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서를 거부할 수 있나요
사유서 마스터·12분·
하나로 답할 수 없고, 무엇을 적어 내라는 요구인지에 따라 갈립니다. 경과와 이유를 적어 내라는 요구는 정당한 업무명령으로 보는 실무 해석이 있어 따르지 않으면 징계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뉘우쳤다·사죄한다고 적어 내라는 요구는 대법원이 정당한 업무명령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근거는 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두6605 판결입니다. 사유서를 제출하라고 정한 근로기준법 조항은 찾지 못했으며, 거부하면 해고된다거나 제출하면 징계가 가벼워진다는 말은 양쪽 다 확인된 근거가 없습니다.
거부의 답을 한 줄로 정해 버린 문장
- 사유서는 법이 정한 절차라 거부할 수 없다
- 내지 않으면 그 자체로 해고 사유가 된다
- 일단 내면 징계가 가벼워지니 쓰는 편이 낫다
- 사유서에도 진술거부권이 있으니 안 써도 된다
- 회사가 요구했으니 내용까지 시키는 대로 적어야 한다
확인된 데까지만 말하고 멈춘 문장
- 제출을 정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찾지 못했습니다. 요구 근거는 회사 규정입니다
- 미제출이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는 실무 해석이 있는 데까지입니다
- 양정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는 확인된 근거가 없습니다
- 그 권리는 헌법이 형사상으로 한정합니다. 사내에서 다투는 축은 다릅니다
- 뉘우쳤다고 적어 내라는 명령은 정당한 업무명령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같은 물음인데 답이 정반대로 돌아다니는 이유
물음은 한 줄인데 그 아래 성격이 다른 두 요구가 섞여 있습니다.
사유서를 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음이 이것입니다. 안 내도 되는가. 그런데 찾아보면 답이 정반대로 갈려 있습니다. 안 내면 불이익이 크니 빨리 쓰라는 글과,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니 버티라는 글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양쪽 모두 반쪽만 맞습니다. 사유서라는 한 이름 아래 성격이 다른 두 요구가 들어와 있는데, 각각에 대한 답을 전체의 답인 것처럼 적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 글을 먼저 읽었느냐에 따라 판단이 갈리는 셈입니다.
그러니 답을 찾기 전에 요구를 갈라야 합니다. 지금 무엇을 적어 내라고 한 것인가. 이 물음에 답이 서면 나머지는 따라옵니다.
그전에 짚어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유서를 제출하라고 정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찾지 못했습니다. 회사가 사유서를 요구하는 근거는 대개 취업규칙과 인사규정이고, 그것은 법이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회사가 정해 놓은 것입니다. 이 구분이 이 글 전체를 떠받칩니다.
요구를 두 갈래로 갈라 놓고 봅니다
경과를 적어 내라는 요구와 뉘우쳤다고 적어 내라는 요구는 서로 다른 자리에 있습니다.
첫째 갈래는 무슨 일이 있었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적어 내라는 요구입니다. 사실을 보고받겠다는 것이고, 회사가 일어난 일을 파악하려면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 말고 다른 길이 마땅치 않습니다. 이런 요구를 정당한 업무명령으로 보아 따르지 않으면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실무 해설의 정리입니다.
둘째 갈래는 잘못했다, 뉘우친다, 사죄한다고 적어 내라는 요구입니다. 보고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판단을 종이 위에 표시하라는 것입니다. 앞의 것과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요구하는 대상이 다릅니다. 앞은 밖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이고, 뒤는 사람의 내심입니다.
대법원이 갈라 놓은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뒤쪽 요구에 대해서는 그 제출을 명하는 것이 정당한 업무명령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니 거부의 가부를 따지려면 지금 받은 요구가 어느 갈래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아래 표의 둘째 열을 보십시오. 두 줄의 색이 다릅니다.
| 요구받은 것 | 따르지 않으면 | 무엇이 근거인가 |
|---|---|---|
| 무슨 일이 있었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적어 내라 | 징계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 업무명령으로 보는 실무 해석 |
|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한다고 적어 내라 | 징계사유가 되기 어렵습니다 | 대법원 2009두6605 판결 |
윗줄을 읽을 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징계가 내려진다는 말이 아니고, 어느 수위의 처분이 나온다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지점을 대법원 판결로 확인하지 못했고 확인된 것은 실무 해석까지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여기서 멈춥니다.
