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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느리기 경주 / 엄경희


인도의 느리기 경주 / 엄경희(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인도에는 일년 내내 축제도 많지만 그 가운데 아주 희한한 경기가 하나 있다．
５0미터쯤 되는 단거리 자전거 경주가 그것인데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더러는 맨발로 경주에 참가한다．
그런데 이 경주는 빨리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한순간도 멈춰서는 안된다는 조건 아래 가능한 천천히 달려 골인 지점에 가장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 일등을 차지하는 느리게 달리기 경주다．

가장 느린 자가 일등이라니！
실제 인도 여행을 하면서 이러한 경기를 착안해 낼 수 있었던 인도인들의 시간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절대로 서두르는 법이 없다．
아니 우리의 시각에서 본다면 무척 게으르다．
바라나시칸트역에서 기차가 열시간 이상을 연착해도 그곳 사람들은 역사에 편하게 누워 있거나， 동료들과 히히덕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나절만 지하철이 불통되면 ９시 뉴스거리가 되는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러한 인도인들의 게으름에 대해 “그러니 지지리도 가난하지”라고 경멸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우리의 삶과 의식은 열대 지역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지만， 우린 너무 강박적으로 쫓기는 생활을 하고 있다．
모두가 신경이 피부 밖으로 나온 사람들처럼 예민하다．
지하철이든 식당이든 마구 울리는 휴대전화．
끊임없이 호출하고 호출 당한다．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시간의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여백은 견딜 수 없는 불안감을 준다．
그러니 우린 시간의 괴물에 생포된 노예가 아닌가．
노예적 삶이 진정한 행복감을 줄 수 있을까？ 시간을 산책하는 자만이 그 괴물의 밧줄을 끊어 낼 수 있으리라．


* 자료출처 : 조선일보 20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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