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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아버지와 케이크 |  | |
| 전날 술을 마시느라 두고 온 차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쓰러진 유모차 옆에 한 노인이 힘없이 앉아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하며 유모차를 바로 세운 뒤
손잡이를 쥐어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불안한 자세로 걷는 할아버지를 또 만났습니다.
할아버지를 차로 댁까지 모셔다 드리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유모차만
꼭 붙잡으시기에 유모차를 살펴보니 케이크 상자가 나일론 줄로
친친 묶여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차를 세워 두고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수시로 넘어지는 할아버지와의 이상한 행진은
세 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집 근처에 이르자 대문 밖에서 서성이던 반백의 노인이 달려왔습니다.
˝아이구 아버지! 도대체 어딜 다녀오시는 거예요?˝
반백의 노인은 할아버지 아들이었습니다.
그 분은 제게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 보답을...˝하며 연신 허리를 굽히셨습니다.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는 말씀에 집 안에 들어갔다가
할아버지와 케이크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이름은 김귀남. 젊은 시절 노름으로 재산도 많이 탕진했는데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의 아내 사랑은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치매가 온 할아버지가 ˝에미가 말이야˝하고 말씀하시면
할머니는 ˝네, 날씨가 좋군요˝라는 식의 말이 안 통하는 대화를 나누셨답니다.
두 분은 그런 대화를 마당 한 켠에 나란히 앉아 오랫동안 이어가셨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내가 죽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할아버지는 그 뒤로도 얼마 동안 마당에서 혼자말을하더니
하루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서럽게 우셨답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전혀 말을 안 하시더니 해마다 아내 생일이 돌아오면
훌쩍 집을 나갔다가 케이크를 사 가지고 오신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살아 계신 동안은 어머니 생일 때마다 케이크를 사러 나가실 겁니다.˝
반백의 노인은 눈가에 맺힌 이슬을 닦아 내며 말했습니다.
누군가 세상엔 진실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느 시골 마을의 김귀남 할아버지는 최금순 할머니를 진실로 사랑했다.˝라고요.
좋은생각의 11월 특집 ´사랑´에 관한 세상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
김명규 님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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