아랫줄도 마찬가지로 좁게 읽어야 합니다. 뉘우침을 적어 내라는 명령이 힘을 잃는다는 것이지, 그 상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가 된 행위 자체는 그 종이와 별개로 남아 있습니다.
뉘우침을 명하는 것이 왜 힘을 잃는가
사람의 내심을 종이에 적어 내라고 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 판결의 축입니다.
대법원이 다룬 것은 취업규칙에 적힌 시말서였습니다. 회사가 시말서를 내라고 했고 근로자가 내지 않았으며, 그 미제출을 이유로 처분이 이어진 구조입니다. 쟁점은 그 제출명령이 따라야 할 명령이었는가였습니다.
판단의 갈림은 시말서라는 낱말이 무엇을 가리키느냐에 있었습니다. 사건의 경위를 적어 내라는 뜻이라면 보고를 요구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한다는 뜻까지 담으라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람의 내심에 대한 판단을 밖으로 꺼내 놓으라는 요구가 됩니다.
뒤쪽이라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이 더 붙습니다. 그런 내용을 담은 취업규칙 규정은 효력이 없고, 효력이 없는 규정에 근거한 명령은 업무상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령이 정당하지 않으면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삼을 근거도 사라집니다.
취업규칙이 법령과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조문이 근로기준법에 있고, 이 판단은 그 조문을 거쳐 나왔습니다. 회사가 규정에 적어 두기만 하면 무엇이든 명령이 된다고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취업규칙에서 말하는 시말서가 사죄문 또는 반성문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 제출을 명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내심의 윤리적 판단에 대한 강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 그러한 취업규칙 규정은 헌법에 위배되어 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에 따라 효력이 없고, 그에 근거한 제출명령은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
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두6605 판결 — 판시 요지
이 법리는 이름이 시말서인 종이에만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판결이 본 것은 표지에 적힌 낱말이 아니라 그 명령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했는가였습니다. 사유서라고 부르면서 뉘우친다는 문장을 기대하고 있다면, 이름과 무관하게 뒤쪽 갈래에 들어옵니다.
거꾸로 시말서라는 이름으로 요구받았더라도 경위만 적어 내라는 뜻이었다면 앞쪽 갈래입니다. 이름이 아니라 요구의 내용이 자리를 정합니다.
형사 절차의 진술거부권을 여기로 옮기면 틀립니다
조문의 문언이 형사상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거부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끌려 나오는 것이 진술거부권입니다. 불리한 것을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 사유서에도 불리한 내용은 적지 않아도 된다는 식입니다. 말이 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근거로 삼기에는 어긋나 있습니다.
그 권리를 담고 있는 헌법 조문의 문언을 그대로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앞에 형사상이라는 낱말이 붙어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강요당하지 않는지를 조문 스스로 좁혀 놓은 것입니다.
형사소송법도 진술거부권을 고지할 대상을 수사와 재판을 받는 사람으로 좁혀 두고 있습니다. 사내 징계 절차를 형사 절차로 보아 이 권리를 그대로 옮겨 적용한다는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사유서를 두고 진술거부권을 말하는 문장은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결론만 놓고 보면 뉘우침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앞 절에서 이미 확인했습니다. 축이 다를 뿐입니다. 사내에서 강요를 다투는 축은 진술거부권이 아니라 양심의 자유 쪽입니다. 근거를 바꿔 놓으면 같은 말이 성립합니다.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대한민국헌법 제12조 제2항
형사 절차의 진술거부권을 근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유서는 회사가 물은 것에 답하는 서면이라, 묻지 않은 것까지 스스로 늘려 적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은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적는 범위의 문제입니다.
요구 자체를 금지한 조문을 찾지 못했습니다. 위법이라고도 적법이라고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확인된 것은 뉘우침을 요구하는 경우에 한해 정당한 업무명령으로 보기 어렵다는 데까지입니다.
이 조문을 여기에 실은 것은 사유서에 적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계를 그어 두기 위해서입니다. 형사상이라는 세 글자를 눈으로 확인해 두면, 이 권리를 사내 절차로 끌어오는 설명을 만났을 때 걸러 낼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이 착각은 비싸게 끝납니다. 있지도 않은 권리를 근거로 버티다가, 정작 근거가 있는 쪽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채 절차가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확인된 자리와 비어 있는 자리를 갈라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거부를 다루는 글에는 단정이 많이 섞입니다. 안 내면 해고된다는 말도 있고, 내도 아무 소용 없으니 쓰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양쪽 다 확인된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출한 사실이 징계 수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면 가벼워진다거나 안 내면 무거워진다는 말은 어느 쪽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회사마다 규정이 다르고, 그 규정이 무엇을 어떻게 정해 두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자리입니다.
