 부릅니다. 민사집행법은 강제집행이 확정된 종국판결이나 가집행의 선고가 있는 판결에 기초해 이루어진다고 정하고, 집행문이 있는 판결정본이 있어야 집행할 수 있다고 이어 적습니다.
이 두 조문을 나란히 놓으면 필요한 것이 둘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하나는 집행의 근거가 되는 문서, 곧 집행권원이고 다른 하나는 그 문서에 붙는 집행문입니다. 차용증은 둘 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차용증이 쓸모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집행권원을 만드는 절차에서 차용증은 가장 중요한 자료로 쓰입니다. 순서가 뒤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문서를 들고 곧장 재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들고 집행권원을 만드는 절차로 먼저 가는 구조입니다.
아래 표는 그 순서를 네 칸으로 늘어놓은 것입니다. 세 번째 열만 따라 읽으면 어느 단계에서 거리가 좁혀지는지가 보입니다.
| 단계 | 이 단계에서 손에 들어오는 것 | 압류까지 남은 거리 |
|---|---|---|
| 차용증을 받아 둔다 | 약정을 증명할 자료 | 아직 멀다 — 집행권원이 없다 |
| 소송이나 지급명령으로 간다 | 확정판결 또는 확정된 지급명령 | 집행권원이 생긴다 |
| 인낙 문언을 넣어 공정증서로 만들어 둔다 | 그 자체로 집행권원 | 재판 단계를 건너뛴다 |
| 집행문을 부여받는다 | 집행력 있는 정본 | 집행 절차로 들어간다 |
셋째 줄이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돈을 건네는 시점에 한 번 더 손을 쓰면 뒤의 한 단계를 통째로 줄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공정증서라면 무엇이든 되는 것이 아니라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취지가 적혀 있어야 하고, 그 요건은 공정증서를 다루는 편에서 조문과 함께 봅니다.
반대로 첫째 줄에 머무른 채 시간만 흐르면 거리는 줄지 않습니다. 문서를 잘 보관하는 일과 절차를 진행하는 일은 서로 다른 일이며, 앞의 것만 해 두고 뒤의 것을 미룬 상태가 이 유형의 가장 흔한 모습입니다.
돈이 오간 사실과 빌려준 사실은 다른 층에 있습니다
이체 내역은 돈이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 줄 뿐, 그 돈의 성격까지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차용증이 아예 없거나 내용이 성기게 적힌 상태에서 계좌 내역만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자주 나오는 기대가 송금 기록이 있으니 대여는 저절로 인정되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같은 금액이 같은 날 오갔더라도 그것이 빌려준 돈인지, 준 돈인지, 다른 거래의 대금인지는 기록만으로 갈라지지 않습니다. 대여였다는 주장은 그 주장을 하는 쪽이 뒷받침해야 하고, 상대가 다른 성격이었다고 맞서면 자료를 겹쳐 쌓는 일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차용증의 값어치는 압류를 시켜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층에서 드러납니다. 돈의 성격을 미리 못 박아 두는 문서라는 점입니다. 금액과 반환 약속이 한 장에 함께 적혀 있으면 그 돈이 무엇이었는지를 두고 벌어지는 다툼이 짧아집니다.
다음 세 물음은 이 층에서 자주 되풀이되는 것들입니다.
돈이 오간 사실과 그 돈이 대여금이라는 사실은 갈라서 봅니다. 이체 내역은 이동을 보여 줄 뿐이고 성격까지 정해 주지는 않으므로, 성격을 뒷받침할 자료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성립 자체는 방식과 무관하지만 건넸다는 사실을 보일 자료가 얇아집니다. 차용증에 받은 사실을 함께 적어 두는 식으로 공백을 메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금액만으로는 그 돈이 어떤 성격이었는지가 남지 않습니다. 반환 약속과 시기가 함께 적혀 있어야 대여였다는 점이 문서 안에서 드러납니다.
세 물음에 공통으로 깔린 축은 같습니다. 무엇이 남아 있는가가 아니라, 남은 것이 어떤 성격까지 말해 주는가입니다.
안 갚으면 사기죄라는 말
갚지 못한 사실 자체가 범죄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갈림길은 빌릴 당시에 있습니다.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면 형사 절차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널리 오가는 말이 돈을 안 갚으면 사기죄라는 표현입니다. 이 문장은 성립 요건을 한 단계 건너뛰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2016년 4월 28일 선고한 2012도14516 판결에서 사기죄의 성립 여부를 행위 당시, 곧 차용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차용 당시에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뒤 경제 사정이 달라져 갚지 못하게 되었더라도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같은 판결은 편취의 범의를 어떻게 가리는지도 적어 두었습니다.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는 한 범행 전후의 재력과 환경, 범행 내용, 거래의 이행 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속 의사를 직접 들여다보는 대신 바깥에 남은 흔적을 모아 거꾸로 짚는 구조입니다.
이 갈래에는 뜻밖의 뒷면이 있습니다. 빌리는 쪽에서 보면 차용 당시의 사정을 문서에 구체적으로 적어 두는 일이 자기를 지키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어디에 쓰려고 얼마를 언제까지 갚기로 했는지가 그 시점의 기록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이 편의 결론은 문서를 더 두껍게 쓰라는 것이 아닙니다. 차용증이 맡는 자리는 성격을 못 박고 약정을 증명하는 데까지이고, 재산에 손을 대는 권한은 집행권원이라는 다른 문서에서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 문서를 언제 만들어 둘지를 돈을 건네는 시점에 함께 정해 두라는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차용증이 있으면 바로 압류할 수 있나요?
할 수 없습니다. 강제집행에는 집행권원과 집행문이 필요하고 차용증은 둘 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판결이나 지급명령, 인낙 문언이 있는 공정증서를 거쳐야 합니다.
도장까지 받아 두었는데도 다툼이 생기나요?
서명이나 날인이 있으면 진정성립이 추정되지만 추정은 뒤집힐 여지를 남긴 상태입니다. 상대가 인영이나 서명을 다투면 그 부분을 가리는 과정이 따로 진행됩니다.
공증을 받아 두면 소송을 건너뛸 수 있나요?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취지가 적힌 공정증서라면 그 자체가 집행권원이 됩니다. 그 취지가 빠져 있으면 집행권원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안 갚으면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나요?
갚지 못한 사실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대법원 2012도14516 판결은 차용 당시에 변제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그 뒤의 사정 변화로 갚지 못한 경우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으로 봅니다.
계좌이체 기록만 있어도 빌려준 것이 증명되나요?
이체 기록은 돈이 오간 사실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 돈이 대여금이었다는 점은 따로 뒷받침해야 하며, 차용증은 바로 그 성격을 문서 안에 남겨 두는 역할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