요구가 반복되고 지나칠 때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조문에 걸릴 수 있느냐는 물음도 자주 나옵니다. 그런 조문이 근로기준법에 있는 것은 맞지만, 사유서 요구가 거기 해당한다고 판단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는 데까지입니다.
폭행이나 협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면 강요죄가 된다는 조문도 형법에 있습니다. 다만 사유서 요구가 그 자리에 닿는다고 볼 판단 자료 역시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확실한 것처럼 말하는 글일수록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 찾지 못했습니다제출을 정한 근로기준법 조항
- 찾지 못했습니다요구 자체를 금지한 조문
- 근거 없음양정 반영 여부
- 2009두6605확인된 판단
거부와 제출 사이에 자리가 있습니다
낼 것인가 말 것인가로 좁히지 말고 무엇을 적을지를 정하십시오.
현실에서 선택지가 둘뿐인 경우는 드뭅니다. 요구받은 것 가운데 보고에 해당하는 부분은 적고, 내심을 표시하라는 부분은 적지 않는 것이 가능합니다. 앞 절들에서 갈라 놓은 두 갈래가 한 장 안에 섞여 들어오는 일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무의 순서는 거부할까 말까가 아니라 아래 네 단계입니다. 이 순서를 밟으면 대개 셋째 단계에서 답이 나옵니다.
- 요구를 문장으로 받아 적는다구두로만 들었다면 무엇을 적어 내라고 했는지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나중에 요구의 성격을 따질 때 기준이 되는 것이 이 문장입니다.
- 보고에 해당하는 부분과 내심에 해당하는 부분을 가른다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앞 갈래입니다. 뉘우친다·사죄한다는 뒤 갈래입니다. 둘이 한 요구 안에 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근거가 되는 사내 규정을 확인한다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에 어느 자리에 어떻게 적혀 있는지 봅니다. 요구의 근거가 법이 아니라 여기에 있으므로, 다투게 되더라도 기준은 이 문서입니다.
- 앞 갈래는 적고 뒤 갈래는 적지 않은 채로 낸다보고를 성실히 하면서 내심의 표시는 담지 않는 서면이 성립합니다. 아무것도 내지 않는 것과 전부 적어 내는 것 사이에 이 자리가 있습니다.
둘째 단계에서 갈라 두면 그다음이 편해집니다. 대책을 적어야 하는 상황이라도 뉘우침의 표현이 아니라 조치의 서술로 적으면 앞 갈래 안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 요령은 대책을 적는 법을 다룬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셋째 단계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은데, 규정을 확인하지 않으면 요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는 채로 대응하게 됩니다. 사유서를 요구하는 근거가 법이 아니라 회사 문서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이기도 합니다.
비즈폼에는 경과와 이유를 나눠 적도록 칸이 갈라진 사유서 양식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칸이 갈라져 있으면 어느 갈래에 해당하는 문장인지가 쓰는 동안 눈에 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사유서를 안 내면 어떻게 되나요?
경과와 이유를 적어 내라는 요구였다면 따르지 않은 것이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는 실무 해석이 있습니다. 다만 해고된다거나 어느 수위의 처분이 나온다는 것은 확인된 근거가 없습니다.
반성문을 쓰라고 하면 거부할 수 있나요?
대법원은 사죄문이나 반성문을 뜻하는 제출명령을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삼기 어렵습니다.
사유서 제출을 정한 법이 있나요?
근로기준법에서 사유서 제출을 정한 조항을 찾지 못했습니다. 요구의 근거는 대개 취업규칙과 인사규정이며, 그것은 회사가 정한 것입니다.
사유서에도 진술거부권이 있나요?
헌법 조문의 문언이 형사상으로 한정되어 있어 그대로 옮겨 쓸 수 없습니다. 사내에서 뉘우침의 강요를 다투는 축은 양심의 자유 쪽입니다.
사유서를 내면 징계가 가벼워지나요?
확인된 근거가 없습니다. 가벼워진다는 말도 무거워진다는 말도 이 글에서는 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규정에 무엇을 어떻게 정해 두었는지에 달린 자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